3년 전 )
구름 없는 하늘엔 바람도 없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지만, 거리의 가로등처럼 우두커니 서있던 남자에겐 뭔가 특별한 게 보였던 것 같다. 노란색 킥보드 위에서 열심히 발을 구르던 아이는, 들떠버린 보도블록 위를 지나가다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쓸린 무릎이 아팠을 텐데, 아이는 울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가 다시 킥보드에 오르려 하자, 남자가 아이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프지 않니?"
아이는 남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예쁘구나. 너 혼자야? 엄마는 어디 갔어?"
"옆집 이모한테"
"혼자서도 아주 씩씩하네. 너 이름이 뭐야?"
"......"
아이가 낯을 가리자 남자는 주머니에서 공룡 열쇠고리를 꺼내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어! 트리케라톱스다. 백악기 초식공룡인데..."
"와! 너 공룡박사구나. 이거 가질래?"
"......"
"괜찮아 가져, 나는 집에 많이 있어."
"고맙습니다."
"너 이름이 뭐야?"
"민서요"
"민서! 이름도 멋진데. 민서야, 우리 공룡 보러 갈까?"
아이는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바닥에 다리를 굽히고 앉아, 괴롭고 지친 얼굴로 통화하고 있었다.
"2일이 지났어요. 제발 아이를 찾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여자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통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남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남자에게 물었다.
"좀 알아봤어?"
"아직 특별한 게 없나 봐."
"자기, 경찰에 아는 사람 많잖아. 제발 어떻게 좀 해봐!"
"실종신고 했으니까 좀 진정하고 기다려보자. 뭔가 찾게 되면 바로 알려주기로 했어."
남자의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렸다. 평소라면 묵음으로 되어 있어서 못 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아들을 잃어버린 뒤로 폰 설정이 바뀌었다.
[서 태우 님이시죠? 민서 군 실종사건 담당 우 지만 형사입니다. 지금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CCTV 녹화영상을 보고 있는데, 영상 속 아이가 민서 군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해서요.]
"네, 그럼 저희가 관리사무소로 지금 가겠습니다."
영상 속 아이는 민서가 확실했다. 아이 엄마는 한눈에 민서를 알아봤고, 노란색 킥보드를 타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에 참았던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눈이 부어 보이는 우형사가 말했다.
"아이가 부모님 연락처를 알고 있다거나, 집주소를 알고 있나요?"
"네, 그럼요. 우리 번호를 모두 알고 있고, 집주소도 외우고 있어요. 실종접수할 때 다 말씀드렸어요."
"혹시, 아이가 유괴된 것은 아닐까요?"
"유괴요?"
"유괴되었다면 범인으로부터 전화 연락이 오기 마련인데, 따로 연락받으신 거 있으세요?"
"아니요. 저희는 연락받은 거 없습니다. 유괴라니 생각지도 못했어요."
"아, 그러셨군요. 그럼, 주변에 원한 살만한 사람은 없으셨나요?"
"그런 거 없습니다."
"네, 참고하겠습니다."
"저..."
"네, 말씀하세요."
"제 직업이 무도실무관인데, 혹시 이번일과 관계있을까요?"
"혹시,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지만, 출소자들을 관리하는 일이다 보니..."
"그럼 저처럼 범인을 잡는 게 직업인 사람들은 힘들어서 못 살죠. 걱정 마시고, 그 부분도 참고해서 수사하겠습니다."
사전조사에서, 아이가 실종된 집은 이웃들과 주차, 층간 소음 관련 분쟁이 없었고,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도 가정환경에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에, 우형사는 원한보다는 금품을 노린 범행 일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뭔가 꺼림칙하다는 느낌이 우형사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우형사는 서둘러 CCTV 관제센터로 향했다. 현재로선 CCTV를 확인하는 게 실마리를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고, 뭐라도 건질 게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의 동선을 따라 녹화영상을 열람하기 시작한 우형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가 아이에게 접촉하는 영상을 찾게 된다. 아이가 남자를 따라가는 게 녹화되어 있었는데, 현재로선 그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고, 남자의 동선을 추적하기 위해 지원요청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시작부터 CCTV 사각지대 때문에 용의자 동선 파악에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용의자가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피해 이동했을 거라는 추정을 하게 된 수사팀은 남자가 아이를 데려간 당일, 인근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들을 파악해 블랙박스 녹화영상을 확보해 갔다.
블랙박스 녹화영상 분석작업에서 민서의 최종 행선지를 알아낸 경찰이, 의심될만한 장소 인근을 수색하다 인적이 없는 포장도로 끝에서 민서의 노란색 킥보드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오래된 변전소 건물이 있었다.
철망으로 둘러싸인 시설은 시건장치로 문이 굳게 잠긴 상태였다. 건물 뒤쪽을 살피던 우형사 눈에 절단된 철망이 보였다. 예리하게 잘라낸 절단면에 녹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우형사가 바지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철망을 벌려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외벽에는 빛바랜 나무 창틀과 뿌옇게 먼지 킨 유리창이 보였다. 현관문 위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정상 작동되는지 알 수는 없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기계시설들이 보이는 복도가 있었다. 복도 끝에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는데, 우형사는 계단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왠지 모를 이상한 느낌이 우형사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우형사가 자신의 품에서 리볼버를 꺼내 들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2층 문 앞에 다가선 우형사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긴장한 표정으로 문을 연 우형사가 총을 앞세워 실내를 빠르게 살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긴장감이 풀려서일까? 한숨 돌린 우형사 눈에 가지런히 놓인 물건들이 보였고, 우형사는 숨이 멎는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줄무늬 티와 무릎 나온 파란색 바지, 뽀로로 양말과 희고 작은 아동화, 하늘색 헬멧 그리고 속옷까지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더 기괴했던 것은,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신체일부가 투명비닐 팩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유괴사건에서는 보기 힘든 유형이었기에 우형사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돈을 목적으로 아동을 유괴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살인이나 상해를 원했던 것 같았다.
범인은 아이 부모에게 협박 전화를 하거나,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범인의 의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범인은 즐기고 있었다.
우형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변전소 입구 CCTV 영상을 확보한 수사팀은 더욱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아이와 함께 변전소 안으로 들어갔던 용의자는 나올 때 용의자 혼자였기 때문이다. 녹화 영상 그 어디에도 아이가 밖으로 나온 흔적은 없었다. 변전소 어딘가에는 아이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아이는 없었다. 더구나, 안구를 적출했다면 혈흔이라도 있어야 했는데, 현장 그 어디에도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강력사건 전담인력으로 민서사건 수사팀을 새롭게 구성했고, 아이를 찾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편, 현장 감식 과정에서 수거한 증거물 중에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안구는 국과수 본원에서 검사가 진행되었다. 아이의 부모가 국과수에 내원한 상태였고, 그들에게서 DNA시료를 채취한 분석팀이 사건현장에 있던 증거물과 DNA 분석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DNA 분석 결과는 혈연관계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안구가 민서의 신체라는 것을 알게 된 태우는 복받이는 감정을 참을 수가 없어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손가락에 가시 하나가 박혀도 가슴 아픈 내 새끼인데, 뽑힌 눈알이라니!, 아이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아 심장이 찌그러질 듯이 조여왔다. 눈물을 닦다가 옆에서 울부짖는 아내를 보게 된 태우는 아내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대체,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부모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가는 것도 모자라서, 고통의 흔적을 남겨 부모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다니 악마가 따로 없었다.
아이의 엄마는 그런 악마에게라도 빌고 싶었을 것이다. 제발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어줄 테니, 아이만은 살려서 내게 돌려달라고.
0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