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서가 실종된 지 2주가 되었다.수사는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사람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아이가 살아있다면, 상처치료를 위해의료기관을 이용할 거라는 경찰의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다.결국, 민서 사건은 공개수사로 전환하게 된다.
매일 똑같은 내용의 보도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연일 뉴스와 유튜브, SNS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안구가 적출된 유례없이 잔인한 아동유괴사건이다 보니,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용의자의 신원조차 특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서,부실수사, 무능한 경찰이라는 조롱 섞인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었다.
공개수사 3일 만에 사면초가에 몰린 수사팀 앞으로 한통의 제보 전화가 연결됐다.
뉴스에 공개된 용의자를 알아본 사람이 나타난 것인데, 그동안 수많은 오인 제보가있었지만, 이번엔 뭔가 달라 보였다.
제보자는 이 재수이라는 사람이었다.
"형사님, 내 얼굴이 왜 이렇게 넙데데한 줄 압니까?"
"이제 그만하시고, 본론을 말씀해 주세요."
재수는 정작 중요한 내용은 입을 다문채,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었다.
"아니, 들어보세요. 내가 갓난쟁이 일 때, 형편이 어려웠던 우리 집은 식구들이 단칸방에서 생활을 했었죠. 한 밤중에 오줌이 마려워 잠에서 깬 엄마가 방안에있던 요강에앉으려고 일어서다 중심을 잃고 털썩 앉았는데, 그게 내 면상이었지 뭡니까. 그때 떡처럼 뭉개진 면상이 지금 이 얼굴입니다. 엄마덕분에 미간이 넓어져,눈썰미가 좋아졌다고 아버지가 늘 그러셨죠. 저는 한번 본 얼굴은 절대 놓치질않아요. 이형사님, 나 말고 그놈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아주 꺼리는 도깨비 같은 놈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고요?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이제 알려주시죠."
"아! 그럼요. 알려드려야죠. 근데, 내가 좀 사고 친 게 있어서..."
"그런데요?"
"그걸 좀 없던 걸로 힘 좀 써주시면, 당장 알려드릴 수 있을 텐데..."
"이 양반이 경찰을 뭘로 보고! 이런 식으로 하면 업무 방해 혐의로 입건시킬 겁니다."
우형사가 정색을 하자, 이 재수가 난처한 표정이었다.
"아니, 지금 범인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좀 도와주면 어때서..."
"뭐라로요!"
"우형사님, 혹시 제보자 포상 같은 건 없나요? 정말 장난 아니고, 내가 그놈을 알고 있어서 그래요. 잡을 수 있다니까요!"
"포상문제는 내가 결정할 수는 없고, 사건해결에 중요한 제보라면 상신 올리는 걸로 해볼게요."
이 재수는 14년 전, 파주 교도소에서 용의자를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이 재수는 보험사기 혐의로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수감 생활 중이었고, 용의자는 과실치사와 뺑소니 혐의로 입건되어 3년형을 받아 이 재수와 같은 수감방에서 형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사건기록에 따르면, 용의자가 당시 음주 상태로 훔친 화물차를 몰다 주차되어 있던 승용차를 추돌해 일가족 3명을 사상케 하고 도주. 피해를 입은 가족 중에 아이만 살아남은 것으로 되어있었다.
출소 이후 행적은, 살해 혐의로 용의 선상에 오른 기록이 있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리된 건이었다.
용의자의 이름은 정 기철이었다.
아이가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민서야, 어딨어? 엄마야. 엄마가 왔어."
"엄마"
"그래 민서야. 엄마야"
고개를 숙이고, 벌거벗은 채 움츠리고 앉아 우는 아이가 보였다. 한 걸음에 달려간 엄마는 아이를 안아 주었다.
"민서야, 왜 그래. 추워? 어디 아파? 고개 좀 들어봐"
엄마가 아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따뜻하게 감싸며 고개를 들었다. 안구가 없어서 눈이 함몰된 민서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수연이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가슴이 찢기 듯 아파왔다. 너무 울어서 이제는 나올 눈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수연아, 뭐라도 먹어야지. 그렇게 울기만 한다고 민서가 돌아와?"
"우리 아기가 밥은 먹고 있는지, 잠은 자고 있는지, 춥지는 않은지, 아프지는 않은지, 엄마인 내가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 그래서 너무 미안하고, 또 너무 미안해서 이렇게 억울한데, 어떻게 밥이 넘어가겠어. 우리 민서가 잘 못되면 나도 따라갈 거야. 한번 떨어졌으면 됐지, 죽어서도 떨어질 수는 없어."
"무슨 소리야? 정신 좀 차려!, 네가 이러니까 내가 더 힘들잖아"
이 재수의 제보로 용의자를 특정한 경찰 수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정 기철을 중심으로 가족과 주변 인물들까지 광범위하게 수사가 진행되었고, 오래된 지인들까지 탈탈 털며 단서를 찾으려고 했지만, 특별한 성과는 얻지 못했다. 그 어디에서도 기철의 흔적을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체, 기철은 어디에 있는 걸까?
보통 동물들은 때가 되면 자신의 안식처로 회귀하기 마련이고, 인간도 별다르지 않을 텐데, 기철은 현실에 없는 사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