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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혁 Nov 22. 2023

동그라미

05

18년 전)


창이 모두 산산조각 나 있었고, 실내는 유리 파편들엉망이 되어 있었다.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엄마, 아빠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서하두 사람을 힘겹게 불러 보았지만, 그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복받치는 울분 목구멍으로 쏟아져 나왔다.

깨진 차창 밖으로 화물차 운전석 문이 쇳소리를 내며 열리는 것이 보였다.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가 비틀거리며 서하 쪽으로 걸어왔다. 서하 울음을 멈추고 그를 지켜보았다. 남자가 고개를 숙여 깨진 유리창 너머로 차 안을 둘러보다 서하와 눈이 마주쳤다. 

텅 빈듯한 초점 없는 눈빛.

남자의 눈동자 옆에는 작은 점 하나가 보였고, 그 자의 챙을 숙여 시선을 숨겼다.


"너만 남았구나. 하고 같이 갈까?"


고개를 도리도리 하는 서하를 분명히 봤을 텐데, 남자는 뒤쪽으로 오더니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술냄새...


[엄마가 술 먹고 운전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서하는 왠지 모를 두려움에 울음을 터뜨렸고, 사고 현장으로 사람들이 다가오자 남자가 눈치를 보며 자리를 피했다. 서하원망의 눈빛으로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고로 서하부모를 잃었고, 삶을 빼앗겨 버린 듯한 상실감에 빠졌다. 양말 하나를 신더라도 일일이 골라주던 엄마였는데, 그런 엄마가 갑자기 세상에 없다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 막막함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세상에 혼자 남게 된 서하는 사고 후유증과 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에 오랜 시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했다. 매일밤 사고 악몽에 시달려야 했던 서하는 잠자는 시간조차도 마음의 안식이 허락되지 않았다. 사고 장면을 다시 보는 것은 언제나 끔찍한 일이었고, 가해 운전자를 보기 것은 더욱 싫었지만, 그렇게라도 그리운 엄마, 아빠만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서하는 애써 자신을 위로다. 


꿈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경험처럼 오래 기억되는 강렬한 꿈도 있겠지만, 잠에서 깨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처럼, 기억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잊고 싶은 지난 일들을 악몽처럼 달고 사는 서하에겐, 잠이라는 것은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매일 밤 악몽을 되살리며 자신에게서 부모를 빼앗아간 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언젠가 다시 마주치기를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1년 전)


수업을 마친 서하가 강의실을 나와 자신의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감기 때문에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머리까지 아파오고 있었다.


"교수님"


한 여학생이 서하에게 말을 걸었다. 가던 걸음을 멈춘 서하가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섰다.


"저, 이 수아라고 합니다. 궁금한 게 있어서요."

""

"교수님, 타인과의 무의식 공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난해한 질문에 당황한 서하는 자신도 모르게 눈썹이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말이죠? 무의식 공유?"

"마트나 편의점에 가는 것처럼, 타인의 무의식에 들어가거나, 현실 생활처럼 타인의 꿈을 함께할 수 있는 거요."

"내가 타인의 꿈속에 들어간다?"

"네"

"꿈이라는 건, 깨고 난 후의 기억이에요. 렘수면 상태에서 자신의 경험이나 외부 자극에 의해서 뇌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청각적 형상인데, 타인의 꿈속에 들어간다는 것도 엉뚱하지만, 꿈을 함께한다는 것은 더욱 비과학적이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네요. "

"그게 아니라..."

"그럼, 다음 강의시간에 봐요."


서하돌아서서 자신이 가던 길을 향했다. 그런 서하의 뒷모습을 수아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온 서하문을 잠갔다. 문에 기대어 눈을 감고 길게 한숨을 내쉰 서하책상 위에 자신의 숄더백을 올리고, 의자에 앉았다. 책상에 얼굴을 묻고 미동 없이 한동안 앉아 있던 서하가 가방에서 흰색 약봉지를 꺼냈다. 머그컵에 물을 받은 서하 익숙한 듯 입안에 약을 털어 넣고, 물과 함께 목으로 넘겼으나, 알약이 목에 걸렸는지 손으로 목을 만지며 다시 물을 마셨다. 서하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감기 때문에 몽롱한 느낌이 온몸에 퍼지기 시작한 서하 스르르 눈꺼풀이 내려와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그리운 엄마,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어린 서하는 아빠가 열어준 자동차 문 안으로 들어가 뒷좌석에 앉았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엄마가 뒤를 돌아보며,


"서하야, 안전벨트 해야지."

"알았어"


서하하는 것을 지켜보던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옆에 있던 아빠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아빠도 안전벨트 매는 서하를 돌아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충격으로 차체가 요동쳤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일정한 패턴의 경고음 소리에 눈을 뜬 서하 주변을 둘러보았다. 엄마, 아빠가 바람에 날리는 옷가지처럼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겁에 질린 서하는 서럽게 울면서 엄마, 아빠를 불러 보았지만, 두 사람은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화물차에서 내린 남자가 좀비처럼 걸어와 차 안을 봤다. 눈동자에 점이 있는 남자다. 그가 뒤쪽으로 걸어왔. 찌그러진 문이 쇳소리를 내 열렸고, 무서웠던 서하가 울기 시작했다. 뒷좌석으로 들어온 사람은 여자였다. 그 여자는 괜찮냐고 물으며 서하의 손을 잡아주었고, 겁먹은 서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서하는 정말 오랜만에 따뜻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세요?"


어린 서하가 말했다.


"나? 이 수아"

"어! 나 언니 아는데..."

"내가 꿈속에 왔었다는 증거로 이렇게 손가락 표시를 할 거야."


수아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 끝을 맞닿게 해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교수님, 손가락 동그라미를 꼭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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