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처음엔 그랬지. 헤어지는 게 늘 아쉽고, 보고파 설레는 마음에 잠도 오지 않았어. 그래서 결혼이란 걸 했겠지만..."
"미련이야?"
"미련!, 아니 그런 건 없어. 그냥 다 지난 일이야."
"이 노래 뭐야?"
"좋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곡이야."
"너무 좋다. 그동안 너무 여유 없이 살았나 봐. 이런 감정들이 너무 오랜만이야."
"미소야, 캠핑 오길 잘했지?"
"그래, 잘했다."
"피곤하지 않아?"
"몸은 피곤한데, 불면증 때문에 잠자기가 너무 힘들어. 정말, 원 없이 꿀잠 한번 자봤으면 좋겠네."
"많이 힘들어?"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잤어. 잠든 것 같다가도 한번 깨면 다시 잠들기가 어려워."
"우유 필요해?"
"있어?, 나야 땡큐지."
미란이 가방에서 흰색 액체가 들어있는 병 하나와 주사기를 꺼냈다.
"문제가 있었어?"
"응? 문제라니?"
"이혼 말이야."
"......"
"말하기 싫음 안 해도 돼."
"잠깐, 움직이지 마."
"아플 것 같아서 못 보겠어."
"처음도 아니고, 엄살이 늘었네요."
"주삿바늘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네."
"됐습니다. 이제 편안히 주무세요."
"고마워."
"사별이었어."
"뭐라고? 사별? 몰랐어. 미안..."
"한밤중인데 남편 폰에 톡이 왔어. 이상한 뉘앙스의 글이 보였지. 느낌이 나빠서 지문 잠금을 풀고 내용을 봤어. 보고 싶다, 사랑한다, 빨리 와라, 그년이 술 처먹었는지 속옷 들고 있는 사진까지 보냈더라고. 구역질이 났어. 난 이렇게 괴로운데, 그 인간은 술에 취해서 잠만 자더라고. 마음속으로 얼마나 죽이고 싶었는지 몰라. 날 배신한 남편과는 단 하루도 같은 공간에 있기 싫었어. 안인 바닷가에 있는 친구 작업실에 가 있었는데,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어. 제발 이야기 좀 하자 사정하더라고. 결국, 이혼을 결심하고 집에 갔는데, 남편이 죽어 있었어. 의사 말로는 돌연심장사라는 거야. 꼴도 보기 싫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었는데, 눈물이 나더라."
미란은 잠들어 있는 미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미란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선선한 바람이 뺨을 스치며 미란의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았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한결 마음이 편해진 미란은 가로등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휴가철도 지나고, 평일이라서 그런지 캠핑장엔 사람들이 없어 한적했지만, 미란은 오히려 조용한 느낌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건너편 편의점에 들어간 미란이 모카라테 한 병을 골라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직원이 제품의 바코드를 찍으며 미란에게 물었다.
"캠핑 오셨죠?"
"네?"
"캠핑장 쪽에서 나오신 것 같아서..."
"네, 맞아요."
미란이 카드를 내밀었다.
"현금은 없으세요?"
"네, 지금 카드뿐이에요."
"그러면..."
"카드 여기에 꽂으면 되나요?"
"아! 네, 맞아요."
"교대로 하시나 봐요. 낮에 왔었거든요."
"네, 밤에는 제가 나와 있습니다."
"결제됐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미란이 밖으로 나가자 직원이 쇼윈도 너머로 멀어져 가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가게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가 데스크 밑에 축 늘어진 남자를 짐짝처럼 끌고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 구석에 세워져 있던 밀대로 바닥의 피를 닦던 그가, 의식이 돌아온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밀대 자루에 기대선 그는 표정 없는 얼굴로 남자를 내려보았다.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했고, 그가 아무 말 없이 창고 밖으로 나갔다. 남자는 안도하는 듯했으나, 그가 손에 뭔가를 쥐고 다시 들어오자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남자의 입을 거칠게 막은 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에 쥐고 있던 흉기로 남자의 삶을 남김없이 앗아가고 있었다.
미란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다한 생각들 때문에 잠이 들지 못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수많은 별들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다시 밖으로 나온 그녀가 별을 보기 위해 언덕을 올랐다. 쏟아질듯해 무섭기까지 한 별들 사이로 별똥별 하나가 긴 꼬리를 남기며 지나갔다. 눈물이 날 정도로 설레는 장면이었기에, 미란은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던 것 같다.
차있는 곳에 돌아온 미란은 걸음을 멈췄다. 처음에는 자신이 엉뚱한 곳에 왔나 싶었을 것이다. 캠핑카가 주차되어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러 번을 확인한 후에, 미란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미소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미소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왜 혼자 갔지? 무슨 일이 생겼나? 이유를 몰라 걱정을 앞세운 미란이, 미소에게 톡을 남겼다.
[미소야, 무슨 일이야? 날 두고 가면 어떡해? 차 있던 장소에 있으니까 빨리 돌아와.]
캠핑장 사무실은 이미 불이 꺼져 있었고, 도움을 요청하려고 간 편의점도 마찬가지였는데, 미소에게서 톡이 왔다.
[미안해, 일이 생겨서 나 먼저 간다.]
톡을 본 미란은 바로 미소에게 전화했으나,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 멘트가 나왔다.
"얘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모카라테를 마시며, 남자가 운전하고 있었다. 진동 벨이 신경 쓰였는지 차를 세운 남자가 운전석에서 일어나 소리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핸드폰에 남겨진 미란의 톡을 보고 있는 남자는 편의점 직원이었다. 그는 스태프 조끼를 벗어 바닥으로 던졌다. 차가운 바닥에는 편의점에 있던 남자와 미소가 건조기에서 꺼낸 세탁물처럼 포개져 있었다.
07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