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결국, 민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례적으로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던 경찰 수사는 용의자 정 기철 검거에 실패했고, 그들을 혹평했던 언론의 취재 열기마저도 서서히 식어 갈 때쯤, 찰나가 하루 같았던 기다림의 날들 속에서 아이를 잃은 어미는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달콤할 것이라 기대했던 엔딩은 아이러니하게도 절망의 불씨가 되었고, 자멸의 상자를 열어버린 수연은 끝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끊어내기에 이른다.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지나, 지구라는 행성에서 가족으로 맺어진 연이었는데, 태우는 그렇게 아내가 떠나가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아내가 가던 날, 그의 세상은 처참하게 찢기고 무너져 내렸다. 고통은 가슴속에 알알이 사무쳐 뼛속까지 파고들었고, 메말라버린 영혼은 검은 기름을 뒤집어쓴 새처럼 살아도 죽은 것이었다. 그는 울부짖으며, 짐승처럼 네발로 방안을 기어 다녔다.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아내의 죽음 앞에서 또다시 강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차라리 이대로 심장이 멎었으면...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에 미련 둘 곳을 지워가면서, 그렇게 며칠을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간신히 숨만 쉬며 지냈다.
태우는 살아있는 자신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아직 살아있네?"
"누구야?"
"나? 내가 누군지 알 텐데?"
"......"
"이봐, 그렇게 죽고 싶나?"
"상관 마!"
"그냥 죽을 수는 없지. 자식과 아내를 먼저 보낸 나약한 인간이 그렇게 쉽게 죽으면 되나. 길가에 뿌리내린 질경이처럼, 수많은 사람들 발길에 치여서, 찢기고 부서져가며 살아보는 게 어때?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군. 걱정하지 마 그럴 일은 없을 테니. 내가 제안을 한 가지 할게. 난 죽은 자의 영혼이 필요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영혼은 가치가 없어. 너처럼 한을 품은 자의 영혼이 내겐 매력적이야. 그냥 수집가의 취향이라고 생각하면 돼. 넌 원하는 삶을 살아. 그 삶은 내가 보장해 줄게. 그리고, 언젠가 죽음이 널 찾게 되는 날, 너의 영혼은 내 세상의 일부가 되는 거야."
"무슨 헛소리야?"
"헛소리라니, 난 아주 진지해. 늘 그래왔으니까."
"상관없어. 마음대로 해."
"이봐! 신중하게 생각해."
"신중? 웃기는군. 네가 고기 한 점을 노리는 짐승과 다를게 뭐야? 선심 쓰는 척하지 마!"
"좋아, 그런 성향 아주 마음에 드는데. 네가 영혼을 주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게 해 줄게. 고통 속에서 꺼내 달라면 그렇게 해주고, 쾌락 속에서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해주고, 욕망을 이루고자 하면 그렇게 해줄게."
"아무것도 필요 없어.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날 죽여줘!"
"워 워. 진정하라고, 난 널 죽이지 않아. 더구나, 대가 없는 행위는 정말 별로거든.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줄게. 그전엔 넌 죽고 싶어도 죽을 수는 없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필요할 때 다시 찾아올게."
태우는 정신이 혼미해 꿈과 현실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은 타는 듯한 갈증에 목말라했고, 습관적으로 받아마신 물 한 모금은 희열이 되어 다시 눈물로 흘렀다. 그는 적막한 소파에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게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는 그를 부른 건, 진동 소리였다. 폰을 찾아 방으로 들어간 그는 부재중 메시지를 확인하던 중에, 아내가 남긴 영상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자기야, 미안해. 이럴 수밖에 없는 날 이해해 줘. 민서는 우리의 전부였어. 내겐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이었고, 자연의 축복이었어. 아빠, 엄마 없이 외롭게 혼자 있을 민서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어. 가엽 쓴 우리 아기 곁에 먼저 가려는 나를 부디 용서해 줘. 저 차가운 땅 어딘가에 민서가 있겠지? 꼭 찾겠다고 약속해 줘. 한 줌의 재가되서라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안녕 내 사랑.]
08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