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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혁 Mar 20. 2024

벼리숲

22

수아와 태우는 꿈에서 본 기억을 더듬어 숲길을 따라 들어갔다. 숲 입구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가드처럼 지키고 있었는데, 은밀한 비밀이라도 감춘 것 마냥, 낯선 사람들등장에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었다. 꿈에서 본 기억만으로 길을 찾는 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들은 고장 난 나침판처럼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맸고, 흩어져 있는 퍼즐 찾아내 듯, 조각난 기억들을 조금씩 맞추고 있었. 

마침내, 새 가면을 쓴 아이가 인형을 땅에 묻었던 그곳을 현실에서 되자, 그들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태우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나뭇가지를 주워 여기저기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갈 때쯤, 생기가 없어진 검은색 비닐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감이란 결과가 좋지 않기 마련, 태우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비닐 일부를 찢자, 구멍으로 한꺼번에 올라온 역한 냄새가 그의 뱃속을 뒤틀어 놓았고, 태우가 빠져나간 자리에서 수아는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과 백골을 보게 된다.


[박사님, 찾았어요.]

"그래 알았어. 태우 님은 괜찮아?"

[네.]


전화 통화를 끝낸 서하는 침대에 누워 있는 기철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강형사님, 찾았다고 합니다.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기철이 깨어났다. 주위가 어두워서 바닥과 벽을 손으로 더듬거리며 일어섰고, 어둠 속에서 스위치를 찾아 전등을 켰다. 밝은 빛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표정을 찡그린 기철이 손바닥으로 빛을 가리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가렸던 손을 내렸다. 병원이 아니었다.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는지,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어! 여기는..."


기철이 경찰 수사망에 쫓겨 마지막으로 숨어들었던 타운하우스였다. 이곳에서 그는 검거되었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다시 그곳이라니, 영문을 몰랐던 기철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 순간, 동시다발적으로 현관문과 창문이 요란스럽게 부서졌고,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실내로 난입했다. 총을 겨눈 사람들은 기철을 향해 라이트를 비추며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쳤다. 기철이 멍한 상태로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자, 무장한 경찰들이 그를 거칠게 바닥에 엎드리게 했고, 두 손을 뒤로 꺾어 결박했다. 상황종료라는 무전 통화소리가 기철의 귓전에 날아와 박혔다. 집안에서 끌려 나온 기철은 파도에 떠밀리는 조각배처럼 압송차량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라벤더 농장 앞에 멈춰 선 차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렸다.


"여기가 벼리숲이야?"

"네, 오래전부터 그렇게 불러졌다고 하네요. 별이 잘 보여서 그런가? 정확한 뜻은 모르겠습니다. 이쪽으로 가시죠."


그들은 숲 안으로 들어갔다. 한 사람이 열심히 스마트 폰에서 뭔가를 보는 듯하더니, 나뭇가지에 묶인 손수건을 발견하곤, 사람들에게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사방으로 뻗어있는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땅을 파헤친 흔적이 있었고, 설명하기 어려운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체 는 냄새 같다며 누군가 말했고, 자신들이 찾는 장소가 맞다는 걸 직감한 사람들은 손에 위생장갑을 끼우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구덩이 앞에 쪼그려 앉아, 검은색 비닐 위의 흙을 거둬내며, 작은 막대기를 사용해 안을 확인했다.


"맞는 거 같은데. CSI 불러야겠어."

"일반 무덤을 오인하는 게 아닐까요?"


후배 경찰의 말에 웃음을 보이며 한마디 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장례 치른 사람을 토막 내고 비닐봉지에 넣어서 깊은 숲에 묻었다고? 말이 안 되잖아."

"아, 그런 것 같네요."

"개가 찾았다고?"

"네, 제보내용에는 유튜브 영상 찍으러 왔다가 자기 개가 발견했다고 되어 있어요."

"지금 두 군데 파헤쳐서 나온 걸 보면, 더 나올 수도 있겠는데, 지원 요청하자고. 대체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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