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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혁 Mar 27. 2024

오판

23

경찰 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무거운 표정으로 걸어 나와, 교탁 앞에 섰다. 그를 향해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이 부담됐는지, 얼굴에 긴장한 표정 역력다. 정중하게 목례를 한 그가 교탁에 놓인 마이크를 두드렸으나 소리가 들리않자, 누군가를 향해 제스처를 했고, 한 사람이 상체를 숙인 채 교탁 쪽으로 뛰어왔다.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왔고, 경찰 간부로 보이는 사람은 자신의 입에 맞춰 마이크 높이를 맞췄다.

자신을 벼리숲 사건의 수사본부장이라고 밝힌 그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피해 당사자와 유족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과 국민들께도 송구스럽다 말을 전하며, 강화도 라벤더 농장 인근 벼리숲에서 18구의 사체가 발견된 경위를 브리핑했다.

오랜 세월 지속된 범죄라서 사건 발생 시기는 아직 조사 중에 있으나, 사체의 사망 시기가 조금씩 다른 것으로 봐선, 개별적 건에 의한 연쇄범죄로 분석되었다고 했다. 현재 지방청 미제사건 수사팀이 자료를 넘겨받아 사건을 전담하고 있는데, 2건의 살인사건 피의자 40세 정 기철을 벼리숲 연쇄살인 및 사체유기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으며, 사건 연관성을 면밀히 조사 중에 있다고 말했다. 현재 발굴된 총 18구의 사체 중에서 1구의 사체는 아동인 것으로 확인되었고, 모발 샘플에서 채취한 DNA 국과수 분석결과, 정 기철에게 유괴된 서 민서 군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순간,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키보드 위에 있는 기자들 손이 날아다니며,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운 사건 브리핑 현장을 빠져나온 강형사가 건물 밖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에 잠겨있던 그의 얼굴에 그늘이 보이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오래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다.


수사팀 신참이었던 강 유조는 관할지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하나를 게 되었다. 수사 선상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여 미란을 임의동행하여 장시간 심문을 진행하였으나, 본인이 살해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었고, 살해 관련 결정적 증거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결국 미란 구속에 실패 만다. 미진한 초동 수사가 원인이었다는 상사의 질책이 쏟아졌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사이, 여 미란의 실종신고를 접하게 된다. 강형사는, 그녀의 행방을 찾기 위해 다각도로 추적지만, 여 미란은 마치 증발이라도 한 사람처럼 그렇게 자취를 감춰 버렸다.

강형사가 여 미란 수사에 집중하고 있 어느 날, 에게 가족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모친이 교통사고로 병원 응급실에 있다는 소식이었으나, 그가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친이 사망한 상태였다. 강형사는 실의에 빠져, 삶이 무너진 듯 고통스러웠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고 차량은 캠핑카였다. 멈춤 없이 우회전하던 차량은 횡단보도를 건너던 그의 모친을 치었고, 아스팔트에 의식 없이 쓰러진 모친을 버려둔 채 유유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담당 경찰은 뺑소니친 사고차량이 바나나렌트라는 렌트회사 차량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뺑소니 운전자를 찾기 위한 수사가 시작된.

바나나렌트 직원은 사고차량이 반납 기일을 넘긴 상태였고, 차량 계약자로부터 차량을 도난당했다는 연락을 받은 상태라서, 바나나렌트에서는 자체적으로 도난차량을 확보하기 위해, GPS 정보에 따라 차량이 있는 곳에 직원을 파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파견 나간 직원이 회사로 복귀하지 않았고, 연락도 두절된 상황이라서, 경찰에 차량 도난 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차량이 뺑소니 사고를 냈다고 하니, 직원은 어이없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경찰은 원주 방면 국도변에 버려져 있는 캠핑카를 찾게 된다. 차량이 불에 탄 상태라서 외관이 흉측했고, 실내에 설치되어 있던 블랙박스와 GPS 수신장치가 이미 소실된 상태라서, 추가 단서를 찾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차량 내부에 틈사이에서 굳어진 혈액을 발견하게 되고, CSI팀이 현장에 나와 샘플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혈흔을 찾을 수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현장에서 발견된 혈액이 사람의 것이며, 각기 다른 4명의 혈흔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단순 뺑소니 사고로 알고 수사를 했던 경찰은, 다수의 타살 추정 사건으로 번되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나나렌트에 캠핑카 도난 사실을 알린 사람은 여 미란이었다. 모든 것이 여 미란의 자작극이었다고 판단한 강형사는 범죄자의 말에 놀아난 자신이 창피하고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무엇보다도 여 미란의 범죄를 밝혀내지 못해, 어머니가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는 자책으로 힘들어했다. 그러던 중, 캠핑카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찾게 된 CCTV 영상 하나가 강형사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캠핑카에서 내린 사람이 여자가 아닌 남자였고, 그 사람이 여 미란을 흉기로 위협해 납치하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인데,  영상 속 남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한 뺑소니 운전자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뒤,

도심에서 살인사건 하나가 발생한다. 피해자 준호가 살해당하는 장면이 방범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녹화되었는데, 강형사는 그 영상 속에서 자신이 찾던 범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가 민서 군 사건의 범인 정 기철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2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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