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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혁 Apr 03. 2024

복수

24

기철이 구금되어 있는 유치장 인근, 공원 주차장 구석에 검은색 밴 한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차 안에는 한 남자가 운전석에 몸을 기댄 채, 스마트폰으로 쇼츠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어떤 아이가 차량 주위에서 기웃거리는 게 보였다. 아이 때문에 신경이 쓰였던 남자는 창문을 내렸다.


"너, 누구니?"

"아저씨, 이 차에 연예인 타고 있어요?"

"이 차는 그런 차 아니야. 밤에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가라."


말을 끝내기 무섭게 남자가 창문을 올리자, 연예인 사인을 받겠다고 용기를 냈던 아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아이가 멀어져 가는 걸 본 남자가 뒤로 고개를 돌려 격벽 창으로 안을 살피더니, 다시 쇼츠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는 화물칸 안에는 편안해 보이는 의자가 있었고, 그 의자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모두 잠든 것처럼 보였다.




낯선 환경에 어리둥절하고 있는 기철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기철이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쇠기둥에 몸이 결박되어 있어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너희들 뭐야?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걸로 날 잡아둘 수 있을 것 같아?"


기철이 힘을 쓰고 있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결박이 끊어지지 않았다.


"애쓰지 마. 여긴 네 꿈속이 아니야. 네 뜻대로 할 수 없어."

"너희들 누구야? 죽여서 잘근잘근 씹어줄까!"

"그 더러운 입 다물어요!"


기철의 입이 사라져 버렸다. 입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기철이 커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누가 먼저 하시겠어요"

"내가 먼저 할게요."


강 유조가 앞으로 나섰다.


"수아 씨, 고통을 느끼면 기철이 꿈에서 깨어나지 않을까요?"

"걱정 마세요. 여기는 제 꿈속이라서 기철이 잠에서 깨거나, 빠져나갈 수는 없어요. 고통이 현실에서 처럼 느껴지겠지만, 죽고 싶어도 죽음에 이르지 못할 거예요."


수아의 말에 강형사는 품 안에서 커다란 총을 꺼내, 기철을 향해 겨눴다. 기철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강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너 때문에 내 어머니는 길바닥에 버려진 채로 돌아가셨다. 너로 인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본 나는, 널 잡겠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솔직한 심정은  죽이고 싶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니, 안타까운 마음으로 네게 고통을 남긴다."


강형사의 총이 불을 뿜었다. 기철은 머리가 꺾이며 사방으로 피가 튀었고, 밀려오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발버둥 쳤다. 분노에 찬 표정으로 손을 떨고 있는 강 유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태우가 기철 앞에 섰다. 그리고, 기철의 머리를 세워 자신을 보게 했다.


"우리 민서가 살아 있었을 거라 들었다. 너는 피 튀는 게 싫어서, 살아있는 아이의 피를 뺐겠지만, 죽음을 앞에 둔 아들의 두려움과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를 생각하니, 나는 미치도록 견디기 힘들었다. 네가 그 어리고 착한 아이에게 했던 그 흉악한 짓거리와 내 아내가 느꼈을 새끼 잃은 어미의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마!"


긴 칼을 꺼낸 태우는 기철의 팔과 다리를 모두 잘라버렸다. 기철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서하가 앞으로 나셨다.


"아빠와 엄마를 그렇게 보내고, 그동안 나는 악몽 같았던 시간 속에서 삶을 살아왔어. 우리 가족이 당해야 했던 고통에 비하면 지금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적어도 당신은 죽지 않을 테니까."


허공에 갑자기 나타난 자동차 한 대기철을 향해 빠르떨어졌다. 쇠기둥이 부러지며 요란한 소리가 들렸고, 밑에서 붉은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수아만이 남았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느꼈던 고통을 당신은 매일 다시 느끼게 될 겁니다. 피해자 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은 이 악몽에서 벗어날 순 없을 거예요. 당신에게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마세요.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 역시 잊지 마세요.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기 바랍니다."


경찰 유치장에서 잠자던 기철이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그는 겁먹은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더듬거렸고, 꿈이었다는 걸 알게 됐는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벽에 기대어 앉았다. 아침이 오려면 아직 멀었건만, 그는 쪼그려 앉아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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