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뒤틀린 사고에서 떨어져 나온 괴물은 의식의 연결 고리가 끊긴 채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제야 긴장에서 벗어난 태우가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힘들어하는 수아를 부축해 주었다. 철갑이 찢기고 충격이 있었지만, 수아는 부러진 상처 하나 없이 괜찮아 보였고, 괴물을 상대로 태우를 지켜냈다는 부듯함 때문인지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현실로 돌아온 두 사람은 기철의 꿈에서 봤던 라벤더 농장 인근 숲에 도토리 더미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SNS 라벤더 카테고리에 사람들이 업로드한 수많은 이미지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꿈에서 봤던 장소와 비슷해 보이는 곳을 추려냈다.
꿈에서 본 장소를 현실에서 찾는다니 허무맹랑해 보일 수 있겠지만,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보면, 인간의 감각기관은 예민해서, 잠자는 동안 외부자극을 받으면 깨어나기도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정신이 외부세계와 부단히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뜻이며, 수면 중 느끼는 감각 자극이 충분히 꿈의 출처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수면 중 느끼는 후각, 청각, 촉각 같은 자극뿐 아니라, 수면 전에 봤던 시각적 자극이나 과거의 수많은 기억들까지 모두 꿈의 출처가 될 수 있고, 이를 해석해 감춰진 욕망을 엿보는 게 가능한 것이다.
물론, 그곳이 피해자들을 매장한 '도토리 더미'라는 게 확실치는 않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이들은 판단했다.
수아와 태우는 조사 대상으로 선별했던 농장을 찾아다니며 주변을 살폈지만, 꿈에서 본 장소는 찾을 수 없었다.
"여기도 아닌 것 같아요. 아저씨 보기엔 어때요?"
"글쎄, 잘 모르겠어."
"우리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라벤더 농장만 생각했던 것 같아. 다른 거 본 기억 없어?"
"기억나는 것은 주의사항 같은 게 적혀있던 안내판인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요. 아! 그러고 보니 라벤더 뒤로 뭔가 보였던 것 같아요. 어둡고 멀리 있어서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있었던 것 같아요."
"건물?"
"조형물인가? 뭔가 펼쳐진 것 같았는데..."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은 두 사람은 홀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특이하게 생긴 조형물에 대해 물었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풍차가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럼, 풍차 근처에 라벤더 농장도 있나요?"
"있기야 있죠. 여기처럼 규모를 크게 하는 게 아니라서, 볼만한 건 없어요."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둘러 나온 두 사람은 식당에서 알려준 곳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저기요! 풍차가 있어요."
"여기네. 꿈에서 본 곳이 정말 있었어."
"보세요. 오래돼 보이긴 하지만, 안내판도 꿈에서 봤던 것하고 같아요."
그들은 숲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에 봤던 라벤더 농장과는 다르게 인적이 없었고, 분위기가 그늘져 있었다. 두 사람은 꿈에서 봤던 숲에 왔다는 설렘보다는, 이곳 어딘가에 도토리 더미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2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