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발생한 날, 안강인과 여자친구인 송진경은 저녁을 먹은 뒤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와 소주를 산 뒤 근처 모텔로 들어갔다. 모텔에 들어간 안강인은 잠시 뒤 모텔에서 나왔다가 다시 모텔로 들어가는데, 안강인의 손에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두 사람은 밤이 늦도록 술을 마셨다.
그날 새벽 모텔 프런트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TV를 켜놓고 졸고 있던 직원은 놀라서 전화를 받았다.
“프런트입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안강인이었다.
“제 여자친구가 숨을 쉬지 않아요.”
놀란 모텔 직원이 허겁지겁 객실로 달려갔다. 객실에는 한 여성이 쓰러져 있었다. 송진경이이었다.
“아아악!”
모텔 직원은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송진경을 흔들었지만 송진경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모텔 직원은 재빨리 119에 신고했다. 송진경의 옆에서는 낙지 몇 마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안강인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한 사고사인 줄 알았다.
“진경이가 산낙지를 먹다가 갑자기 목이 막혔는지 켁켁 거렸어요. 급하게 손가락을 입에 집어넣고 산낙지를 꺼냈는데, 진경이가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초기 수사를 맡은 경찰도 안강인의 진술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결혼을 생각할 정도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특별한 살해 동기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모텔 직원은 송진경의 옆에는 산낙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이 보낸 수사보고서를 받아본 고혁두 검사의 생각은 달랐다. 고혁두의 눈길을 끈 것은 송진경의 친구가 한 말이었다.
“진경이는 평소 치아 건강이 안 좋았어. 그래서 딱딱한 건 잘 씹지 못했어요.”
고혁두의 머릿속에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딱딱한 걸 잘 씹지 못하는 사람이 산낙지를 먹으려고 했을까?’
고혁두는 사건은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먼저 송진경의 보험 가입 현황부터 챙겨 봤다. 송진경은 생명보험에 가입한 상태였는데, 송진경의 사망으로 인한 보험금은 2억 원이었다.
보험금을 받는 보험수익자는 안강인이었다. 처음부터 안강인이 보험수익자였던 건 아니고 사고 발생 1달 전에 안강인으로 변경되었다. 수상한 냄새가 났다.
안강인이 보험금을 달라고 보험회사에 연락을 한 건 송진경이 사망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송진경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안강인은 보험금 지급을 요청한 것이다. 안강인은 말했다.
“어차피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서 미리 보험수익자를 변경한 거예요. 그리고 법에 따라 보험금을 청구했을 뿐인데 그게 잘못인가요?”
하지만 주변을 조사해보니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는 말도 의심스러웠다.
“강인이가 결혼을 한다구요? 그 천하의 바람둥이가? 얼마 전에 새로 꼬신 여자가 의사라고 얼마나 잘난 척을 했는데요. 근데 송진경은 누구죠?”
안강인의 지인은 오히려 반문했다. 안강인의 행적을 살펴보니 그 지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송진경은 현장에서 바로 즉사한 것이 아니고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며칠 간 치료를 받다 입원한 지 3일째 되는 날 사망하였다. 송진경이 사경을 헤매는 동안에도 안강인은 다른 여자와 클럽을 가고 모텔도 갔다. 결혼을 앞둔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편이었다. 그만큼 무죄로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그걸 막으려면 그물을 더욱 촘촘하게 짜야 한다.
고혁두는 안강인이 처했던 상황을 좀 더 유심히 살펴봤다. 안강인은 뚜렷한 수입이 없었고, 간혹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버는 정도였다. 수입에 비해 빚은 많았다. 도박에 빠진 탓이었다.
처음엔 성과가 좋았다. 하룻밤에 100만 원 넘는 돈을 딴 적도 있었다. 이렇게만 되면 곧 부자가 될 것이란 기대도 생겼다. 하지만 그건 운이었다. 수입이 별로 없었던 안강인이 도박 자금을 마련한 방법은 사채였다. 사채로 생긴 빚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리고 빚이 늘어날수록 사채업자들의 압박 강도도 강해졌다. 사채업자들이 고용한 조폭들에게 끌려가서 곤죽이 되도록 맞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너, 지금 대충 몸으로 때우려고 하는 거야?”
“꼭 갚겠습니다.”
“무슨 수로?”
“다음 달에 돈이 2억 가량 나올 데가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채업자는 안강인이 위기를 모면하려고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속는 셈 치고 믿었다가 돈을 안 갚으면 장기라도 떼어서 돈을 받아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예상 외로 안강인은 약속대로 돈을 모두 갚았다.
“그러니까, 안강인이 2억 원 정도 돈이 나온다고 했다는 말이죠?”
고혁두가 묻자, 사채업자가 대답했다.
“그럼요, 검사님. 제가 누구 앞이라고 거짓말을 하겠습니다. 제 두 귀로 똑똑하게 들었습니다.”
그 2억 원은 송진경의 사망으로 안강인이 받은 보험금 액수와 일치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결정적 증거는 안강인의 진술에서 나왔다.
고혁두가 안강인에게 물었다.
“사건이 발생한 날 모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보세요.”
“그날 진경이가 산낙지를 먹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가서 산낙지 몇 마리를 사왔고 산낙지를 안주로 해서 술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산낙지를 씹어먹던 진경이가 켁켁 거렸습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다급하게 손가락을 목에 집어 넣어서 산낙지를 빼어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진경이는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고혁두의 눈빛이 반짝였다.
“송진경 씨가 산낙지를 씹어 먹었단 말이죠?”
“그럼요.”
“그냥 입에 넣기만 한 게 아니라 이빨로 씹었단 말이죠?”
“몇 번을 말합니까? 분명히 산낙지를 씹어 먹었다구요. 검사님. 진경이가 산낙지를 먹은 건 사건 현장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안강인은 당연한 걸 왜 계속 묻냐는 투로 되물었다. 안강인의 말대로 사건 현장을 찍은 사진에는 분명 산낙지가 모텔 바닥에 놓여 있었으니, 안강인의 주장도 나름 일리가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네요.”
고혁두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만약 안강인 씨 말대로 송진경 씨가 산낙지를 씹다가 목이 막혔다면 당연히 그 산낙지에서 송진경 씨의 이빨 자국이 나왔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모든 산낙지에 대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이게 바로 국과수의 감정서인데, 산낙지에서는 이빨 자국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안강인은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이었다.
“어.... 그게....”
하지만 말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고혁두가 마침표를 찍듯 말했다.
“조사 끝났습니다. 다음엔 법정에서 뵙겠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안강인이 괴성을 질렀다.
“나는 안 죽였어. 안 죽였다고, 씨X.”
안강인은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고 7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교도소에 갇힌 안강인은 주기적으로 고혁두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X같이 됐어.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두고 봐. 여길 나가면 반드시 당신이 죗값을 치르게 하겠어.”
편지를 받고 나면 기분이 불쾌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선배들도 범죄자들의 협박은 검사가 겪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안강인의 말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 7년이 흐른 뒤였다.
***
노을이 졌다. 하늘이 먼저 물들었고, 이내 강이 붉어졌다. 심정순은 강가에 물끄러미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인데, 왜 그랬는지 눈물이 났다. 소리 없는 눈물이 굵게 주름이 패인 얼굴 사이로 흘러내렸다.
“괜찮으세요?”
심정순의 옆에 앉아 말을 건넨 건 손아정이었다.
“늙으면 이렇게 주책이 없어진다니깐.”
심정순은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눈물이 날 땐 울어야죠.”
차분하고 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어제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할머니는 노을을 보면 뭐가 떠올라요?”
“먼저 떠나보낸 영감도 떠오르고, 끝끝내 보내지 못하고 있는 한 사람도 떠오르고...”
심정순의 목소리는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심정순은 남편과 결혼하고 2년 만에 아이를 가졌다. 그런데 아이는 병약한 편이었다. 열이 나서 온몸이 불에 데인 것처럼 뜨거울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툭 하면 기침을 했는데, 심할 때면 숨이 넘어갈 듯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어느 날, 아이는 열이 났고 기침을 했다. 온몸에는 반점도 생겼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안 되겠다 싶었던 심정순은 아이를 들쳐업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아이는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미친 듯이 울부짖었지만 이미 떠난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때 하늘을 봤다. 하늘엔 노을이 가득했다. 그때부터 심정순에게 노을은 떠나보내지 못한 아이였고, 수시로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심정순은 손수건을 꺼내 눈 주위를 찍어냈다. 옆에 앉아 있던 손아정에게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심정순이 느끼는 슬픔이 손아정에게 전이된 것이었다.
“젊은 아가씨 앞에서 청승맞게 이게 뭐하는 짓인지. 미안해요, 아가씨. 괜히 우울한 이야기를 했네.”
“아니에요. 제가 괜히 노을 이야기를 꺼내서 할머니의 아픈 상처를 꺼냈나 봐요. 죄송해요, 할머니.”
“괜찮아요.”
심정순이 손아정의 등을 토닥였다.
“할머니, 저 사실은요...”
한참을 울고 난 손아정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리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손아정은 어릴 때부터 연예인을 꿈꾸었다. 춤을 추는 것도 좋았고, 노래를 부른 일도 즐거웠다. 흥이 많은 손아정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는 게 손준철의 낙이었다. 그런 손아정이었으니 중학교 때 방과 후 활동으로 노래 동아리를 선택한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수 준비를 했어요. 다른 아이들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때부터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서 준비하던데 그에 비하면 전 많이 늦었죠.”
손준철은 손아정이 연예인이 되는 걸 반대했다. 딸이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연예인이 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손준철은 딸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번듯한 직장의 회사원이 되어 꼬박꼬박 월급 받는 삶을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러기엔 손아정의 끼가 넘쳤고 손아정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손아정이 일주일이 넘도록 밥도 먹지 않고 학교도 가지 않자 결국 손준철은 백기를 들었다.
오디션이란 오디션은 다 봤다. 노래 부르고 춤추는 영상을 찍어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무수히 이메일을 보내던 중에 오영훈을 만났다. 오영훈은 자신을 대형기획사 프로듀서 출신이라고 했다. 오영훈이 운영하는 YH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은 다른 기획사에 비해서는 다소 허름한 편이었다.
“이제 막 독립해서 아직 정리가 잘 안 됐는데, 곧 회사 정비될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너는 음악에만 신경 쓰면 돼.”
기획사가 서울이 아니라 광주에 있다는 게 다소 마음에 걸리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꼭 서울에 있는 기획사만 성공한다는 법이 없다. 어차피 연예기획사 시장은 극도로 치열한 곳이었다. 좋게 생각하면 장점도 있었다. 고향과 멀지 않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손아정은 YH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이 되었다.
그때부터 아침부터 밤까지 입에 단내가 나도록 춤을 추었다. 목이 쉬어서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까지 보컬 트레이닝도 받았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났을 때, 드디어 데뷔조에 들어갔다. 데뷔곡이 나오고 안무도 준비됐으며 이제 각 멤버별로 포지션을 정하는 일만 남았다.
그날도 손아정은 연습실에 남아 있었다. 꿈에 그리던 데뷔가 코앞에 닥쳤는데 허투루 준비할 수가 없었다. 다른 멤버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늦은 밤까지 홀로 연습실에 남아 안무를 익히고 또 익혔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정이 아직도 연습하고 있구나.”
오영훈이었다. 얼굴이 발그레한 걸 보니 술이 꽤나 취한 모양이었다.
“우리 아정이, 그동안 얼마나 연습했는지 한 번 확인해볼까?”
손아정은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췄다. 손아정의 앞에 앉아 있던 오영훈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손아정은 기분이 이상했지만 그렇다고 오영훈에게 눈이 왜 그러냐고 차마 물을 수 없었다.
“춤은 이만하면 됐고, 노래를 들어봐야겠어.”
그러더니 오영훈은 손아정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손아정이 화들짝 놀라 손을 빼려 했지만 오영훈의 손아귀 힘이 워낙 세서 손을 뺄 수 없었다. 오영훈은 손아정을 안무실 구석에 있는 보컬 레슨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손아정은 이번에도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잘 하긴 했는데, 아직 호흡이 불안정하네.”
그러더니 오영훈의 손이 손아정의 배를 덮었다. 순간 놀란 손아정이 몸을 뒤로 뺐다.
“대표님, 왜 그러세요?”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노래 배우기 싫어?”
오영훈의 언성이 높아졌고 눈빛도 이상했다. 손아정은 이곳을 벗어나야 하는 게 급선무라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슨실을 나가려고 하는 찰나, 오영훈이 손아정의 팔을 잡았다.
“튕기는 것도 적당히 해야 재밌지, 과하면 재미없어.”
오영훈은 싸늘하게 말했다.
“너 데뷔 안 하고 싶어?”
손아정의 발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