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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 카페

by 로도스로

예상대로 휴대폰의 배경화면 사진이 변경되어 있었다. 배경화면의 사진은 분위기 좋은 카페 사진이었다.

‘여긴 어딜까?’

짚이는 곳이 있기는 했지만, 확실치는 않았다. 제대로 확인하려면 손아정의 도움이 필요했다. 고혁두는 손아정의 방문을 두드렸다.

“아정 씨가 힘들다는 걸 알지만, 사건 발생 다음 날 카페에서 오영훈을 만났던 일을 설명해 줄 수 있어요?”

“그날은요…”

손아정은 중간중간 눈물을 보이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차분하게 말을 해나갔다. 야기를 다 듣고 난 고혁두가 말했다.

“말해줘서 고마워요.”

“변호사님, 이젠 어떻게 할까요?”

“아무래도 그 현장에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혹시 그 카페가 여기 맞아요?”

고혁두는 휴대폰을 보여줬다. 바탕화면 속 사진을 곰곰이 살펴보던 손아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맞는 것 같아요. 근데 이 카페 사진을 변호사님이 어떻게 가지고 계세요?”

고혁두는 곤혹스러웠다. 휴대폰은 보통 물건이 아니고 하얀빛이 생겼다 사라지면서 바탕화면이 바뀐다는 걸 손아정에게 납득시키긴 매우 어려웠다. 직히 말하면 고혁두도 이 휴대폰의 정체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기도 했다.

“그건 지금 설명하긴 곤란하니,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그것보다 지금은 이 카페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은데 혹시 카페 이름 생각나요?”

“YH 엔터테인먼트 근처에 있는 곳인데, 이름까지는 잘 생각이 안 나네요.”

고혁두가 쿨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발로 뛰면 되니까.”

“같이 갈까요?”

“아니요. 일단 제가 먼저 가볼게요.”


***

지준민 검사장이 미리 알려준 대로 맹경혜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다. 담당검사인 박주용은 맹경혜의 보좌관에게 전화하여 수사 일정을 알려줬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청주지검으로 출석하시길 바랍니다.”

광주에서 청주까지 간다는 게 귀찮고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맹경혜를 맞이한 사람은 한우진 부장검사였다.

“어서오십시오, 의원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피곤한 편이니 가급적 빨리 마무리 짓죠.”

“그럼 바로 조사를 진행하겠습니다. 법에 따라 호칭은 ‘참고인’으로 하겠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보통은 평검사가 수사를 진행하지만 맹경혜가 현직 국회의원인 점을 고려하여 부장검사가 직접 수사하기로 한 것이다. 박주용 검사는 한우진 부장검사 옆에서 보조를 맞췄다.

“참고인은 권동기 씨를 잘 아시죠?”

“알죠.”

“권동기 씨는 언제부터 후원회장을 맡아 왔었나요?”

“한 10년 쯤 되었을 겁니다.”

“혹시 권동기 씨의 딸 권보미도 아나요?”

“딸이 있다는 정도는 압니다.”

“권보미 씨가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입사한 건 모르시나요?”

맹경혜가 팔짱을 끼더니 반문했다.

“남의 집 딸이 어디 취업하는 것까지 알아야 하나요? 국회의원이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한우진 부장검사는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이건 주택공사 인사팀 담당자가 작성한 ‘브이아이피(VIP) 추천 리스트’라는 파일입니다. 당시 주택공사에 지원했던 사람들인데 비고란을 보면 참고인의 성명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리스트의 권보미의 이름 옆에는 ‘맹경혜 의원 강력 요청 인물’이라는 기재가 적혀 있었다. 순간 맹경혜의 인상이 구겨졌다.

‘멍청한 것들. 뭘 이런 걸 기록으로 남기고 그래.’

하지만 침착함을 유지했다.

“이건 제가 작성한 게 아니에요. 인사팀 직원이 뭘 잘못 알고 이렇게 적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제가 잘못을 한 건 아니죠.”

맹경혜는 짐짓 여유를 부렸다.

“채용 절차가 진행되던 3월 무렵에 주택공사 인사담당 임원 김태성을 따로 만난 적은 없나요?”

“김태성이요? 그게 누군가요? 전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

맹경혜는 철저하게 오리발 전략을 구사했다.


***

“어서오세요.”

카페 주인이 반갑게 인사했다. 고혁두는 내부를 유심히 살폈다.

‘여기도 아니군.’

고혁두는 주인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카페를 빠져 나왔다.

YH 엔터테인먼트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커피를 참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카페가 정말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주변 카페를 뒤지기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그 카페를 찾았다.

“뭘로 드릴까요?”

카페 알바생이 물었다. 커피를 마시는 게 주된 목적은 아니었지만, 맨입으로 물어보기가 그래서 일단 먼저 주문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4,000원입니다.”

“저 혹시 2019년 8월에도 이 가게에서 근무하셨나요?”

“네, 그런데요?”

고혁두는 명함을 내밀었다.

“저는 고혁두 변호사라고 합니다.”

변호사라는 말에 알바생은 다소 긴장한 기색이었다.

“저희 의뢰인 사건 관련해서 몇 가지 여쭤보려고 합니다.”

고혁두는 휴대폰으로 손아정 사진을 찾아서 알바생에게 보여줬다.

“혹시 이 분 얼굴 기억나요? 이 근처에 있는 YH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이었던 사람이예요.”

알바생은 사진을 찬찬히 뜯어봤다.

“본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네요. 카페 손님이 한 둘도 아니고, 요즘 친구들은 다들 비슷하게 생기기도 해서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물어보긴 했지만, 고혁두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냥 물러날 수는 없다. 천장을 살펴봤다. CCTV가 곳곳에 달려 있었다.

“저기 CCTV의 영상 보관 기간이 얼마나 되나요?”

“저는 잘 몰라요. 사장님에게 한 번 물어볼게요.”

알바생은 카페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네. 사장님 잘 알겠습니다.”

고혁두는 초조하게 알바생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알바생이 말했다.

“사장님께 물어봤는데, CCTV 영상의 보관기간은 30일이라고 하네요.”

보관기간이 이미 상당히 지나있었다. 고혁두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망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바생에게 인사를 한 뒤, 고혁두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오영훈과 손아정이 앉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고혁두는 노트북을 켰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영훈에 대한 조사를 해보기로 했다. 포털 사이트에 오영훈의 이름을 검색했다. 제일 많은 수를 차지하는 뉴스는 SYJ 엔터테인먼트와 YH엔터테인먼트의 인수 합병을 전하는 기사였다. 성폭행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기사는 많지 않았다.

‘잘 틀어막았네. 돈 꽤나 썼겠어.’

그 사이에 언론사에 압력을 가한 모양이었다. 그나마 이 재판을 다룬 기사도 오영훈 측의 일방적 주장을 비중 있게 보도하는 경향이 강했다. 기사 밑에 달린 댓글도 마찬가지였다.

- 딱 냄새가 나네요, 꽃뱀냄새가!

- 오영훈 대표님! 거짓고소에 기죽지 마시고 꼭 승리하세요~

- 저는 대표님을 믿습니다.

댓글 알바까지 고용한 모양이었다.

‘치졸한 놈.’

욕이 절로 나왔다. 고혁두는 기사 창을 닫았다. 공식적인 기사에서는 특별한 게 없었다.

그때 메일 도착을 알리는 알림이 울렸다. 메일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노트북 화면이 갑자기 꺼졌다.

“어? 갑자기 왜 이래?”

노트북을 툭툭 쳐봤지만, 여전히 꺼진 상태였다. 알고 보니 배터리 문제였다. 5년을 넘게 사용한 노트북이다보니 배터리가 금방 나갔다. 노트북 충전기를 챙긴 게 다행이었다.

고혁두는 가방에서 노트북 충전기를 꺼냈다. 하지만 콘센트 찾기가 어려웠다.

“저기 혹시 여기 콘센트는 없나요?”

고혁두의 질문에 카페 알바생이 말했다.

“콘센트는 바닥에 있어요.”

콘센트는 바닥에 매립된 플로어 콘센트였다. 고혁두는 콘센트 커버를 열었다. 청소를 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는지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충전기 전원을 끼우려던 고혁두는 콘센트 함에 있는 종이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호기심에 종이를 펼쳐봤다.

“누가 이런데 종이를 버리고 그래?”

고혁두는 쓰레기통에 종이를 버렸다. 종이는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뒤엉켰다. 자리로 돌아온 고혁두는 다시 노트북을 켠 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실시간 검색어 목록에 “예쁜 손글씨”가 있었다. 뭔가 싶어 눌러봤더니 기사가 검색되었다. 필기구 업체에서 “예쁜 손글씨 쓰기” 대회를 개최하는 모양이었다.

‘AI가 거의 사람처럼 행동하는 요즘 시대에 손글씨 쓰기 대화라니.’

그런데 그 순간! 아까 버렸던 종이에 뭔가 글씨가 쓰여져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글씨는 어디서 많이 본 글씨라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본 적 있는데, 어디서 봤더라.’

곰곰 생각하던 고혁두가 무릎을 탁 쳤다.

“내가 왜 그걸 놓쳤지?”

주먹으로 머리를 한 대 콩 쥐어 박았다.

고혁두는 종이를 찾으러 쓰레기통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쓰레기통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여기 있던 쓰레기통 어디 갔나요?”

알바생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좀전에 버렸는데요.”

“어디에요?”

알바생은 100리터짜리 대용량 쓰레기봉투를 가리켰다.

“저거 좀 가져갈게요.”

고혁두는 알바생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쓰레기봉투를 가지고 공터로 갔다. 그리고 쓰레기봉투를 헤집기 시작했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오물도 옷과 몸에 묻었다. 하지만 고혁두는 종이 찾는 걸 멈추지 않않았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모습은 정신이 좀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참을 뒤진 끝에 고혁두는 마침내 그 종이를 찾아냈다.

“빙고!”


***

고혁두는 재빨리 손아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정 씨가 해줘야 할 게 있어요.”

“그게 뭔가요?”

“법정에 증인으로 한 번 더 설 수 있겠어요?”

“네?”

손아정은 덜컥 겁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갔다가 무참하게 깨졌기 때문이다. 그때 받았던 충격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변호사님, 제가 증인으로 가는 게 재판에 도움이 될까요? 오히려 더 불리하게 만들까봐 걱정이 되네요.”

“아정 씨가 걱정하는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면 아정 씨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요.”

고혁두는 카페에서 발견된 종이와 자신의 변론 전략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를 한 번 더 믿어보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손아정을 설득한다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무리 손아정이 증인이 되겠다고 하더라도 검찰이 증인신청을 하지 않으면 증인이 될 수 없었다.

고혁두는 김강혜 검사를 찾아갔다.

“검사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다음 재판에서 손아정 씨가 한 번 증언을 할 수 있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김강혜 검사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손아정 씨가 지난번에 증언하고 나서 재판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 몰라서 하시는 말씀인가요?”

“손아정 씨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손아정 씨 증언 이후로 재판 분위기가 저희 쪽에 많이 불리해진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이 사건으로 가장 피해가 큰 사람은 바로 손아정 씨입니다. 재판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사람도 손아정 씨이구요. 그녀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실 수 없을까요?”

김강혜 검사가 대답했다.

“한 번 고민은 해 볼게요.”


***

오영훈 사건의 재판일. 오영훈은 엉덩이를 앞으로 빼서 약간 비스듬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처음 법정에 왔을 때만 해도 잔뜩 긴장해서 허리를 곧추세운 경직된 자세로 앉았는데, 이젠 승리를 예감한 탓인지 자세도 불량한 편이었다.

“소 변호사님, 오늘이 마지막인 거죠?”

“네, 오늘 재판 끝낼 예정입니다.”

“빨리 끝내고 가서 술이나 실컷 마셨으면 좋겠군요. 저번에 갔던 ‘더 킹’ 알죠? 거기에 요새 새로 들어온 애들이 있는데, 걔들이 아주 끝내준대.”

재판부가 입장하면서 오영훈의 수다가 멈췄다.

재판장이 말했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쟁점과 사실관계는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습니다. 검찰과 피고인 측이 특별히 하실 게 없으면 오늘 재판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데, 어떠신가요?”

재판장의 질문에 소원철 변호사가 즉각 대답했다.

“피고인 측은 더 이상 할 게 없으니, 조속한 종결을 희망합니다.”

“검찰 측은 어떤가요?”

김강혜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혁두는 간절히 희망했다.

‘증인신청을 하겠다고 말해야 하는데...’

간절한 마음을 담아 김강혜 검사를 바라보는 고혁두. 하지만 김강혜 검사는 고혁두의 눈길을 외면했다.

‘증인신문을 하지 않을 생각인 건가?’

만약 김강혜 검사가 증인신청을 하지 않으면 재판은 이대로 끝이었다. 그러면 오영훈은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김강혜 검사가 입을 열었다.

“검찰측은...”

‘설마 이대로 끝내려는 건 아니겠지?’

고혁두는 입이 바짝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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