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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도스로 Oct 18. 2020

들어가며

 법과 역사는 낯선 조합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둘은 접점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법과 역사는 관심을 두는 시점이 다릅니다. 역사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내고 그 일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주안점을 두므로, 본질적으로 과거지향적입니다. 하지만 법은 과거보다는 현재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사회를 구성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해야 할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규율을 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역사가 과거에 매몰된 건 아닙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역사를 통해 오늘날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과거와 현재를 대화”라고 표현하기도 하죠. 마찬가지로 법이 오롯이 현재에만 의존하는 건 아닙니다. 법은 기본적으로 오늘을 규율하는 규칙이지만 과거의 사례를 참고하고 과거 사례가 판례라는 창을 통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과거와 연관성을 갖습니다.

 역사와 법은 모두 ‘일어난 사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역사가 긴 호흡으로 멀리서 사실을 보는 반면, 법은 짧은 호흡으로 가까이에서 사실을 본다는 점에 차이가 있기는 하나, 양자는 모두 구체적인 사건에 관심을 둡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과거에 일어났던 일은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태조 시대 이방원이 왕권을 둘러싸고 ‘왕자의 난’을 일으킨 것과 유사하게 오늘날에는 재벌 그룹의 자녀들이 경영권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는 일이 반복되는 식이죠. 어쩌면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사람의 운명이 같은 식으로 반복된다는 평행이론이 맞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일은 사관의 해석을 통해서, 오늘의 일은 법관의 판결을 통해 판단을 받습니다.  물론 법원이라고 해서 모든 사실관계를 100%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며 법원의 판단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건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관련 사건 기록을 면밀히 살펴보고 오랜 시간 고민을 한 판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판사도 사람인 까닭에 판결에 주관적인 면이 개입될 수도 있지만, 헌법과 법률은 사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권한을 판사에게 부여하고 있으므로, 판결이 사건을 해석하는 출발점이어야 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법이라는 창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는 방법도 매우 다양합니다. 법리적인 관점에서 주요 논쟁 지점을 살펴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고, 사건과 연관된 법률적인 지식을 주로 전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물론 필요한 범위 내에서는 법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에 대한 설명을 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법리와 법적 지식보다는 사건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일에 대해 법원은 어떻게 판단을 했는지, 그런 판단을 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저 역시 학창시절에는 역사를 그저 암기과목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용어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어려운 한자어를 외우고 국사 시험 문제를 푸는 기술을 익히는데 골몰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 이후로도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별로 없어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가 깊지 못합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역사 관련 책을 읽고, 신문 기사, 논문, 인터넷 자료를 확인하였지만 역사에 대한 서술부분은 ‘역사를 잘 모르는 일반인의 관점’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이 글은 역사적인 사건과 연관을 가지는 오늘날의 사건을 법의 관점에서 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 역사보다는 법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걸 변명으로 삼아보려고 합니다.     


 사건사고는 수시로 일어납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조차 않습니다.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사건도 사건의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기에는 당장 내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버겁기 때문입니다.

 큰 화제가 되어 잘 알고 있었던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혀지고 맙니다. “아,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뭐였더라?”라는 게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이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면, 지나간 일들에서 교훈을 찾고 그걸 기억해야 합니다. 망각이라는 강물에 휩쓸려 내려가지 않으려면 부단하게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노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고, 이 글도 그런 노력의 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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