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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부신 희열의 불꽃

개톱날고사리 - 포자엽 새순을 찾아서

by 로데우스

가장 눈부신 희열의 불꽃은

종종 예상치도 못했던

불씨에 의해 점화되곤 한다.

- 사무엘 존슨 -


tfile.jpg 양치식물의 자연사 / 새순 그림은 개톱날고사리 포자엽



양치식물 공부에 탄력이 붙은 것은 아주 우연이었다.

'포막'을 검색하다가 '양치식물의 자연사'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그 책 속에서 발견한 글귀에 눈이 확 커졌다.


우연이란 이름을 가진 기회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튀어나오곤 하는데

사무엘 존슨이 말한 "가장 눈부신 희열의 불꽃"을 양치식물 책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그 책의 표지는 개톱날고사리 포자엽의 새순이 주인공이다.


개톱날고사리를 보는 것과 포자엽 새순을 보는 것 2가지 목표를 세웠다.

개톱날고사리는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과 가거도에만 서식하는 희귀 고사리이다.

그 후 개톱날고사리를 찾으려고 묻고 탐사에 눈을 부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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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톱날고사리 알현


양치식물 중 2형의 잎을 가진 고사리들이 있다.
고비, 개톱날고사리, 꿩고사리, 섬꿩고사리, 꼬리고사리 등은
영양엽과 포자엽, 각각의 잎을 가진다.

잎이 넓은 영양엽은 땅 가까이 몸체를 숙이지만
포자낭군을 만드는 포자엽은 포자의 산포를 위해 높이 자란다.

개톱날고사리의 포자엽을 찾아야 포자낭군을 볼 수 있다.


입소문을 듣고, 묻고, 부탁하고, 찾았으나 개톱날고사리 자체를 보는 것도 어려웠다.

다행히 자생지 정보를 알게 되었고 두 번이나 찾았으나 개톱날고사리를 찾지 못했다.

세 번째에는 정보를 준 분과 동행해서야 개톱날고사리를 알현하였다.


그 후 여러 번 찾았으나 포자엽의 큰 키는 보지 못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애호랑나비 알을 찾아 족두리풀 잎 뒤를 뒤집어보듯

포자낭이 달렸는지 수많은 잎을 뒤집어보았으나 모두 영양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포자엽을 확인했다.

사무엘 존슨이 말한 "희열의 불꽃"이 가슴에서 훨훨 타는 감동이었다.

곶자왈 길가의 풀숲에서 자연이 선물한 풍경에 행복이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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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톱날고사리 포자엽의 포자낭군


개톱날고사리 포자엽을 보았으니 이듬해 이 자리에서 포자엽 새순을 촬영해야겠다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그 이듬해 봄에 낙상사고를 당해 경비골이 골절되어 입원하였다.

개톱날고사리 포자엽 새순을 보아야 하는데 침대에서 누워 있어야 했다.


정형외과는 목공소라는 말처럼 망치 소리, 톱날 소리가 쟁쟁하다.

톱날 소리를 들으며 다리에 철심을 박았고, 통깁스에 뚜껑을 만들려는 톱날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아야 했다.


재활을 하고 이듬해 봄, 다리를 절룩이며 개톱날고사리를 찾았다.

2년 전에 본 모습보다 더 왕성히 개톱날고사리들이 자라고 있었고

뜻밖에도 큰 키의 포자엽들이 많이 보여 혹시나 새순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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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톱날고사리 포자엽 새잎


낙상사고 후 제주에 다시 내려온 여름에 개톱날고사리의 또 다른 서식지를 알았다.

그곳에서 바위 옆에 홀로 솟은 포자엽 1개를 발견했다.

다음 해 이 바위 옆에서 새순을 찾으면 된다는 희망을 품었다.


제주살이 마지막 해인 2024년 2월 설 명절을 보내고 다리의 철심제거 수술을 받았다.

척추마취만 하였기에 망치소리, 의사와 간호사의 말소리가 들린다.

땅! 땅! 땅! 망치소리, "나온다! 나와!", "메꿔!"


다리에 철심을 박은 후 피나는 재활을 한 후 22개월 만에 철심 제거였다.

목발부터 짚으며 다시 재활의 봄을 보냈다.

그 와중에 개톱날고사리 포자엽 새순을 보아야 한다.


철심이 빠진 허약한 다리이기 때문에 곶자왈 길 옆의 서식지를 먼저 찾았다.

가시덩굴이 엉긴 풀밭에서 포자엽 위치를 가늠하지 못해 어느 것이 포자엽 새순인지 알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서식지의 험난한 숲을 찾았다.


철심의 방패가 사라진 다리로 화산석이 산재한 거친 숲을 걸었다.

무거운 삼각대를 들고 다리의 아픔을 참으며 포자엽 새순을 기대했다.

개톱날고사리 서식지에 닿아 찾아보니 새순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지난해에 보았던 바위 옆의 위치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새순이 나올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허탈과 아쉬움으로 다리에 힘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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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톱날고사리 영양엽 새순


개톱날고사리 포자엽 새순의 기대는 제주살이 자체가 되었다.

그러나 제주살이 마지막 해는 본래의 목적이었던 올레길과 오름 투어에 집중했다.

결국 개톱날고사리 포자엽 새순은 보지 못한 채 2024년 가을에 제주살이를 마쳤다.


미완성은 완성의 기대에 희망의 등불을 만든다고 믿는다.

영양엽의 새순도 포자엽의 포자를 위해서 영양을 준다.

개톱날고사리에 대한 열정이 양치식물을 즐기는 현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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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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