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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닮고 싶은 지느러미의 유연성

지느러미고사리 - 소중한 삶의 이력

by 로데우스

물고기가 펄떡 뛰어올라

바위 모서리에 지느러미가 걸렸다.

그 자리에 싹튼 지느러미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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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느러미고사리(좌), 엔가와 초밥(우)


물고기들이 물속에서 이동할 때 물의 흐름을 제어하는 것이 지느러미이다.

몸의 좌우균형을 잡고, 몸의 흔들림을 방지하고, 추진력을 내는 지느러미는

통깁스한 다리로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해 뒤틀린 몸을 가진 낙상자가 닮고 싶은 기능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것이 되듯

나에게 평범하게 걷는다는 것은 나의 재활 목표인 동시에 닿고 싶은 경지이다.

통영살이 첫 설날 명절을 수원에서 보냈다.


설 전날 아들이 낚시로 잡은 대광어(약 1m)의 살집과 지느러미를 가지고 왔다.

살집으로는 동그랑땡을 만들고, 지느러미는 초밥회로 만들었다.

지느러미의 날개살은 일어로 '엔가와'라고 부르며, 횟감으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쫀득쫀득한 식감과 고소함을 음미하며

대광어의 지느러미가 주는 맛의 향연이 깊어질 때
제주의 계곡에서 지느러미고사리 새순을 보던 순간이 너울너울 헤엄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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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느러미고사리 새순


온몸은 땀으로 범벅을 하고, 땀이 흐른 안경을 낀 시야는 흐릿하다.
허리와 수술다리는 교대로 아우성인데, 지느러미고사리 새순이 대체 뭔가?

배고픔을 참으며 시간이 흐른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뷰파인더를 확인하며 재도전을 반복한다.
이 길은 구도의 길인가.

오전에 달려올 때 라디오 전파에서
"뒤 돌아보니 먼 세월이 잠시 전이었다."는 멘트를 들었는데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 고사리 새순에
폭포 절벽 안쪽 후미진 곳에서 땀과 모기와 싸우며
개고생을 하고 있는 현실이라니

하지만 인생 뭐 있어? 일직선으로 간다.
나의 삶! 내 마음 끌리는 대로 살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지느러미고사리 새순에 초점을 맞춘다.
드디어 미소를 짓고 허리를 폈다.

언제 왔는지 낚시꾼은 낚싯대를 드리웠고
외국인 부부는 돗자리에 앉아 흘끔 쳐다본다.
괜히 민망해지는 나의 얼굴이다.

배는 허기져 하소연할 힘도 없는 듯했다.


img.jpg 지느러미고사리 군락 /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파도를 닮았다.


지느러미고사리속(Hymenasplenium)은 전 세계 열대를 중심으로 50여 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지느러미고사리(H.hodoens) 1종이 있다.

우편이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비슷하기 때문에 지느러미고사리라고 한다.


지느러미고사리속(Hymenasplenium)은 뿌리줄기 형태가

꼬리고사리속(Asplenium)과 다르다.

지느러미고사리의 속명(Hymenasplenium)에서 Hymen은 막(膜)이란 뜻이다.


뿌리줄기가 길게 옆으로 뻗고, 배복성을 갖는다는 특징이 있다.

배복성(背腹性)은 뿌리줄기의 등 쪽에 잎이 붙고

아래쪽에 뿌리가 나오는 성질을 말한다.


img.jpg 지느러미고사리 포자낭군


지느러미고사리는 제주의 계곡이나 동굴 등 암벽에 착생하고,

어둡고 습한 환경에서 자란다.

그러므로 지느러미고사리를 보는 곳은 모기와 싸워야 하는 힘든 곳이다.

제주살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지느러미고사리를 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모험을 강행해서야 발견의 희열을 맛봤고

파도 위로 지느러미를 날렵하게 펼치는 물고기를 상상하면서

감동의 물결 속으로 나를 싣고 넘실 넘실 들어갔다.


지느러미고사리의 풍경과 닮고 싶은 지느러미 역할의 유연성은

나의 재활 의지를 돕는 힘이자 내 삶의 에너지이다.

지느러미고사리 새순에 몰두했던 시간은 소중한 나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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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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