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편(3)
결혼하고 7월에 부부는 함께 부천 영화제를 갔다. 짝꿍은 첫 영화제였는데, 아무래도 부천 판타스틱 국제 영화제는 짝꿍이 관람하기에는 다소 잔인하거나 매니악한 성향의 영화가 많은 편이었고, 평일 퇴근 후 저녁 타임 한 편을 보거나 주말에 두 편 정도 보는 것이 다여서 온전히 영화제를 즐겼다고 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해 10월. 주말과 하루 연차, 한글날을 포함해 4일 정도의 연휴에 부산을 가보기로 했다. 결혼 전에 목사님께 주례를 부탁드리러 당일치기로 부산에 간 적은 있었지만 결혼 후 신혼여행을 제외하면 첫 여행이기도 했다. (첫 장기 여행이 영화제라니!)
부산에 가기로 한 토요일 아침. 양가에서 전화가 빗발쳤다. 심지어 목사님마저도 연락을 주셨다. 밤부터 다가온 태풍이 전국을 강타한 것이다. 결국 오전 일찍 출발하는 KTX 표를 오후 3시쯤 출발하는 표로 바꾸고 기상을 지켜보기로 했다. 하필 가는 날 태풍이라니! 다행히 오후에 날씨가 괜찮아져서 오후 5시쯤 부산에 도착하니 날씨가 너무 좋았다.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에 도착해 예약해둔 숙소에 짐을 풀었다. 영화제 기간에는 꼭 숙소를 미리 예약해야 한다. 다만 해운대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호텔에 자리를 잡았더니 밤새 시끄럽긴 했다. 팁을 주자면 메인 스트리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숙소를 잡는 것을 추천한다. 첫날은 저녁에 회를 먹고 태풍이 지나간 해변을 거닐고, 부산 아쿠아리움 구경도 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보다 부산 아쿠아리움이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해운대에 숙소를 잡으면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아침 해변 산책이 용이하다는 점과, 아침 맥모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로 한식을 선호하는 짝꿍과 삼시 삼빵이 가능한 필자의 선택은 맥모닝.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서 지하철을 타고 부산 반대쪽에 있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오랜만에 목사님과 교회 사람들을 만났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영화의 전당 구경을 했다. 필자야 몇 번 와본 곳이지만 짝꿍은 처음이라서 이곳저곳 구경을 했다.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영화 <허스토리> 오픈 토크가 진행 중이었고, 우리는 김희애 배우와 문숙 배우를 실물로 보게 되었다.
오픈 토크를 보다가 시간이 되어 영화 한 편을 보고 저녁을 먹고 다시 영화 한 편.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월요일. 어제 아침은 맥모닝을 했으니 오늘은 한식을 먹기로 했고, 역시 부산하면 국밥을 안 먹고 돌아갈 수 없었다. 아침에 돼지국밥을 먹고 외출 준비를 한 우리는 해운대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센텀시티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이라 그런지 셔틀버스를 타려는 사람이 엄청 많더라. 해운대에 숙소가 많아서 그런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자칫 첫 영화 시간에 맞추지 못할 뻔했다. 팁을 주자면 그냥 지하철을 타거나, 시간에 여유를 두고 셔틀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중간에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 이것도 영화제를 여러 번 다니면서 얻은 팁인데 하루에 4편까지 영화를 볼 수 있다고 4편을 다 보면 정말 힘들다. 그래서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 날이 아니면 가급적 3편까지만 본다. 사실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 4편을 하루에 보면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도 피곤하고, 영화 내용이 엉키기라도 하면 낭패다. 애써 영화제까지 와서 즐기고, 재밌게 보았는데 영화를 보다가 졸거나 하면 얼마나 아까운가.
저녁은 부산의 유명한 어묵 집의 어묵으로 해결했다. 혼자 다닐 때는 있는지도 몰랐던 어묵집에서 배부르게 어묵을 먹고 영화의 전당으로 향했다. 사실 낮에 체력을 보충한 이유 중 하나가 저녁에 볼 영화가 야외무대에서 상영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한국계 러시아인 록가수 빅토르 최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였는데, 일단 10월의 야외 상영은 제법 날씨가 쌀쌀한 편이다. 따뜻한 음료 한 잔씩 마시면서 봐야 한다. 카디건은 필수. 다만 음료를 마시다 보면 도중에 화장실을 가야 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어두운 밤(이지만 주변이 밝아서 극장만큼 어둡진 않다.)과 도시의 소음들이 적절히 어우러진 야외 상영은 극장과는 다른 묘미를 선사하니 기회가 되면 꼭 한 번쯤 경험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마지막 날 아침엔 다시 맥모닝. 그리고 첫 타임 영화 한 편을 보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도 음식이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확인해보니 직원의 실수로 주문이 들어가지 않았다. 울컥했다. 주문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데 확인을 해달라고 하니 다 듣고 있는데도 음식이 언제 나오는지와 어떻게 할지를 자기들끼리 상의하고 다시 부르니 그제야 와서 주문이 안 들어갔다고 하더라. 진심 화를 낼까 하다가 그냥 음식점에서 나왔다. 즐거운 마음으로 온 여행인데 화를 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결국 부산역에 와서 점심을 먹고 서울로 돌아왔다.
혼자 해왔던 것을 같이 하는 것. 처음으로 같이 해 보는 것. 혼자 여행하던 내게 함께 여행할 사람이 생긴다는 것. 그것이 결혼의 큰 장점인 것 같다. 코로나 19로 인해 오프라인 영화제에 참석하기 어려운 지금, 온라인 상영으로 대신하고 있지만 얼른 괜찮아져서 함께 영화제에 다시 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또 하나씩 추억이 쌓여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