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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Apr 14. 2020

한 번이라도 이겨 보고 싶었다.

1994년, 1998년 월드컵 편

  슛돌이를 보며 한껏 끓어오른 축구의 열기는 체육 시간과 방과 후에 하는 축구로만은 채워질 수 없었다. 그런 우리의 희망을 채워줄 대회가 마침내 개막을 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김호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고정운, 김주성을 필두로 서정원, 김판근, 노정윤, 황선홍, 홍명보 등으로 구성되었다. 조별리그 상대는 스페인, 볼리비아, 독일.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조편성이라면 당장 짐을 싸들고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하겠지만 94년 월드컵까지만 해도 본선 진출국은 24개국. 4팀씩 6개 조로 본선 조별리그를 진행하기에 3위를 해도 승점이 높으면 16강에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다. 우리는 조에서 가장 만만해 보이는 남미의 볼리비아를 상대로 월드컵 첫 승리를 따내고 스페인, 독일 전을 최대한 비기거나 적은 점수 차이로 지는 전략으로 가는 것이 당연했다. 


  첫 경기는 스페인전. 200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 무적함대 스페인을 생각하면 곤란하겠지만 역시나 스페인은 스페인이었다. 두 골을 먼저 헌납한 우리 대표팀은 후반에 홍명보의 프리킥 골로 따라잡은 후 후반 45분에 서정원이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면서 무승부를 이뤄냈다. 16강 진출을 위한 교두보는 마련된 상황.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반드시 잡아야 했던 상대인 볼리비아를 상대로 0:0 무승부에 그친 것이다.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를 전차군단 독일.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이었기에 새벽 또는 이른 아침에 경기를 하곤 했는데 아마 이른 아침에 학교에서 교실에 있는 TV로 이 경기를 봤던 것 같다.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으니 말이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마테우스, 클린스만 등이 포함된 독일은 초반부터 맹공을 퍼부어 3:0으로 멀찍이 달아났다. 한숨을 쉬며 다들 절망하며 맞이한 후반전. 독일은 30대의 노장들이 많이 포함된 팀이라 체력이 떨어졌고, 그 사이에 황선홍과 홍명보가 연달아 골을 넣으며 맹추격을 했다. 경기는 2:3으로 졌지만 아마 10분만 더 경기를 했었더라면 충분히 동점 내지 역전을 노릴 수 있는 아쉬운 경기였다. 그야말로 ‘졌잘싸’가 잘 어울리는 경기였다. 그렇게 우리는 2무 1패로 조 3위를 기록했으나 승점이 부족해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여담으로 1994년 월드컵 결승전은 브라질과 이탈리아였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이었다. 당시 이탈리아를 결승까지 하드 캐리 한 ‘말총머리’ 로베르트 바조가 찬 승부차기가 허공을 가르며 94년 월드컵은 호마리우와 베베토가 이끄는 브라질의 차지가 되었다. 이 귀한 장면을 보이스카우트 여름 야영으로 인해 보지 못하고 라디오로 생중계를 듣기만 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르겠다.


  4년 만에 돌아온 월드컵. 1998년 월드컵은 프랑스에서 열렸다. 그리고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열심히 학교에서 축구를 하지만 몸치로 소문난 덕에 매일 헛발질 중이었지만 그래도 축구에 대한 애정만은 가득했다.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황선홍, 홍명보가 주축이 되어 하석주, 이민성, 이상윤, 김도훈, 최용수, 유상철, 김태영, 서정원에 역대 최고의 재능이라 평가받던 고종수,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막내 이동국까지 포함된, 감히 역대 최고 전력이라고 생각되던 대표팀이었다. 조편성도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였기에 멕시코만 잡으면 해 볼 만하다고 생각되는 조편성(지금 이런 조편성이면 그냥 짐 싸야 한다.)이었다.


  하지만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우리는 큰 암초에 부딪히게 되었다. 대회 전 평가전에서 대표팀의 에이스 스트라이커 황선홍이 다리에 큰 부상을 입어 결국 월드컵 출전이 좌절된 것이었다. 그래도 올림픽 대표팀에서 성장한 최용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시작된 멕시코전. 그런데 주전 공격수는 최용수가 아닌 김도훈이었다. 다들 의아해하는 상황에서 시작된 멕시코전은 전반전, 하석주의 그림 같은 왼발 프리킥 골로 1:0으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월드컵에서의 리드 상황. 좋던 분위기는 곧바로 이어진 하석주의 백태클 다이렉트 퇴장으로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 하석주는 가린샤 클럽에 가입하는 불명예를 얻었고, 우리는 1:3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1패를 안고 시작한 대한민국의 다음 상대는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였다. 골키퍼 김병지의 신들린 선방과 교체 투입된 이동국의 패기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네덜란드에게 5:0으로 대패하고 말았으며, 이 경기 이후 차범근 감독은 월드컵 도중 경질된 유일한 감독으로 남게 된다. 


  이미 16강 진출이 물 건너간 상황에서 맞이한 벨기에전 역시 먼저 선제골을 허용하고 힘든 경기를 이어갔다. 첫 선발 투입된 최용수를 비롯하여 모든 선수들이 열심히 뛰었고, 이임생은 머리에 부상을 입었음에도 피로 물든 붕대를 머리에 동여매고 경기를 뛰는 붕대 투혼을 보였다. 마침내 유상철이 동점골을 넣자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질렀던 기억이 떠오른다. 비겼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그들에게 어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있었을까. 


  1998년 월드컵 결승은 개최국 프랑스와 전 대회 우승팀 브라질이었다. 누구나 브라질의 우승을 점쳤지만, 당황스럽게도 프랑스의 3:0 압승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이 대회를 계기로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은 세계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하며 유벤투스, 레알 마드리드 등 명문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이때만 해도 우리의 기대는 하나였다. 제발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하는 2002년 월드컵에선 1승이라도 하기를 빌고 또 비는 것. 그렇게 나는 2000년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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