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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사려깊은 그대여

by 뚜샷뜨아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거짓말은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엄마의 거짓말은 딸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얼굴을 당당히 들고 다닐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나에게 거짓말은 좋은 기억이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사랑, 배려이다. 사실과 다른 것이 거짓말이지만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오히려 따뜻함으로 남는 거짓말이 있다.

어릴 적에 나는 작은 언니와 외모 비교를 많이 당했다. 당시에는 동양적인 외모 보다 서양적인 외모를, 한국적인 외모보다 일본적인 외모를 예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나와 한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은 언니는 발달 속도가 비슷했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비교 대상이 되었다. 언니는 진하고 큰 쌍꺼풀 덕분에 똘망 똘망한 눈매를 가지고 있다. 겹겹이 눈꺼풀이 접히면 눈이 커져서 까만 눈동자 색깔이 잘 보이고 웃는 건지 우는 건지 표정도 잘 보인다. 반면에 접히지 않는 내 홑꺼풀은 솜이불 덮은 것처럼 무거워 보이고 눈동자를 가려서 화가 난 건지 기쁜 건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엄마는 나에게 웃는 게 예쁘다고 했다. 아니, 웃어야 예쁘다고 했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에서 미화된 엄마의 말, 그 덕분에 항상 미소를 짓고 다녔는데 웃을 때 사라지는 작은 눈은 그나마도 시력이 나빠져 굵은 뿔테 안경 틀 사이로 숨어버렸다. 보이는 대로 말을 내뱉어 버리는 친척 어른들의 시선 속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못생긴 아이가 되었지만, 한껏 예뻐 보이려고 미소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수줍음 많은 아이의 움츠려듬을 엄마는 분명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쁜 웃는 눈을 가졌다는 건지, 웃으면 예뻐 보인다는 것인지 엄마는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넌 웃는 게 예뻐"는 엄마의 사려 깊은 거짓말이다.

언젠가 엄마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윤희 코는 모나리자 코 같다. 오뚝하니 예쁘다." 사춘기에 유독 거울을 많이 보고 있는 딸을 향해 한 말이다. 엄마의 우아하고 선이 고운 버선코가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나와 작은 언니의 코는 우직한 아빠를 닮아 있다. 나는 비교적 작고 동그란 얼굴에 상대적으로 큰 코가 자리 잡고 있다. 상대적으로 큰 눈을 가진 언니는 코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았지만 나의 작은 눈과 까만색 뿔테 안경은 우직한 코에 우주의 시선을 집중시켰을 것이다. 엄마의 거짓말은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살아가며 예민할 수 있었던 딸에게 마법을 부렸다. 예뻐 보이려고 장착한 미소는 호감형의 사람으로 보이게 했고, 모나리자 같은 오뚝한 코만큼 자존감도 오뚝해졌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내가 모나리자의 코를 본 적이 있었던가? 모나리자는 눈썹이 없고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으로 유명한 그림이다. 당시의 나는 엄마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기 때문에 실제 모나리자의 코가 어떻게 생겼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의 말을 믿었다. 사춘기 마법에서 깨어나 현실적인 눈을 뜨려고 할 때 엄마는 재빠르게 행동을 취했다. 엄마의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다행히도 배신감이 아닌 감사함이 앞섰다. 결국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엄마는 내 손을 이끌고 시내에 있는 병원으로 끌고 가셨다. 베드에 누워 긴장된 마음으로 의사를 기다렸다. 엄마는 내 곁에 없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만 했다. 의사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두 개의 선택지를 제시했다. "크고 또렷하길 원하세요? 아니면 자연스럽길 원하세요? " 난 찰나에 자연스러운 쪽이 덜 아플 것 같아 말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요." 의사는 검은색 사인펜으로 자를 대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왼쪽과 오른쪽을 비교해 가며 내 얼굴에 선을 그어 댔다. 치과 시술과는 반대로 얼굴 위쪽에 구멍이 난 푸른색 천이 얼굴에 씌워지고, 밝아진 조명에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어져 눈을 감았다. 바늘의 따끔한 맛이 느껴지더니 얼굴에 감각이 없어졌다. 슥삭 슥삭 물컹한 무언가를 칼로 자르는 듯한 느낌이 났고, 바늘과 실이 얼굴 위로 몇 차례 왔다 갔다 한 것 같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의사는 눈을 떠도 된다고 했다. 나에게는 손거울이 쥐어졌다. 실눈을 뜨고 본 거울에는 눈꺼풀 위에 선명하게 그어진 검은색 선들로 눈을 부릅뜬 것 같은 피에로의 모습이 있었다. 의사는 마취가 풀리면 따끔거릴 테니 진통소염제를 먹고, 부어 있는 눈을 가라앉히고 싶으면 냉찜질이 도움이 되며, 실밥을 풀기 전까지는 세수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세수 금지라면 일주일 동안 사인펜 자국을 지울 수 없다는 말이었다. 가족들은 자려고 누운 나의 얼굴을 보며 계속 눈을 뜨고 있는 것 같다며 배를 잡고 웃었다. 살을 찢은 통증과 창피함이 동시에 들었지만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오는 걸 참지 못했다. 훨씬 가벼워진 눈꺼풀을 상상하며 눈으로 지을 수 있는 다양한 표정들을 맘껏 그려보니 엄마에게 절로 감사함이 들었다.

때로는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폭력적이고 고통일 때가 있다. 그래서 진실이 보이지만 보지 못한 것처럼, 혹은 보지 않을 것처럼 자기 방어기제로 거짓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임질 수 있는 거짓말은 타인을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과거 보다 더 나은 현재를 살게 한다. 내가 홑꺼풀이었던 시절로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내뱉은 거짓말도 돌이킬 수 없다. 거짓말에 부정, 무시, 비난, 조롱을 빼고 사랑, 배려, 관심만 담는다면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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