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하얗게 변하기 시작할 때를 기억하는가? 젊은 사람의 검은 머리에 드문드문 섞여서 난 흰 머리카락인 새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머리를 감았는데도 두피가 간질거릴 때 어김없이 뿌리부터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이 나오고 있다. 간혹 분명 검은 머리였는데 머리카락 끝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는 것도 발견한다. 새치 한 가닥조차 없던 머리에서 흰머리를 발견하고서 신기한 마음에 거울을 한참 동안 보았다. 흰머리는 굽이지고 투박하지만 마치 부러질 리 없는 철사처럼 강해 보인다.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아 누구의 머리카락이 더 센지 대결을 한다면 흰머리가 모조리 다 이겨 먹을 것처럼 생겼다. 구불거리고 뻣뻣한 흰머리는 살아온 날 동안 온갖 스트레스를 견뎌내느라 허리를 곧바로 펴지 못한 채 아직 살아 있다고 외치는 듯하다. 몇 가닥 나지 않아도 흰머리의 존재감은 살아 있다. 아이 출산 후 눈에 띄게 줄고 가냘파진 머리카락 사이에서 삐죽 솟아나 모든 이의 시선을 빼앗는다. 누구도 말은 안 하지만 미워 보이는 흰머리를 뽑아서 자신의 간질거리는 마음을 잠재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 두 사람이 남았다. 중력의 힘에 의존해 발을 붙이고 서서 일상의 공기를 느끼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올라가는 숫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생각은 물론 방어기제도 작동하지 않는다. 14층까지의 아주 잠깐이지만 무념무상의 상태에 있을 수 있다. 그때의 정적을 남편이 깨버렸다. 칼을 잘못 꽂아 통아저씨의 머리통이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났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한껏 어깨가 올라가서 의기양양해진 남편이 보였다. 남편은 한 손을 번쩍 들고 방긋 웃으며 소리쳤다.
"와~ 드디어 뽑았어!"
남편은 나에게 의사를 묻지도 않고 나의 흰머리를 뽑았다. 사실 나는 며칠 동안 그 흰머리를 지켜보고 관찰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것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트리트먼트를 사용해서 머리를 감은 후에도 좀처럼 잠재울 수 없던 흰머리. 자라면서 꽤 길어진 후에도 화난 것처럼 뻗쳐 있을 것인지 궁금하던 참이었기 때문에 그날 아침에도 나는 그것을 그대로 살려 두었다. 그런데 남편이 뽑아 버린 것이다.
"휴~ 속이 다 시원하네. 이것만 유난히 뻗쳐 있잖아."
내 머리를 대신 정리 해 주었기에 칭찬받기를 원하는 남편에게 화를 낼 순 없었다. 대신 일부러 더 아파하며 상실감을 표현할 뿐이었다.
"근데 검은 머리 뽑힐 때보다 더 아프다. 그냥 두지~ 내가 일부러 안 뽑고 있었는데.."
눈에 거슬리는 것을 한 번에 뽑아 통쾌해진 남편은 나의 상실감을 이해 못 하는 듯했다. 남편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뽑힌 통아저씨 머리 느낌은 이상하리만치 내 마음에 남았다.
희고 탄력 있는 피부와 검고 윤기 나는 머리가 언제 이렇게 힘을 잃었던가. 새삼 멜라닌 색소의 수고로움이 절로 생각나고, 그제 서야 약해지고 있는 멜라닌의 역할에 관심을 가진다. 멜라닌은 단백질 색소로서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우리 몸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방어기전이라고 한다. 태아 때부터 몸에서 만들어져 피부색과 털색을 결정짓고, 생산, 합성, 퇴화를 반복하며 삶이 끝날 때까지 피부의 순환의 역할을 다한다. 멜라닌이 아니었다면 다채로운 인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피부색에 따른 인종이 달라지는 것도, 피부색의 온도가 쿨톤과 웜톤으로 나뉘는 것도, 눈동자 색이 하나가 아닌 것도, 머리카락을 같은 칼라로 염색을 해도 저마다의 색으로 바뀌는 것도, 모두 멜라닌 덕분이었다. 우매한 인간은 다름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사회의 잣대를 대면서 멋대로 정한 미의 기준으로 나누고, 거부하고 배척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멜라닌 색소가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양이 사람마다 달라서 똑같은 사람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젊어 보이기 위해 흰머리를 감추려고 노력하겠는가? 흰머리를 가리기 위해서 염색을 하면 멜라닌의 손상이 가속화된다고 한다. 멜라닌의 손상은 노화의 가속화를 의미한다. 노화란 탄력이 없이 쭈글 거리고, 기미가 생겨 피부색이 균일하지 않고, 머리숱이 줄어들고 윤기 없이 뻗치는 흰머리가 되는 것이다. 조금 더 젊어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멜라닌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이루게 두는 것이 투사의 기질을 타고난 멜라닌을 존중하는 태도일 것이다.
흰머리는 색을 잃어버린 상태가 아니라 모든 색을 가질 수 있는 상태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내가 가진 색 때문에 곤란한 적도 많았다. 내 색깔은 은은한 파스텔 톤쯤으로 생각되어 튀지 않고 쉽게 묻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어디에도 섞일 수 없었기에 외롭고 힘들었던 거였다. 지나고 보니 보지 못했던 것을 알고야 말았다. 서로 섞여 살아야 다채로울 수 있는 거고 그래서 아름다울 수 있는 거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보다 더 나이가 들어 반백발이 된다면 더 많은 것을 포용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