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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13. 2024

나는 아침마다 그녀를 만난다

나는 아침마다 그녀를 만난다


그녀는 사시사철 분홍 고무장갑을 끼고

아침마다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아파트 곳곳을 닦는다


이곳에 살게 된 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으니

우리가 아침마다 나눈 인사와 토막대화들도

쌓여온 시간만큼의 규모를 갖게 되었다


그녀는 6남매의 어머니이다

딸딸딸딸딸아들.

그녀는 딸 다섯을 내리 낳고는 마침내 아들을 낳았다

남도에서 서울로 상경해서 고생깨나 했다는 그녀는

앙상하리만치 작고 말랐다

일흔은 애저녁에 지났다고도 했다


내가 등굣길에 아이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그녀는 눈길로 천천히 나의 아이를 쓰다듬는다


그러다 가끔은 그녀의 아이가 어렸을 때

즉, 그녀가 젊었을 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럴 때면 나는 그녀의 주름진 얼굴 한복판에 가려져있던 싱그럽고 빛나는 까만 눈동자를 발견한다


그러면

순간

우리는 동년배가 된다


20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얼마의 시간 동안

우리는 동일하게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된다


띠링.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 알림 소리에

마법은 끝이 나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오늘도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닦을 것이다

잠시 마주했던 젊은 날의 아련함을 닦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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