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합니다

가난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일 = 출근

by 조이

나는 복직을 한다. 복직을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고 지 손으로 지가 신청해 놓고도 막상 복직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왜 이렇게 일하기가 싫은지. 건강문제로 어쩔 수 없이 시작했던 이번 휴직은 단연코 내 생애 최고의 시간이었다. 이 징징거림의 이유도 지금의 내 삶이 너무도 만족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 떠도는 출근 유머를 가져와봤습니다. 핵공감! >




예전에 첫아이를 낳고 일을 쉬었을 때는 그렇게 휴직이 힘들더니만. 휴직이 뭐가 힘드냐, 쉬는 게 뭐가 힘드냐고 얼핏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마는, 나는 육아가 도대체 체질에 맞질 않았다. 잘하지도 못했고 좋아하지도 못했다. 일에서는 경력직이었지만 육아에서는 신입이었고, 일에서는 실패할 수 있지만 양육에는 절대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기도 했고.


출산과 동시에 '100% 사회인'에서 '100%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컴퓨터를 타닥이고, 커피를 마시고 동료들과 짬 내어 깔깔대던 지성인의 삶이여, 안녕. 머리와 가슴을 풀어헤치고 24시간 모유대기조로 쪽잠을 자는 자연친화적(?)인 삶이 다가왔다. 내 아가는 분유를 한번이라도 먹였다가는 방금 먹인 것에 플러스알파까지 분수토를 하면서 게워냈기 때문에 나는 그 힘들다는 유축수유를 1년 넘게 지속해야 했다.


나는 그러면 일을 사랑했었던 걸까.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게 써낸 계획서를 몇 번이고 조용히 들여다보고는 스스로 흡족해하던 변태 같은 면모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게 니었다. 일을 사랑했다기보다 나는 쉬는 방법을 몰랐다. 일하고 기능하는 내 모습에서만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나는 '존재하는 법'을 몰랐다.




건강 문제로 두 번째 휴직을 하게 되면서 휴직의 목적이라고는 나를 돌보는 게 전부인, 실상은 아무 목적도 없는 휴직을 하게 되고서야 나는 '쉼'이란 것을 조금씩 배워갈 수 있었다. '해야 되는 것'들을 우선하느라 '하고 싶은 것'을 잊어버리게 된 딱한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그래서 나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잘하지 못해도 하잘 떼기 없어도 그냥 하면서 즐거운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실제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전혀 일치하질 않았으니-


일례를 들어보자면 이렇다. 학창 시절에 반에서 그림 좀 그렸던 나였기에 그림 그리면서 힐링을 해보려고 화실에 등록을 했다. 펜화, 아크릴화, 수채화, 유화 등등 재료를 달리해가며 그리는 동안 깨닫고야 말았다. 나는 실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용써서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의 '우와~'소리 듣는 맛에 미술시간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실은 나에게 그림 그리는 과정은 스트레스였다. 그래서인지 화실에서 배울 때도 펜화를 제일 잘하는데 펜화 그릴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다. 한 번이라도 라인이 휙 틀어지면 수정이 불가능해서 계속 긴장하면서 그림을 그려야 했으니까. 오히려 처음 해봤던 아크릴화가 그나마 가장 편안했다. 아크릴 물감은 건조되는 속도가 빨라서 언제든 덮어 그리면서 수정이 가능했기 때문에. 아크릴화마저도 나중에는 스트레스로 다가오긴 했지만.


잘해야 하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다. 그림은 남이 그린 걸 보는 게 좋다. 대신 아무렇게 둘둘둘 박아도 뭐라도 완성되는 재봉이 좋다. 운동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웬걸. 여럿이 떼로 모여서 북적거리면서 하는 그룹운동이 또 그렇게 재미지네. 5분이면 다 먹는 걸 한 시간씩 공들여서 수고하는 이유를 당췌 모르겠다며 요리를 폄하하던 나였는데 지금은 이런저런 요리에 맛을 들여 매일 뭔가를 만든다.


뜨거운 걸 잘 못 마셔서 커피를 맨날 반이나 남기면서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가 좋아서 매번 뜨거운 커피를 주문하는 이상한 사람. 어딘가 이상한 면도 있긴 하지만 또 그렇게 이상하진 않은 보통의 사람. 그게 나다.




나는 복직을 한다.


늦은 아침까지 애들 살결을 부빌 때 나던 은은한 살냄새여, 안녕.

아침이면 애들 보내고 친구와 만났던 텅텅 빈 아늑한 브런치 가게여, 안녕

월, 수 아침 10시마다 서킷트레이닝을 함께 하던 이름 모를 아줌마들이여, 안녕

청소기를 돌려놓고 빈 식탁에서 커피를 홀짝이던 고요한 나의 아침이여, 안녕


나는 쉼을 배우고, 이제는 일을 하러 간다. 그동안 혼자서 가정경제를 책임지느라 고생한 남편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일도 있고 쉼도 있는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한 발을 내딛는다.


< 빈 식탁에서 커피를 홀짝이던 고요한 나의 아침이여,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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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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