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받을 리 없는 선의

사람으로 태어나 거북이로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간 사람이 될 겁니다.

by 조이

사람으로 태어나 독수리로 살아가는 내 친구를 놀려주었던 기억이 있다. 손놀림이 무척이나 빨랐던 그 친구는 독수리타법으로도 나보다 타자가 빨랐다. 정렬이 잘 안 되는 열 손가락보다는 정예의 두 손가락이 낫다는 걸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뒷목이 뻐근하니 두통까지 와서는 병원에 갔더니 목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거북목이란다. 아,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 거북이가 되었구나. 나는 물었다. 저도 다시 사람이 될 수 있나요. 마스크 때문에 간신히 보이는 두 눈이 활짝 웃으며 의사가 대답한다. 그럼요, 다시 사람 만들어 드릴게요.


신경주사라고 어마어마하게 아픈 주사 처치를 받은 뒤, 후속으로 도수치료를 받기로 했다. 실비보험 손실률의 일등공신, 그 도수치료를 나도 받아보는구나. 도수치료 선생님은 과연 무림고수였다. 짚는 곳마다 어찌나 아픈지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는 이 사람이 지금 손으로 누르는 건가 아니면 30cm 자 같은 걸 가져와서 모서리로 나를 누르는 건가 확인까지 할 정도였다. 초면에 예의를 차리고 싶었지만 고통이 보통 고통이 아니라 억, 끅, 악 소리를 내가며 1시간 가량의 치료를 마쳤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도수치료를 받았는데 두 번까지는 눈물 찔끔 나게 아프더니만 신기하게도 통증이 점점 줄어 지금은 하나도 아프지가 않다.


그래서 요즘은 도수치료를 받으러 가면 치료사 선생님과 이런저런 수다를 떤다. 안 아프기에 가능한 일이다. 둘 다 외향적인 성격이라 무작위로 아무 주제나 짚이는 대로 얘기를 이어간다. 여자친구 이야기, 어린 시절 이야기, 주말에 갔던 핫플레이스 등 두서없는 주제로 아무렇게나 수다를 떠는 식이다. 오늘은 이란-이스라엘 이야기 -> 트럼프 이야기 -> 북한 핵 보유개수 이야기까지 갔다가 장마 이야기로 뜬금없이 이야기가 튀었다. 그리고 치료사 선생님이 말했다.


"장마가 북한까지 올라가진 않으면 좋겠어요."

"우리야 비 많이 와도 다 잘 살지만 그 사람들은 안 그래도 힘들잖아요."


나는 잠시 이을 말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어딘가 징~ 하고 울렸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뻐근한 감동 같은 것이 밀려왔다. 집에 돌아오는 퇴근길 빼곡한 자동차의 행렬 속에서 나는 그 감동의 실체를 생각하고 있다.


친절한 선생님의 치료에 나는 몸이 나았고 대가를 돈으로 지불하고 감사함을 전했다. 병원에서 볼 수 있는 광경으로서 아주 바람직한 장면이지만, 실은 우리는 적절한 치료와 그에 따른 치료비라는 '거래'를 했을 뿐이다. '돌려받을 수 있는 선의'인 셈이다. 치료를 받기 위해 치료비를 지불했으며, 소득을 창출하기 위해 치료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우나 같은 습기를 끔찍이도 싫어하면서도 장마가 북한으로 가질 않길 바라는 치료사 선생님의 마음은 말하자면 '돌려받을 리 없는 선의'다. 북한 사람들이 이 세상 누군가 자길 걱정하는지 신경이나 쓸까. 그러나 누군가는 돌려받을 수 없는 선의를 베푼다. 아무 대가 없이.


누군가는 분리수거장에서 바닥을 뒹구는 쓰레기를 대신 정리한다. 누군가는 쓰러진 자전거를 세워준다. 누군가는 그다지 실력이 좋지 않은 길거리 연주자에게 박수를 쳐준다. 또 누군가는 엘베에서 층마다 다서는 택배 배달원을 위해 열림 버튼을 기꺼이 눌러준다.


돌려받을 리 없는 이런 선의 덕에 아직 세상은 살만한가 보다. 익명의 사람들로부터 내가 받았던 선의들에 되돌려줄 수 없는 감사를 품어본다.


창밖의 노을이 오늘따라 쨍하니.

예쁘다.

< 공원에서 발견한 누군가 그려놓은 돌. 요즘엔 살짝 완벽하지 않은게 너무 좋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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