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는 진즉 끝났는데 내 몸은 아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빙판길에 벌렁 미끄러져 하늘을 봤고 그로 인해 꼬리뼈를 다쳤기 때문이다...
설에 시댁에 내려갔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전날 내린 폭설로 길 여기저기가 온통 눈으로 뒤덮여있었다. 같은 시각 서울에 있었다면 아파트 창문 밖 경치를 구경하며 운치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마는, 여기는 시골이다. 눈이 내리면 스스로 치워야 되는 깡시골. 거기다 시댁이고. 여기서 운치는 무슨 운치냐. 블로워를 어깨에 메고 고스트버스터즈 마냥 눈을 날려버리는 시아버지를 필두로 우리는 눈을 치우러 나섰다.
언덕 어디께에 빗자루가 있었는데 그게 어디있더라. 나는 빗자루로 눈을 쓸어볼 요량으로 빗자루를 찾으러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 절반쯤을 오르는데 남편이 말린다. 거기 미끄러우니까 가지 말라고. 나는 손사래를 치며 강원도 산골 생활이 20년인데 이 정도는 껌이라며 두어 발을 더 내딛는다. 그리고는 꽈당. 넘어져서 민망한 내가 하하하 웃으며 우스갯소리를 하고 일어서는데 두 번째 꽈당! 이 두 번째가 크리티컬 했다. 잠시지만 하늘을 날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날아오른 만큼 와지직 충격을 느끼며 빙판에 꼬리뼈로 랜딩을 했고. 처음엔 아팠고 어지러웠고 서글펐는데 나중엔 그냥 아프고 아프고 아팠다.
부축을 받아 자리에 누운 나는 '꼬리뼈, 빙판'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시작했다. 꼬리뼈 골절은 시간이 약일뿐 정형외과에 가도 딱히 해줄 것이 없다는 얘기, 부위가 부위인지라 엉덩이를 다 내놓고 물리치료 받아야 하는데 민망해서 가지를 못한다는 얘기, 자기는 오죽하면 도넛방석을 들고 버스 탄다는 얘기까지 온갖 경험담들이 주르륵 나왔다. 나는 골절일까 타박상일까. 내일 일어나서 더 아프지나 말았으면. 빙판에 대자로 넘어져 쪽팔림과 통증을 얻은 대신 온갖 시댁일에서의 자유를 획득했으므로 나는 누워서 계속 이런저런 글을 읽으며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휙휙 화면을 내리다 보니, 어? 꼬리뼈 다쳤다는 글이 유독 많이 나오는 카페가 있네? 그건 배달하시는 분들의 카페였다. 눈 오는 날 오토바이를 탄 채로 미끄러진 분도 있었고, 배달하는 곳까지는 어찌저찌 조심해서 갔는데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걸어가다가 다쳤다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 이런 날에는 배달하시는 분들이 많이 다치시겠구나. 새삼 그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날씨와 관계없이 동일한 배달비를 내고 있었다는 게 좀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다음으로는 등산카페 글이 더러 나왔다. 주로 하산할 때 미끄러져서 꼬리뼈를 많이 다친다고 한다. 세상엔 나처럼 꼬리뼈를 다친 사람이 많다는 데에 은근한 동지애를 느끼며 검색 작업을 마무리했다. 똑같이 다쳤더라도 생업으로 인해 다쳤다는 쪽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무렴. 놀다가 다친 것보다 일하다 다친 게 더 서글프지.
다행히 골절은 아니었는지 나는 다음날, 다다음날 점차로 쬐금씩은 덜 아프게 되었다. 덕분에 세배도 하고 세뱃돈도 챙길 수 있었다. 앉았다 일어설 때 눈이 번쩍 뜨이는 통증이 있긴 했지만.
서울 집으로 돌아와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연휴에도 한다는 집 근처 정형외과를 오픈런으로 방문했다. 연휴에도 이렇게 병원을 열어주다니 이런 의사 선생님은 노벨상을 줘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9시에 오픈인 병원엘 8시 50분에 도착할 만큼 꼬리뼈에 대한 나의 정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근데 이게 웬걸. 엘리베이터에 타서 정형외과가 있다는 3층을 눌렀는데 반응이 없네. 다른 층은 다 눌러지는데 3층만 안 눌러진다. 안눌러지는 줄 알면서도 아쉬움에 버그라도 생긴 듯 반복해서 3층을 눌러대는 내 뒤로 같이 탄 사람들이 묻는다.
"어? 3층 안 눌러져요?? 나도 3층 왔는데."
그렇다. 우리는 모두 같은 곳에 온 것이다. 우리는 아프고 지금은 연휴다. 이대로 돌아갈 순 없다!
아쉬운 대로 4층을 눌러 우리는 우르르 함께 내린다. 걔중에 거동이 가장 멀쩡한 아저씨가 계단을 통해 3층 잠입을 시도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동안 쩔뚝절뚝 천천히 한 계단씩 내려가고 있었다. 3층에 도달한 아저씨가 잠겨버린 3층 철문을 돌리며 철컹이더니 우리를 보고 고개를 도리도리 휘젓는다. 이런!! 3층 가는 철문이 잠겨있구나. 진짜 병원 안 하나 봐... 우리 모두는 풀 죽은 채 다시 4층 스크린골프장 엘리베이터에 우르르 탑승한다.
"진짜 안 하나 봐요. 어떡해요."
"저는 병원 한다 그래서 하루 일찍 서울 왔는데."
"아오, 꼬리뼈 아플 때는 척추 주사 맞아야 되는데."
엘리베이터는 이미 1층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쉽사리 헤어지지 못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으나 만나자마자 미리 조라도 짠 듯 일사불란하게 함께 여기저길 누볐지 않은가. 10분여 만에 정이라도 든 걸까.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 어쩌다 다쳤느냐며 단촐한 스몰톡을 나누고서야 우리는 서로 치료 잘 받으시라는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화이팅까지 해가면서.
검색에 열을 올린 끝에, 집에서 좀 떨어져 있긴 하지만 오늘도 문을 연다는 정형외과를 찾아 무사히 진료를 받았다. 천운인지 의사도 물리치료사도 모두 여자분들이라 마음 편히 엉덩이를 내놓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뜨끈한 베드에 엎드려 물리치료를 받으며 아침 일을 생각했다. 그분들은 어디선가 진료를 받았을까. 연락처라도 받아둘 걸 그랬나. 그랬으면 병원 찾아내면 알려줄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아니 그건 좀 이상하지. 우리가 뭐라고. 오늘 아침에 만났던 ◇◇ 정형외과 원정대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도 지금쯤 어딘가에서 치료받고 통증을 덜었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골절은 아니란다. 내 꼬리뼈 자체가 본래 생겨먹기를 워낙 뾰족하게 생겨 충격이 더 왔을 수 있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다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웬만하면 안 아픈 게 장땡이다. 그래도 이득도 있긴 하다. 아프고 나면 평소엔 안 보이던 아픈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아마도 이제 눈이 오는 날이면 배달원들의 안녕과 뭇사람들의 꼬리뼈의 안녕을 기원할 테다. 아파 본 사람의 유대감이란 그런 거다. 여하튼, 다치지 맙시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