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음 새뜻은 없습니다만

by 조이

(1.3에 써놓은 글을 이제사 올립니다. 열흘쯤 지났더니만 새해 느낌이 벌써 많이 휘발되었네요...;;;)




새해다. 올해도 여느 해처럼 유튜브라이브로 보신각 타종소리를 원격 청취한다. 따순 방구석에서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타종소리를 잠시 듣는 것으로 우리는 새해맞이를 조촐하게 갈음한다. 대앵~ 대앵~ 종이 울리는 동안 방송국 카메라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사람들을 비춘다. 핸드폰을 들고 보신각을 일제히 찍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찍는 방송국 카메라가 서로 마주친다. 나는 무엇보다 빡빡하게 어깨를 맞닿고 보신각 앞에서 새해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 새삼 놀란다.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붐비는 인파를 무릅쓰고, 잠을 무릅쓰고 저기 저 공간에 나가 있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인 걸까. 타종소리와 함께 라이브 방송 채팅창에서 새해 소원을 비는 댓글들이 엄청난 속도로 위로 위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강원도에서 바다 지척에 살면서도 내 평생 일출이란 걸 본 적이 없는 게으른 위인이 바로 나다. 어쩌다 바다에서 길게 놀다 일몰은 몇 번 얻어걸린 적이 있지만, 일출은 우연에 기대기 힘든 시간에 떠오르다 보니 어지간한 정성이 아니고서야 일출을 보기는 어려운 탓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태양은 뜬 적도 없고 진 적도 없이 멀뚱히 가만히 있는데 지구가 뱅글뱅글 주변을 도는 탓에 해가 지고 뜨는 것처럼 보일 뿐- 이라며 일출 구경엔 닿을 리 없는 나의 게으름을 여지껏 포장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새해에는 왠지 새마음 새뜻으로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 같은데 24년 끝자락에 독감에 걸려 새해까지 골골대는 아이의 병수발을 들다 보니 어영부영 '그냥' 새해가 되어버렸다. 이렇다 할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그려내야 할 도화지를 받은 미술시간 마냥, 나는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불도저처럼 다가온 새해를 멀뚱히 받아 들었다.



그래도 새해 아침이라고 떡국을 끓여 아이들을 먹였다. 떡국을 먹음과 동시에 나이도 한 살 먹었음을 몸에 새기는 일종의 의식인 셈이다.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단다. 한 살이 더 늘어남을 기뻐하는 아이들과 달리 남편과 나는 일단 내 나이가 몇인지부터 새삼 헤아려본다. 올해년도 빼기 출생년도를 잠시 계산해 본 후, 우리는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므로 나이는 아직 그대로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유쾌하지만은 않은 나이계산을 얼른 끝내버린다.



우리는 그렇게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며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냈다. 약간의 장난과 웃음, 그리고 약간의 짜증과 잔소리가 섞인 여느 때 같은 하루들이 며칠 지나고 주말을 앞두고서야 아이의 독감은 회복세를 보였다. 무려 12만원이나 하는 수액을 맞은 탓에 그나마 회복이 빨랐던 걸까. 느닷없이 양꼬치를 함께 먹고 싶다며 남편이 성화를 부렸고, 다행히 그에 응해줄 만큼 아이가 컨디션을 회복했으므로 우리는 양꼬치 집으로 새해 첫 가족외출을 했다. 늦은 저녁의 양꼬치집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아이동반 4인 가족인 우리들은 뱅글뱅글 스스로 양꼬치를 굴리는 신기한 기계를 쳐다보며 양꼬치를 맛있게 먹고 돌아왔다. 양꼬치 집 바로 앞에 신상 노래방이 있었지만 이들이 안가겠다고 해서 그냥 집으로 곧장 왔다. 집에서는 부끄러움도 없이 온갖 춤을 추면서도 굳이 노래방은 죽어도 안가겠다는 아이들은, 차에 타자마자 흘러나오는 음악에 또 이상한 춤을 둠칫둠칫 춰대며 킥킥거린다.



언젠가 크리스마스에 우울증이 급증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특정한 날에 맞추어 우리의 마음도 상황도 그렇게 되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탓일 것이다. 캐롤은 흘러나오는데 왜 나는 흥겹지 않은지. 왜 크리스마스인데 나는 혼자인 건지. 특별한 날엔 더 행복해야 할 것 같은, 실체 없는 바람 때문에 오히려 평소보다 유독 더 초라하고 울적한 마음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특별한 날은 오히려 가볍게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별도의 새해 소망도 다짐도 없이 벌써 새해가 이만큼 흘렀다. 내가 아무리 게으를지언정 작심삼일 새해다짐은 매년 해왔건만 올해는 그마저도 없다. 하지만 새마음 새뜻 없이도 우리는 그럭저럭 안녕하다.


그리고...

스리슬쩍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한 새해가 나는 아주 좋다.




< 오빠에게 보내는 둘째의 신년 메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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