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끝났다. 무려 열흘이나 되는 짱짱한 이번 연휴야말로 '황금'자를 붙여 '황금연휴'라 불러줄 만하다. 황금연휴의 끄트머리에서 요 며칠 연휴기간을 주욱 돌아보니 참 오만데를 싸돌아다니고 오만걸 먹었네. 굳이 지도앱에서 타임라인을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신용카드 내역 속에 나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 연휴 시작 전에 비해 단기간에 벌크업을 한 신용카드 결제액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번 연휴에도 열심히 창조경제에 이바지했구나...
연휴가 기니까 차량 이동량이 좀 분산되겠지? 혹시! 혹시나 했다. 역시나 아니었지만.
차가 차가 차가 얼마나 많은지! 일부러 너무 화려한 곳보단 조금 수수한 곳을 전략적으로 골랐건만 대한민국에 나 정도 머리 굴리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차는 막히고, 식당엔 줄을 섰고, 어디든 줄줄줄. 심지어 화장실 앞에도 줄줄줄.
우리는 부모님이 혹시 지쳐하는 기색이 있는지, 애들이 기다리다 지루하다고 보채지는 않는지 살피며 요리조리 애쓴다. 엄마는 애쓰는 우리들에게 평소보다 더 많은 미소를 보내주신다. 애들은 소리 없이 자다 깨다를 반복 하며 조용히 소곤거렸다. 우리 모두는 서로 애쓰고 있었다.
가는데 3시간 보는데 1시간. 가는데 2시간 먹는데 30분.
이동시간에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했지만, 뭐 이런 게 명절갬성 아니겠어. 플레이리스트가 몇 번이고 같은 노래를 불러댄 끝에야 우리는 마침내 집에 돌아왔다. 노래를 부른 건 쟤였지만, 듣기만 한 우리 쪽이 더 지쳐 있었다.
이렇게 반복하기를 며칠. 마지막 날 만큼은 여유롭게 보내야지 싶었다. 집 앞 공원에서 산책 후 뷔페에 들렀다 헤어지는 일정으로 단촐하게 정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면 확실히 여유가 생겨. 애들은 트인 곳에서 이리저리 깔깔대고 뛰었고 어른들은 햇살아래 담소를 나눴다. 연휴 내 주룩주룩 내리던 비도 멈추고, 귀한 파란 하늘이 드러나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한껏 더했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지나자 뭔가 불편함이 조금씩 올라온다. 이게 뭐지. 날도 좋고 여유도 있고 다 좋은데 왜 불편하지? 그런데 불편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봐. 동생과 올케는 아이스크림을 사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스크림 수요조사를 하고 있고, 나는 근처 플리마켓에서 엄마가 갖고 싶은 게 있는지 살펴본다. 그렇다. 우리는 이 편안함이 불편했던 거다.
가끔 뵙는 부모님이기에 좋은 곳에서 좋은 걸 먹고 좋은 걸 드려야 하는데. 명절만큼은 편안함이 어딘가 죄스럽다. 몸이 편안해서는 마음이 불편한 것이 명절이다. 미처 다 먹을 수 없는 많은 음식을 하느라 허리가 아프고, 평소보다 두세 배는 걸리는 도로에서 거북이 운전을 해대는 이유. 그런 수고 속에서 어딘가 느껴지는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애쓰는 모습을 통해 자식의 사랑을 확인하고, 자식은 애쓰는 모습을 통해 부모님을 향한 마음의 빚을 덜어낸다. 붐비고 막히고 줄을 서는 데서 오는 수고와 짜증에도 불구하고 매번 명절마다 같은 풍경이 반복되는 건 이런 마음의 역동이 많은 가정에서 재현되기 때문이겠지.
힘들어야 명절이다. 명절이란 자고로 편안해선 안된다.
그래, 이번 명절도 고생을 잘 마쳤군. 이제 좀 쉬어볼까.
근데 내일 출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