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사과 대신 일기 베어 먹기
연필꽂이에서 펜을 집었다. 책꽂이에서 연분홍색 일기장을 꺼낸다. 조용한 시간에 맞춰 한 문장씩 써 내려간다. 보여주기 위한 미사여구는 필요 없다. 감정을 호소하는 문구도 생략한다. 오늘 하루에 대해 묵묵히 글을 쓴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하다.
가끔은 일기를 쓰는 것이 운동 후에 하는 샤워만큼 개운하다. 오래도록 간질거렸던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털어내니 말이다. 살다 보면 하고픈 얘기가 많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과 눈초림 속에서 결국 이야기를 삼켜버린다. 그럴 때 일기장을 꺼낸다. 쌓여가는 이야기가 목 끝까지 차오르기 전에 내가 먼저 들어준다. 어차피 일기의 청중은 오롯이 나뿐이다.
두 가지 이유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우선 일기를 쓰면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좋은 뇌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을 증발시킨다. 하지만 기록이 있다면 언제든 떠올릴 수 있다. 좋았던 추억은 일기장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다.
그리고 일기는 감정을 표출하도록 도와준다. 과거 사춘기 때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실처럼 뒤엉켜 있었다. 기분이 좋다 가도 이유 없이 침울해지는 종 잡을 수 없는 시기였다. 그때 일기를 쓰면 엉켜있던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진정됐다. 적어도 일기를 적는 동안에는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고 힘껏 외쳤다. 들리지 않는 고함은 일기가 끝날 때쯤 잠잠해졌다.
소년소녀의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겉으로는 천진난만해 보여도 속마음은 서울 지하철 노선만큼 복잡하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지 작은 일도 크게만 느껴진다. 친구들과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곳에는 어른들이 살피지 못한 마음들 투성이다. 철갑처럼 튼튼한 성도 부모님의 가시 박힌 말에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오래된 습관을 잊었다. 마음의 소리를 듣고 글을 쓸 여유가 사라졌다. 이따금씩 나쁜 감정을 비워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미뤘다. 한 해가 지날수록 표정은 조금씩 변했다. 좋아하는 일에 자신감을 잃고, 학생들 앞에서 숨이 턱 막혔다. 열심히 사는 게 인생 디폴트 값이라 생각했는데 번아웃을 피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퇴사생각뿐이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달력 한 칸을 그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힘들다고 소리치는 마음에 귀 기울였다면, 그날도 일기장을 꺼냈다면 지금 어땠을까.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어떤 색깔인지, 어떤 모양인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나조차 마음이 곪아터진 후에야 눈치챘다. 조금만 견디면 낫지 않을까.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연스레 낫는 건 없었다. 아무리 자물쇠로 걸어 잠가도 좁아터진 틈 사이로 가시처럼 들쑤셨다.
처음에는 일기 쓰기가 막연할 수 있다.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볼펜을 이리저리 굴리기도 한다. 하지만 수면 아래 물고기를 잡기 위해 끊임없이 그물을 당기 듯 무작정 한 글자씩 써보는 것이다. 오늘 날씨, 작은 에피소드, 꾸밈없이 적다 보면 일기장 속에는 곳곳에 감정이 표현되어 있다. 나중에 일기 쓰기가 습관이 되면 과거의 시간을 돌아볼 수 있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고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진심을 발견한다. 상처받은 것에만 몰두했다가도 상처를 준 때가 생각나고, 스스로를 가엽게 여긴 날에도 감사할 거리를 찾게 된다. 괜한 사람에게 화풀이했던 때도 떠오른다. 보통은 가장 만만하고 편안한 사람이 그 대상이었다. 가족을 과녁판에 세웠던걸 후회하며 지난 일기를 읽어본다. 외면했던 기억과 부끄러웠던 순간도 일기장에서 마주한다.
독일에 온 이후 다시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책상 모서리에 놓인 책들 사이에 일기장이 꽂혀있다. 매일 일기를 쓰며 펜은 가슴팍에 둔 청진기처럼 마음을 대변해 준다. 머리로 애써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린다. 언제 행복하고, 언제 또 슬퍼지는지. 마음의 고백이 펜 끝에서 시작되고 있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고, SNS에는 타인의 삶으로 도배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나를 알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일까. 오늘도 잠깐 시간을 내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모든 지혜의 시작은 자신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리스토텔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