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에 적당한 거리
식집사, 참 재미있는 말이다. ‘많이 쓰는 신조어 사전’에서 식집사란, ‘'식물'과 반려동물을 기르는 '집사'의 합성어로, 반려 식물을 기르는 사람.’을 가리킨다. 포털 사이트에서 ‘식집사’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여러 가지 식물과 그에 관련된 아주 방대한 정보가 흘러넘친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끼리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도 수천 개가 검색이 된다.
최근 식물을 기르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다고 한다. 코로나19 시기에 가정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면서 식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식물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을 가진 ‘반려’를 붙여 ‘반려 식물’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제 단순히 취미생활을 넘어서 식물과 함께 교감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마음을 줄 수 있는 사이가 된 것이다. 이제는 반려의 대상으로 식물의 건강도 함께 생각하게 되면서 식물 병원이나 클리닉도 생겨났다.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처음 식물 기르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서울식물원에는 씨앗을 대출받아 키우고 수확한 씨앗을 기간 및 수량에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반납하는 ‘씨앗도서관’도 생겼다고 한다. 이처럼 식물이 트렌드가 되어 클릭 몇 번만으로도 초보 식집사인 나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정보가 많았다.
하고재비가 또 무언가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식물 기르기이다. 지금까지도 선물 받은 화분이나 작은 식물들을 길러본 적이 있었지만, 항상 제대로 신경을 못 써주어 결국 죽게 만드는 일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을 ‘살식자’라고 부른다던데 나는 정말 대표적인 살식자였다. 신경을 쓴다고 물을 너무 자주 줘서 과습으로 죽이기도 하고, 물 주기를 잊고 방치해 둬서 말려서 죽이기도 하고. 엄마가 생일선물로 주셨던 아레카야자 화분만이 겨우겨우 살아나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왜 다시 식물을 키우는 식집사가 되었을까.... 최근 여기저기 다양한 카페에 많이 가보게 되었는데 식물을 인테리어에 활용하는 카페들이 많았다. 지치고 힘들었던 어느 날, 나는 그곳에서 커피가 아닌 식물에서 위안을 받았다. 초록빛 잎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복잡했던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몬드 페페라는 작은 식물을 하나 집으로 데려왔다. 아몬드 모양에 줄무늬가 있는 조그마한 잎이 참 귀여웠다. 높은 화분 선반에 올려주니 줄기들이 아래로 길게 늘어져 멋스러웠다. 앙증맞은 초록 잎과 사이사이로 보이는 붉은 줄기가 어우러져서 매력적이었다. 아몬드 페페를 시작으로 작은 식물들을 몇 개 더 데려왔다. 일단은 작은 식물로 시작해 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식물가게에서 본 길쭉하게 키가 큰 콤팩타가 눈에 아른거렸다. 며칠을 고민하다 집에 빈 화분이 있어 그걸 들고 식물가게로 향했다. 콤팩타에 비해 화분이 너무 크다고 하셨지만 “크게 키워볼게요!” 하고 호언장담을 날렸다. 귀여운 화산석 하나를 올려주시며 잘 키우라고 당부하시던 사장님을 뒤로하고 콤팩타를 데려왔다.
식물은 너무 관심을 많이 줘도 잘 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연애할 때처럼 함께 하는 시간도, 혼자인 시간도 보내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사랑을 줄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관계가 되지 않을까? 초보 식집사, 오늘 아침도 밤새 떨어진 습도를 높이기 위해 분무기를 칙칙 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