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못한 여행 – 그래도 빛나는 순간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아이와 내가 함께 자란 시간

by 부엄쓰c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였다. 학교에서 세계 여러 나라를 배우고 돌아온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엄마, 파리의 에펠탑하고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나 진짜 꼭 가보고 싶어."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여행이 싫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은 너무도 좋아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비용 문제도 부담스러웠고, 무엇보다 아이가 어릴 때 해외 여행을 가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간절한 눈빛 앞에서 나는 용기를 냈다.


"그래, 우리 한번 제대로 준비해보자. 대신 2년 정도는 돈을 아껴야 해."


우리는 여행 저금통을 만들었고, 좋아하던 한우를 포기하며 매일 저축했다. 그렇게 마일리지로 비행기표를 예약했고, 회사에도 미리 알리며 꼼꼼하게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여행이 일주일 남았을 때, 불안의 그림자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아이가 컨디션이 안 좋기 시작했고 병원에 다녀온 결과는 독감이었다. 주변 상황들이 얽히면서 순간적으로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결국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건 나였다.


의사는 여행 일정을 물어보더니 괜찮을 거라고 했고, 아이는 타미플루 링거를 맞았고 높게 오르던 열은 떨어졌지만 아이 컨디션은 좋지 않아 내 마음은 도무지 편치 않았다. 아이도 불안했는지 자꾸 내 곁에 붙어있었다. 그렇게 여행 이틀 전, 우리는 여행 일정을 지도로 그리며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엄마, 근데 나 문자가 계속 왔었어. 여권 갱신하라고..."


그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머릿속이 하얘졌고 손이 떨렸다. 아이의 여권은 여행 직후 3개월 이내로 만료가 되는 상황이었다. 당황한 나를 보며 아이의 얼굴도 울먹거렸다.


'어떻게 이런 실수를...'


처음엔 현실이 아니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러나 이내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와 이 상황을 침착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그걸 가르쳐줄 기회일 수도 있다고.


"괜찮아,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방법을 찾아보자."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 마음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밤새 인터넷을 뒤져 긴급 여권 정보를 찾았지만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때였다. 아이가 자다가 갑자기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깼다. 처음 보는 아이의 고통스러운 모습에 내 마음은 더욱 흔들렸다.


그렇게 새벽이 찾아오고, 함박눈이 내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였다. 아이는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긴급 여권을 만들러 이 눈길에 운전을 해서 가야 했다. 역시 무리였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우리, 여행을 연기할까?"


그래도 조금 더 방법을 찾고 싶어 다시 아이와 차분히 상의하기 시작했다.


“우리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선택은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어. 대신 네가 위험한 건 선택지에 넣고 싶지 않아. 컨디션이 괜찮아지면 가는 걸로 하고 2주 뒤쯤으로 연기할까? 아니면 이번엔 포르투갈을 빼고 스페인만 가는 건 어떨까? 긴급여권 문제도 그렇고 컨디션도 그렇고, 부담이 덜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아니면 아예 다음으로 미룰까?”


아이는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 여러 번 갈 수 있는 여행이 아니잖아. 이왕 가는 거 다 돌아보고 싶어. 그렇게 못하면 차라리 다음에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2주 뒤로 연기하면 다 갈 수 있어?”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일정을 2주 뒤로 미루려면, 마일리지로 예약한 비행기표 대신 일반 티켓을 새로 사야 했다. 갑자기 구매하는 표라 비용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들었다. 숙소 역시 미리 예약한 금액의 두 배 이상이었다.


나는 이 상황을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아이는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을 이해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나눈 뒤, 다음으로 여행을 미루기로 결정했다. 아이가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에 내 마음이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대신 우리는 스키장으로 향했다. 아이는 스키를 배우며 환하게 웃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미안함과 속상함이 여전히 마음 한쪽에 남아 있었지만, 아이와의 웃음 속에서 점차 그 감정도 희미해졌다.


숙소 주인도 감사하게 크레딧으로 예약을 변경해주었고, 우리는 다시 여행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번엔 여름이다. 일정은 줄이고 짐은 가볍게 준비할 예정이다.


떠나지 못한 여행이었지만, 아이와 내가 서로의 감정을 깊이 나누었던 순간들은 무엇보다 소중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우리는 진짜 여행보다 더 빛나는 순간을 발견했다. 여행은 가지 못했지만, 우리 마음속에서는 이미 여행이 시작된 것이었다.






오늘의 실천

아이의 의견을 차분히 듣고, 함께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가기.



나에게 남기는 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함께 상의하고, 함께 극복하며 우리 둘은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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