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녀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하기는 너무 쉽다. 부모는 아이들보다 더 크고, 경제권도 쥐고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하게 할 수 있는 법적, 도덕적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녀와의 많은 대화 업이 그 힘을 휘두르게 되면, 그것은 자녀에게 너는 아무런 힘도, 통제력도 없으며, 네 바람은 이 세상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또한 이것은 부모 스스로에게도 나쁜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이런 권한이 언제까지나 부모에게 있지는 않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무시하거나 등한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습관화해선 안 된다. 언제가 자녀는 자신의 대학 전공을 바꾸길 원할 것이고, 다른 도시로 이사히길 원할 것이며, 부모가 동의하지 않아도 생활패턴을 바꾸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오래된 전통을 바꾸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부모가 더 잘 알고, 부모가 결정권자라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으면 나중에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특히 자녀가 더 이상 부모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는 시기가 오면 더 심해진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자녀와의 관계가 부모의 자기중심적 태도로 인해 회보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녀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항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자녀 뿐만 아니라 모두가 가찬가지이다. 그러니 자녀에게 독재자가 아닌 책임자가 되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체 하는 사람이 아닌 대체로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모라는 직책이 주는 무게감을 이용하는 대신, 당신의 경험이 주는 중력을 이용해 자녀가 가야 할 방향으로 부드럽게 이끄는 방법으로 배워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이게 바로 부모의 삶이다.
<<데일리 대드, 라이언 홀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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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키울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할 때이다. 부모는 나이가 들어 자신이 어렸을 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기에, 내 아이가 그 세상에 참여하려면 부모가 먼저, 혹은 아이와 함께 알아가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뭔가를 새로이 시작할 때는 많은 고민과 조사, 그리고 가족끼리 충분히 상의를 하면서 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려 할 때, 처음 시작은 거의 매일 가서 피아노를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게 했다. 1년 쯤 지나서 아이가 피아노를 더 잘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나와 아내는 집 주변 지역에 있는 수십 군데 모두를 찾아가서 '내 아이가 잘 배울 만한 곳인가?' 를 고민했다. 그리고 가장 괜찮은 곳을 결정한 후에는 '선생님을 믿고 따랐다'. 말 그대로 더 이상의 의심은 없이 '믿고 따랐다'
삼성의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은 필요한 사람을 뽑을 때,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그런 다음 사람을 뽑으면, 그 사람을 절대로, 절대로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가면 쓰지 말고, 쓰기로 했거든 의심하지 말라." 이것이 그의 용인술이다. 이 말을 풀어보면 네 능력을 한껏 동원해 비교분석해 보고 적합한 인물을 뽑아라. 그리고 만약 뽑았다면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너의 결정을 믿고 그를 신용하라. 그래야 일이 굴러간다는 뜻이다.
이러한 용인술은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아이의 문제집을 고르려 해도 부모와 함께 서점에 가서 부모가 먼저 가장 괜찮을 것 같은 문제집을 두어 권 고른 후 아이더러 '네가 풀고 싶은 문제집을 골라라'고 말한다. 최종의 결정은 아이가 해야 한다. 결국 아이가 푸는 문제집이고, 아이가 싸워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문제집도 책이다. 책이란 물성이 있어서 독자가 원하는 활자라는가 자간 장폭 등이 있다. 심지어 팔랑거리는 종이질에도 기호가 따로 있을 정도다. 제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아도 이런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읽기가 쉽지 않고 결국 뜻하는 바을 이루지 못할 만큼이다.
라이언의 말대로 부모는 독재자가 아니라 관리자다. 백화점으로 말하자면 컨시어지다. 최고를 몇 개 추천하고 입고 쓰고 먹는 사람은 '너'니까 네가 선택하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고른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책임감을 갖게 되고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아이와 영원히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없고 난 이후에도 아이가 올바른 선택을 하고 온전히 만끽하려면 그런 습관을 길러야 한다.
아이는 결코 내가 아니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내 기호를 투영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해야 한다. 이것만 잘 해도 좋은 선택의 절반은 하는 셈이다.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