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책을 쓰는 작가가 되기는커녕 직업조차 가지 못하던 시대였다. 일을 하는 여성은 존경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제인 오스틴의 아버지는 딸의 글을 출판사에 보내고 있었다. 클레어 토말린의 책 <제인 오스틴>에 따르면, 그는 잘 알려진 출판사 카델에 "나는 이런 작품이 존경할 만한 출판사의 이름으로 첫선을 보이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기에 이 작품을 보냅니다"라고 써서 편지를 보냈다.
자녀의 팬이 되어준다는 것은 가끔 축구 경기를 응원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아이에게 특별하다고 말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당신이 먼저 나서서 아이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기꺼이 관습에 저항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 필요하다고 느끼면 관습에 저항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당신은 자녀를 안정적이고, 자신감 있고, 유능하며, 성공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 왔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하면 진정한 도전이 함께 싹틀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안전지대의 경계선을 넓혀 가면서 당신도 안전지대에서 벗어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좋은 일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믿어야 한다. 그들의 팬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가 아이를 믿지 못한다면 누가 믿어주겠는가? 진정한 팬이 되어 주자. 쉽지 않은 일이지만, 훌륭한 부모들이 어떻게 항상 쉬운 길만 택할 수 있겠는가?
<<데일리 대드, 라이언 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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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나쁜 습관 때문에 걱정을 하면 나와 아내는 "이거 누구 거야?" 라고 묻는 습관이 있다. 인간에게 생기는 문제는, 특히 육아에 있어 해결책이 있으면 발전의 계기가 되지만, 그게 없으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육아가 어려운 것은 키우는 대상이 '소중한 내 아이'라는 점 때문이다. 아이는 모르모트가 아니다. 이렇게 했다가 실패하면, 저렇게 해 보고 할 수가 없다. 다 큰 어른이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다지만, 자고 나면 어제의 아이는 간 데 없고, 불쑥 불쑥 커버리는 아이에게 '시행착오'는 가급적 없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바람이 아니던가.
그래서 아이에 대한 고민이 생기면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두 사람이고, 그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할 사람도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아이는 나와 배우자의 절반씩을 갖고 있는 존재다. 둘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놓고 보면 아이는 나보다 낫고, 제 엄마보다 낫다. 즉 내 아이는 대략적으로 제 부모의 우성의 인자를 갖고 있겠지만, 당연히 부모가 가짓 못된 버릇과 습관도 많지는 않지만 물려받았다. 그 점을 해결하기 위해 둘은 끊임없이 대화한다. 처음에는 아이의 문제를 놓고 '너는 무슨 그런 버릇(습관)이 있냐?'는 투로 비난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자고 대화한 것이 아니기에 점점 해결책을 위한 대화로 이어지고 있다.
대화를 하다 보면 금방 알게 되는데, 아이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 그 사실은 정말 무서울만큼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이의 문제를 부모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아이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대화는 비난과 다툼이 아니라 해결을 위한 객관적인 토론이어야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대화를 통해 많은 문제점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좋았던 나빴던 분명히 사례가 있어서였다. 나아가 이러한 대화를 통해 아이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의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의 어딘가 절반이 내가 들어있다는 생각이 확실히 각인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절대로 함부로 할 수 없게 된다. 그 잘못의 절반은 나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아이에게 야단 대신 대화로, 비난 대신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바꾸게 한다. 그러다 보면 나는, 부모는 아이의 팬이 될 수 밖에 없다.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