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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기만 하고 익힐 시간이 없는, 요즘 아이들

by 리치보이 richboy


암기가 아닌 학습이 중요하다



"암기하고 있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 미셸 드 몽테뉴



당신은 자녀에게 이제 구구단을 복습할 때라고 이야기한다. 단어 암기 카드를 살펴본다. 아니면 당신은 자녀에게 시나 희곡을 암송하게 하거나 말하기 대회를 참가시키려는 부모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철자법 대회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이건 다 아이들을 더 똑똑하게 만들기 위한 거야." 라고 속으로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니면 그저 아이들에게 똑똑한 척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일까?


우리는 로봇을 키우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고,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는 아이를 원한다. 여기에 아이들이 무엇을 외울 수 있는지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우리는 아이들이 거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길 바란다. 우리는 아이들이 암기가 아닌 학습을 좋아하길 바란다. 그러니 당신의 우선순위를 조정하자. 당신이 계획한 활동이 실제로 아이를 목표에 가까워지게 해주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 올바른 것에 집중하고 있는지 확인하자.


아이들이 배움을 할 수 있게 가르치자.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다.




<<데일리 대드, 라이언 홀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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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때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The flow'에 빠진 적이 있다. 책을 읽는 이유 중에는 정보와 지식의 습득이라는 결과보다는 '시간을 잊고 책 읽는 재미에 빠져 드는'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된 무렵부터 였다. 그래서 미하이 교수가 쓴 '몰입 관련서'를 죄다 읽고 '몰입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책 한 권이 나온 뒤 그 '몰입'은 더욱 쉬운 일이 되었다. 바로 황농문 박사의 '몰입'이 나온 뒤 였다.


황농문 박사의 책 속에 소개된 일화가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성적이 각각 다른 초등학교 학생들을 모아놓고 아이들이 한 눈에 풀기 어려운 중학교 수준의 수학문제를 주관식으로 풀게 했다는 것. 그 어떤 해설이나 조언없이 아이들의 순수한 노력으로 문제를 풀게 한 것이다. 아, 딱 한가지 제공한 것이 있는데 '문제를 푸는 시간을 무한정으로 준 것'이었다.


친구 자네가 지금 짐작한 대로, 결국 초등학생들은 모두 그 문제를 풀어냈다. 황농문 교수의 말에 따르면 '무수한 시간을 들어 몰입한 결과' 였다. 그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몰입을 한다면 누구나 그런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책을 읽을 때 서른을 훌쩍 넘긴 내게는 그런 몰입을 할 만한 문제를 풀 이유가 없거니와, 그럴만한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놓고 싶었지만, 시도하지 않았다. 그저 책을 읽을 때 보다 더 몰입하기에 집중했다.


나중에 십년이 지난 후 내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 그 때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이른 바 선행학습을 위한 혼공(혼자 공부) 때 였다. 2학년 2학기 수학 문제집을 사준 뒤 '무한한 시간'을 주고 혼자 공부하게 했다. 물론 각 단원마다 기초가 되는 내용은 함께 공부한 뒤 문제를 풀 때 그렇게 한 것이다. 한마디로 아이에게 '몰입'을 경험하게 하고 이걸 관찰해 본 것이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아이의 몸이 뒤틀리고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쉬고 하는 일들이 더 많았지만 아이는 결국 혼자서 문제를 풀어냈다. 아이는 신기해 했지만, 정작 더욱 놀란 건 나였다. '이게...가능한 거였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깜짝 놀랐다. 그 뒤 방학 마다 아이는 홀로 다음 학기 수학을 홀로 몰입하며 공부했다. 진도가 빨리 나가면 한 학기를 더 나갔고, 주춤하면 그대로 멈췄다.

이윽고 4학년 겨울 방학이 되었을 때 초등 6학년 2학기 수학문제집을 혼자서 풀었다. 초등 6학년인 지금은 중학교 3학년 수학문제집을 놓고 혼자서 풀고 있다. 한 문제를 푸는데 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끝끝내 풀지 못한 문제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는 이러한 공부를 통해 '수학은 분명히 답이 있고, 시간이 걸릴 뿐 몰입하면 풀 수 있는 학문'이란 걸 알게 되었다. 비록 진도는 더디지만 저 혼자 제 힘으로 풀어나가고 있어서 공부한 내용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학습'이란 말 그대로 배우고 난 뒤( 學 ), 익히는( 習 )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학에만 몰두하는 형편이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배우기만 할 뿐,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는 제 스스로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다. 그 대신 숙제를 잔뜩 내준다. 결국 학원을 다녀도 혼자서 공부해야 하는데, 결정적으로 시간이 없어서 습을 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학원을 다녀도 공부를 못한 셈이 된다. 이게 말이 되는가.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1시간을 배우면 2 시간 정도는 익혀야 한다. 그래야 배운 것을 온전히 익힐 수 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익히는 습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내 아이는 따로 학원을 다니지 않기에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학교에서 내준 숙제와 과제를 하고, 저 혼자서 그간 학교에서 배운 내용에 맞춰 따로 문제집을 풀면서 공부한다. 그러면서도 제가 하고 싶은 게임이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일찍 자기가 힘들다. 그런데 여기에 학원을 다니고, 또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하다 보면 밤 12시, 새벽 1시에 자야 한다. 그래서 요즘 초등 5, 6 학년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졸거나 쉬는 시간에 엎드려서 잠이 든다고 한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이나 볼 법한 것들을 요즘 초등학생들 수업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암기가 아닌 학습이 중요하다'는 라이언의 지적은 뜨끔할 정도다. 아이들이 충분히 배운 바를 익힐 시간을 줘야 한다. 학학학이 아니라, 학습 학습 학습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학부모의 불안감과 조바심을 줄인다면, 그렇게 된다면 아이에게는 공부할 시간이 생기고, 사교육비를 한참 줄일 수 있을 것이다. -rich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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