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아내가 내게 한 말이다. 아이의 기말 고사 준비 기간 내내 수도원 같던 집은, 아이가 시험을 마치자 해리포터가 호그와트에 처음 도착해서 맞이 한 식당 분위기처럼 활기를 띠고 있었는데, 내게는 냉기 가득한 찬물을 머리 끝으로 뒤집어쓴 기분이 들었다.
벌꿀이 담긴 잔에 휘핑크림을 얹은 듯한 따끈한 우유를 붓고 라바짜 에스프레소를 내린 '허니 라떼'에 발뮤다 토스터기처럼 약간의 물을 부어 스팀을 쪼여 구운 듯 찐 듯 따끈한 겉빠속촉 토스트, 그리고 이번 이탈리아 여행 때 사온 '피스타치오 잼'과 버터 발뮤다 토스터기처럼 약간의 물을 부어 스팀을 쪼여 구운 듯 찐 듯 따끈한 겉빠속촉 토스트,등을 잘 차려주었건만, 그런 노력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간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놓은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사방을 둘러 보니 마치 정리되지 않은 도서관처럼 온통 책이 말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내게는 익숙한 풍경, 지극히 자연스럽고 편안스럽기까지 한 풍경인데 정갈하기 그지없는 아내에게는 '남의 집' 같은 느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난 왜 이리 책을 많이 들이는 걸까?' 하는 의문이었다. 평균 한 권을 읽으면 두 권을 새로 사들이는 격이니 늘 지갑은 얇고 방마다 '김밥천국' 아니, '책 천국'이 되는 것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책을 사들이고 있다.
어제만 해도 야마구치 슈의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와 최인아책방의 대표인 최인아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가 집에 도착했다. 입시 전문가 윤윤구의 <입시의 본질>이란 책을 막 완독 했을 때 였다.
이 책들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야마구치 슈의 베스트셀러를 아이의 철학공부를 위해 다시 읽다가 문득 '글을 정말 잘 쓰는 이 친구가 새로 낸 책은 없나?' 하는 생각에 온라인 서점을 켜고 보니 따끈따끈한 신간이 보여 냉큼 주문했고, 카트에 있던 최인아의 책도 함께 주문 했던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나는 왜 이리 책을 끊임없이 사들이는 걸까? 생각해 보니 대학시절, 그러니까 입시를 막 끝내고 대학에 들어가 허구 헌 날 술만 마시는 신입생을 보내며 넘쳐나는 시간을 어찌할 바 몰라 막 '책읽기'를 배우던 시기였는데, 안타깝게도 '돈'이 없던 시절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길 때 마다 수첩에 적어 놓고 한 권 살 여유가 생기면 서점 - 학교 앞 '건대글방' - 그간 적어뒀던 책들을 모두 소환 해서 면접(?)을 보며 '당장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고른 뒤 나머지는 '눈물을 머금고' 돌려보냈던 안타까움이 내 뇌리에 박힌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책을 살 여유는 충분한데 정작 시간이 부족한 지금에 와서 그 시절에 숨겨뒀던 구매욕이 살아난 건 아닐까. 그 시절에는 서점 사장님이 '기특한 학생'이라며 10퍼센트나 할인해서 책 겉표지를 비닐에 포장해주기 까지 했는데, 훨씬 더 '기특한 학생' 쯤 되는 지금, 나는 아내에게 욕만 바가지로 먹고 있구나... 쓴웃음이 났다.
그런 지금도 나의 온라인 서재의 카트에는 약 700만원 어치의 사고 싶은 책이 쌓여 있다. '로또만 되면 바로 그냥 모두 사 버린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그 때가 되면 1천만원이 훌쩍 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의욕은 젊은 그 시절 정도가 되는데, 눈은 점점 침침해져서 그 또한 쪼금 안타깝다. 뭐, 상관은 없다. 눈이 보이는 한 e-book으로 글자를 최대한 키워서 읽을 작정이고, 책을 아예 읽을 수 없게 될 때 까지 읽다가 정 안되면 '알베르토 망구엘'에게 대신 책을 읽게 하고 듣는 것으로 책을 읽었던 '보르헤스'처럼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될 터, 숨을 거두는 그 날까지 나는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게다. 이런 비극의 순간 전까지 나는 종이의 물성을 뿜어내는 종이책을 여전히 사랑하며 읽을테고 말이다.
이렇게 작정은 했다마는, 다음 주 정도 아내가 또 한 번 '책 치워라' 소리를 하면 사랑하는 애들 '십분의 일, 이'는 처분을 해야 할텐데...미리 슬픈 마음이 든다. 세익스피어는 '사랑하면 시인이 된다'고 했는데, 책을 사랑하는 '부커스'인 나는, 시인은커녕 언제나 천덕꾸러기 신세다. -richboy
이 글은 책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읽다가, 책 이야기를 하는 주인공이 부러워 말 대신 친구들에게 글로 내 속을 풀어낸 것이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