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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한진 Oct 16. 2024

챕터 24. 미스터 브라운의 브라운 슈거

    24. 미스터 브라운의 브라운 슈거




    우려와 다르게 탐문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버렸다. 우리는 마침 마주 걸어오고 있는 남자에게 단 한 번의 질문을 함으로써 곧바로 주인공의 소재를 알아낼 수 있었다. 답을 준 남자는 건설 노동자 느낌이 나는 작업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외지인이라고 밝혔다. 이곳에서의 첫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괜찮은 빵집을 수소문했었는데 하나 같이 모두가 한 빵집을 추천하더란다. 숱한 추천을 받았으니 안 가볼 이유가 없어서 방문했다. 그 이후로 자주 신세를 지고 있다는 그 빵집에 대한 남자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나도 여기 몽멜리에에 철거 작업이 있어서 최근에 오게 되었는데 나쁘지 않은 동네인 것 같아. 그 ‘브라운 슈거’에서 산 파리지앵 샌드위치를 휴식 시간에 내 아늑한 포크레인에서 한 입 뜯으면 그렇게 운치가 좋다니까. 샌드위치의 내용물은 간단하지만 맛은 전혀 단순하지 않지.”

    “브라운 슈거요?”

    “그래, 그게 빵집 이름이야.”


    알렉시스는 빵집 이름을 듣자마자 반응했다.


    “어머, 이름부터 너무 달콤한데요? 어서 위치도 물어봐요!”


    나는 한 명의 몸종처럼 순순히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래서 거기 위치는 어디 쪽인가요?”

    “일단 산 중턱 방향으로 올라가서 마을 회관을 찾아. 그리고 그 주변에서 장 끌로드 꽃집을 찾으면 돼. 거기에 상가들이 몰려 있는 거리가 있는데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거야.”


    우리의 감사 인사를 넓은 등판으로 쿨하게 받은 그는 터덜터덜 자신의 일터로 돌아갔다. 산 중턱에 있다는 빵집의 위치를 가늠해 보기 위해 마을 뒤를 방벽처럼 지키고 있는 거대한 산맥 방향을 돌아보았다. 이제르 강과 인접한 도로에 있는 우리는 산에서 정반대 방향에 있었지만 좁은 면적의 마을 특성상 큰 고생 없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거리로 보였다. 직선거리는 아마 길게 잡아도 500m 안쪽으로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다음 목적지는 마을 회관이네요?”

    “맞아요. 그런 다음 꽃집 이름이 뭐였었죠?”

    “장 끌로드!”

    “아주 훌륭해요. 제가 아주 똑똑한 조수를 뒀군요.”


    알렉시스가 황당하다는 듯 반문했다.


    “저는 제가 셜록이고 그쪽이 왓슨인 줄 알았는데요?”

    “누가 봐도 제가 탐정이고 그쪽이 조수 아닌가요? 제가 콧수염이 있거나 파이프를 물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아까 증인 심문도 혼자 다 했잖아요.”

    “에이, 요즘 트렌드는 그런 정형화된 클리셰를 비트는 거라는 걸 몰라요?”

    “흠, 젊고 예쁜 여탐정과 그녀의 사고뭉치 조수라… 일단 나쁘지 않은데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넷플릭스에 시리즈물로 나와도.”

    “시리즈 타이틀은 뭐가 좋을까요?”

    “글쎄요?”

    “음, 알프스 특급? 알프스의 알쏭달쏭 살인사건?”

    “너무 대충 던지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건 시리즈 내의 에피소드 하나의 이름으로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담백하게 ‘미녀 탐정’은 어때요?”

    “‘미녀 탐정’이라… 그렇게 되면 제목에 제 지분은 없는 거예요? 당신의 신실한 조수도 좀 챙겨달라고요.”

    “알겠어요. 그럼 “미녀 탐정과 비밀 많은 조수”로 하죠. 살짝 해리포터 시리즈의 타이틀처럼.”

    “후, 알겠어요. 스포트라이트는 제가 양보할게요.”


    500미터의 거리도 나만의 셜록, 알렉시스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순식간에 마을 중심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폐업을 한 건지 영업 중인 건지 모를 자동차 정비소 하나를 지나 도로를 따라 계속 걷다 보니 그나마 사람이 어느 정도 다니기 시작하는 거리가 나타났다. 여기서 다시 아주머니 한 분을 발견하고는 마을 회관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회관은 다행히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았다. 진짜 작은 마을이었다. 아주머니의 열정적인 설명에 따르면 마을 회관은 산 중턱 마을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까 첫 번째 증인과 겹치는 증언이었다.

    산중턱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언덕 마을로 향하는 도로가 좁아지면서 대도시인 서울이나 하바나와는 다른 유럽 작은 마을 특유의 정취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언덕 아래에는 비교적 현대적인 콘크리트 건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면, 큰 건물을 짓기 힘든 경사진 언덕에는 확실히 오래된 양식의 건물들이 가득했다. 굳이 이 좁은 마을을 두 영역으로 나누자면 언덕 아래의 신 시가지와, 언덕 위의 구시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구시가지로 접어들며 가운데의 좁은 도로와 길 양옆으로 서 있는 석조 건물들이 시야의 화폭을 채웠다. 도로는 매우 좁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양원의 S클래스 리무진은 이 길에 들어올 엄두도 못 내리라. 밑에 있는 휴게소에서 우리를 내려주고 걸어서 다녀오라고 하겠지.

    좌우로 늘어선 건물들은 주로 2층 높이에다 좁은 면적을 가진 구조로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물론 귀여운 느낌보다는 투박한 느낌이 강했다. 어딜 가나 아름다운 부분이 보이는 관광용 마을은 아니었지만 좁은 골목골목 사잇길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산을 오르는 길의 경사가 은근히 가팔랐던지 마을회관 앞에 다다랐을 때는 고도가 꽤나 높아져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저 멀리 이제르 강과 우리가 서 있던 강변길이 보였다. 가벼운 동네 뒷산 등산에 비교하면 적절할 듯싶었다.


    “안 힘들어요?”

    “이 정도야 가뿐하죠!”

    “역시 건강미가 있다니까요.”

    “제가 수영장 라이프 가드인 걸 잊지 말라고요. 그나저나 여기가 마을 회관인 거죠?”

    “회관 치고는 너무 아기자기한 것 같기는 한데 아까 아주머니의 설명으로는 여기가 맞는 것 같아요.”


    마을 회관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확실히 주변 일반 주택들과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었다. 2층의 건물은 너비가 다른 집 두 채를 합친 것 같이 좌우로 길었고, 길 쪽으로도 창이 많이 나 있어 창 없이 벽면만 있거나 작은 창이 겨우 한 두 개 정도가 있는 다른 집들보다 확실히 공공장소라는 느낌이 있었다. 거기다 정문 위에 프랑스, 스위스, 유로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는 것이 확연한 차이점이었다. 보통 공공기관 건물에 국기들이 걸려 있다지?


    “회관이 너무 귀엽지 않아요? 여기 창틀의 꽃들과 아래에 화단을 좀 봐요!”

    “할머니 집에 놀러 온 것 같은 느낌이 있네요. 자, 이제 우리 다음 목적지로 향해요.”

    “꽃집은 이 근처에 조금만 돌아다녀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꽃집과 빵집이니까 어쩌면 후각이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좋은 생각인데요? 꽃향기와 빵냄새를 찾아볼까요?”


    우리는 한 쌍의 마약 탐지견처럼 코를 킁킁대며 주변 골목을 돌아다녔다. 산 위의 마을은 미로처럼 복잡해 보이는 구조를 가졌지만 결국엔 절대적인 크기가 크지 않아서 최종 목적지를 찾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을 회관 뒷골목으로 돌아 코를 킁킁거리다 보니 정말로 희미한 빵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따라가니 정말로 브라운 슈거 빵집이 나타났다. 바로 옆집에 있는 장 클로드 꽃집은 덤이었다.

    알렉시스가 거리에 잔잔히 남아있는 빵내음을 다시금 맡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꽃향기보다 빵 냄새가 더 강력한가 봐요.”

    “그건 그쪽이 지금 배가 고파서가 아닐까요?”

    “그나저나 정말로 수소문만으로 여기를 찾았네요?”

    “다 여기 계시는 탐정님이 훌륭하셔서가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또 든든히 지원을 해준 조수의 공도 치하하지 않을 수 없죠.”

    “영광입니다.”

    “그럼 이제 무작정 빵집에 들어가 보나요?”

    “음, 그렇죠? 얼핏 보면 지금 가게 문이 열려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 보이는데 일단은 들어가 보자고요. 제빵사 아저씨를 만날 수 있으면 잠깐 인터뷰도 나눠보고요.”


    우리는 빵집 문 앞에 섰다. 안에 창과 문의 유리로 보이는 내부는 조금 어둑했다. 내부 조명이 밝지 않고, 빵집 내부보다 외부가 밝은 낮 시간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인기척이 없어 보여 눈치 보지 않고 찬찬히 살필 수 있었다. 역시 손님이나 점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고로 진열대의 빵 몇 개 말고는 가게가 텅 비어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태라면 문이 잠겨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히 손잡이를 잡고 문을 조금 당겨보았다.


    “열려있네요?”


    알렉시스의 반가운 외침에 문을 마저 열렸다. 우리는 조심히 안으로 들어갔다. 진열대에 빵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았다. 빵집 하면 떠오르는 갓 구워진 빵이 가득한 트레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안에 남아있는 빵들은 모두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부에 전등이 켜져 있기는 했지만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가게 창을 통해 강한 햇빛이 들어와 가게 내부 메인 조명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자연조명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카운터 안쪽은 상대적으로 어둡게 보였다. 조심스레 카운터로 향했다.


    “계시는가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여기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나 고민이 들기 시작할 때 카운터 뒤의 공간에서 우당탕탕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천장에서 허리높이까지 내려온 천으로 된 가림막에 너머의 구조는 확인할 수 없었다. 소리는 천장에서 시작되어 점점 1층으로 내려왔다. 2층에서 내려오는 계단 소리였다. 곧 한 사람이 가림막을 통과해 나타났다. 식당에서 본 그 콧수염 아저씨였다.


    “어서 오세요! 어째 처음 보는 얼굴 같으시네요들?”

    “찾았다!”

    “네? 뭘요?”


    이 엉터리 탐정극의 성공에 나도 모르게 나와버린 외침과 그것에 놀라 반문하는 그의 풍성한 콧수염이 움찔거렸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빵집 하는 브라운입니다. 요양원에서 오신 분을 여기에서 또 뵙네요.”


    브라운 아저씨는 사람 좋은 웃음소리와 함께 가림막 뒤 백 룸에서 나무 스툴 두 개를 꺼내오더니 카운터 옆에 내려놓았다. 순식간에 카운터가 3인용 응접 테이블로 변신했다.


    “커피나 차? 뭐로 드릴까요?”

    “하하, 전 괜찮습니다.”


    애초에 빵집 방문 목적이 몽멜리에 여행을 겸한 단순 방문이었기에 길게 머무를 생각이 없던 나는 그의 제안을 공손히 거절했다. 그와 앉아서 길게 이야기할 것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괜히 대화를 시작했다가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괴로운 시간이 될 수도 있으니까. 불편한 대화를 빨리 마무리하기 위해 운을 떼는 것 자체도 정신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더욱이 상대방은 대화를 계속하고 싶어 하는 상황에서라면 말이다. 그러나 옆의 알렉시스가 내 생각과 달리 그의 호의를 덥석 받아들여 나를 당황케 만들었다.


    “전 차로 부탁드릴게요.”

    “우유는?”

    “물론 필요하죠.”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문하는 그녀와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문받는 브라운 아저씨. 그 모습에 나도 다급히 주문했다.


    “저, 저도 그럼 같은 걸로 부탁드릴게요.”

    “하하하, 금방 내오죠.”


    아저씨는 씩 웃더니 다시 가림막 뒤로 사라졌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알렉시스를 홱하고 쳐다봤다. 그녀는 ‘뭐가 문제예요?’라는 표정으로 응수했다. 물론 문제 될 건 없는데…


    “혹시나 어색하고 불편한 대화를 억지로 이어가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요. 우리가 아직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잖아요?”


    나는 최대한 조용히 속삭였다. 이 작은 건물에서라면 1층의 말소리가 위층까지 충분히 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내 의도를 간파했는지 마주 속삭여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요, 아저씨 첫인상이 좋잖아요? 그리고 이야기를 해 봐야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죠. 너무 조심스러워하지 마요. 이게 아시아 스타일인가요? 그리고 혹여나 힘들더라도 우리는 둘이니까 반반씩 부담하면 될 거예요.”


    일리가 있는 말이기는 한데… 내가 뭐라고 다시 답하기 전에 아저씨가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커튼을 뚫고 나타난 그의 손에는 찻잔과 빵이 담겨있는 트레이가 들려있었다.



    “마침 저희도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인도산 홍차와 스콘입니다. 저희 마누라가 스콘을 좋아해서 종종 구워내고 있죠. 이 마을에서는 영 인기가 없어서 판매용으로는 안 내놓고 저희끼리 먹을 정도만 작게 만들고 있답니다.”


    브라운 아저씨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뱉고 있었다. 밝은 웃음만큼 말이 많은 아저씨인 것 같았다.


    “아, ‘저희’라면 혼자 계신 게 아니었군요? 그나저나 향이 너무 좋은데요?”

    “껄껄껄, 괜찮습니다. 손님 접대는 늘 즐겁지요. 우유는 여기 자기 주전자에서 기호 것 태워 먹어요. 그래서 여기에 왜 오셨다고?”


    알렉시스는 밝게 대답하며 우유 주전자를 집어 들었다. 나는 검지 손가락으로 내 잔에도 우유를 따라달라는 수신호를 그녀에게 보내며 아저씨의 질문에 답했다.


    “요양원에서 쭉 묵고 있는데 빵 맛이 너무 좋아서요. 얼마 전에 주방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아저씨 얘기를 들었거든요. 조식에 먹는 빵을 거의 다 담당하신다고. 그래서 궁금해서 찾아왔어요.”

    “아, 그랬군요. 혹시 기자거나 방송국에서 나온 건가요?”

    “예? 전혀 아닌데요.”

    “예전에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앵커가 요양원에 쉬러 온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어봤습니다, 핫핫핫.”


    기자? 어쩐지 기대를 가득 품고 물어본 것 같다면 기분 탓일까?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언론사에 제보하고 싶기는 해요. 우연히 요양원 전속 제빵사로 발탁되셨다죠?”

    “하하, 전속은 아니고요. 보다시피 여기서 제 빵집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운 좋게 셰프의 눈에 들어서 기회를 얻었죠. 정말 제 이야기를 들으셨나 보군요!”


    알렉시스가 스콘을 한 입 베어 물고 우물거리며 끼어들었다.


    “제 상상처럼 드라마 같은 기회였었나요?”

    “하하, 드라마요? 우리 인생이 다 하나의 드라마지요. 여기 몽멜리에에 요양원의 의사가 머물고 있거든요. 마을 옆의 산 중턱에 아주 아늑한 주택이더군요. 의사가 요양원의 셰프랑 친한지 한 번은 셰프가 그의 초대를 받아 이 마을에 놀러 왔던 적이 있었죠. 그때 제 빵을 접한 거예요.”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영입 제안을 한 거고요?”

    “바로는 아니고 며칠 후에 따로 연락이 왔어요. 사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제안을 하신 건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단순히 내 빵이 미슐랭 스타 셰프의 입맛에 맞을 정도로 훌륭해서였는지, 아니면 이제 슬슬 힘이 부쳐서 제빵 쪽은 전권을 넘겨버리고 신경 쓰고 싶지 않았던 차였을 수도 있고요. 뭐가 되었든 돈이 필요하던 차에 저에게는 귀중한 제안이었습니다.”

    “돈이요?”


    돈 이야기가 나오자 아저씨가 무의식적으로 집게손가락으로 자신의 콧수염을 비비 꼬기 시작했다.


    “사실… 아내가 많이 아프거든요. 그래서 요즘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너무 안타깝네요.”

    “하하, 괜찮습니다. 그런 게 인생 아니겠어요?”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었지만 이내 바로 차를 들이켜 입안을 적셨다. 나도 그를 따라 차와 스콘을 먹었다. 진짜 훌륭한 맛이었다.


    “아내분의 진료를 보는 병원은 이 근처에 있나요?”

    “지금은 닥터 쿠퍼가 이따금 봐주고 있죠. 정말 고마운 분입니다. 진료비도 요구하지 않아요. 그래서 빵을 잔뜩 안겨드리고 있죠.”


    그 뺀질이 의사 놈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훈훈한 선행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밝게 호응하며 알렉시스의 표정을 살짝 살폈다. 아무래도 닥터 쿠퍼와 접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그녀였지만 예상외로 그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정말 다행이네요!”

    “그렇죠. 그래도 정기적으로 약 수급과 검사를 위해서 그르노블이나 리옹까지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나는 불편한 주제를 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화제를 던졌다.


    “할머니께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들었어요.”

    “그들이 그런 이야기도 하던가요? 맞습니다. 이 빵들은 모두 할머니가 제게 알려주신 것들이죠. 원래 가게 이름도 ‘미세스 브라운의 브라운 슈거’였거든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가게 이름을 바꿨지요. 슬펐지만 아직도 빵을 구우면 할머니와 함께 있다는 기분이 들어 외롭지 않고 든든합니다.”

    “할머니도 이 건물에서 가게를 그대로 운영하셨었나요?”

    “그렇죠! 우리는 한 번도 몽멜리앙을 떠나지 않았어요.”

    “이 마을을 정말로 사랑하시나 봐요.”

    “이제 한 가족 같은 마을 사람들과 이 풍경. 그리고 빵을 만들기에도 나쁘지 않아요. 주변에 목장도 있어 원료를 구하기도 쉽고요.”


    어쩐지 뒤로 갈수록 그의 마을을 자랑하는 목소리에 열정이 점점 사그라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단순한 내 착각일지도 몰랐다. 지금 교차 검증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인 알렉시스, 그녀도 나와 같은 걸 느꼈을까?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스콘을 모두 먹어 치우고 내가 먹던 스콘을 노리고 있는 데에 모든 집중을 쏟고 있었다. 나는 내 스콘을 그녀 쪽으로 스윽 밀어 넘겼다. 결국 인터뷰를 이어가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런데 한정된 아침 시간에 두 곳에서 모두 빵을 만들 수 있나요?

    “요양원으로 출근하기 전에 여기 빵들을 모두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죠. 피곤하지만 여기 빵집 운영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 마을 사람들의 아침을 책임지는 의무감과 사랑에서 하는 일입니다. 아침에 잔뜩 쌓아놓은 빵이 몽멜리아의 하루 식사를 책임진다는 생각이 있으면 아무리 이른 새벽이라도 절로 눈이 떠져요. 그래서 저녁에 일찍 잠이 드는데 다행히 아내와 수면 패턴이 맞아떨어져 지내는 데에 문제는 없습니다.”

    “그럼 요양원으로 출근하시면 아내분이 오전동안 여기 카운터를 보시는 건가 봐요.”

    “네, 몸이 좋지 않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거든요.”

    “다행이네요. 그렇다면 여기 가게를 또 다음 세대로 물려줄 수 있을 때까지 잘 운영하는 것이 목표인가요?”


    아저씨와 대화하다 보니 정말 내가 무슨 취재하러 나온 기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어지는 질문들도 자연스럽고 호응도 곧 잘하는 걸로 보아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걸지도 몰랐다. 아저씨도 이 취재 비스무리한 상황에 녹아들었는지 순순히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냥 이야기를 좋아하는 중년인 것일 수도.


    “그런 목표가 있었죠. 아내가 유산을 하기 전까지는요. 유산을 하고 아내는 아이와 건강 모두를 잃었어요. 처음에는 마음의 건강이 시들어 갔지만 그것이 곧 육체의 건강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아내의 건강에 뒤로 밀려났습니다.”


    어째 자꾸만 어두운 이야기가 나와 나도 기분이 편치 않았다. 겉으로는 이렇게 밝게 살아가는 아저씨의 뒤편에 이런 어려운 문제들이 있었다니. 야속한 세상이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길을 찾아 삶과의 승부를 펼치고 있는 아저씨에게 경외감이 들었다. 나도 모르싸를 겪으며 큰 풍파를 지나왔다 생각했지만, 아저씨는 나와는 다른 종류의 풍파를 겪고 있었다. 어쩐지 그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저씨의 꿈은 뭐예요?”

    “물론 첫 번째는 아내가 완쾌하는 거죠. 그리고…”


    그가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를 재촉하지 않고 그 스스로가 문장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요즘에 자꾸 어렸을 때의 꿈이 나를 잠에서 깨우곤 해요. 한창 혈기 왕성할 때의 나는 프랑스에서 빵으로 가장 유명해지고 싶었어요. 내가 만든 빵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할머니를 설득하고 했어요. 할머니는 쓸데없는 것이라고 하셨죠. 이 마을과 소소한 삶에 진실한 사랑을 느끼기 전에 가졌던 꿈이었어요. 시간이 지나자 저도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런데 왜 많은 것을 잃은 지금에야 다시금 그런 욕심이 고개를 드는지. 나이를 먹으며 많이 겸손해진 지금, 과거의 자신감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세상과 부딪혀볼 기회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할머니의 빵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그게 늘 궁금했어요.”

    “우리가 도와드릴게요!”

    “우리가 어떻게요?”


    나는 갑작스러운 알렉시스의 충격 선언에 놀라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거예요. 지금도 아저씨가 좋은 기회로 우리 요양원과 연을 맺었잖아요? 어쩌면 요양원을 통해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저씨 말대로 유명한 언론인도 요양원을 찾는다고 했잖아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물론 아저씨의 빵이 요양원을 방문한 거물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나도 맞장구쳤다.


    “맞아요! 요양원 손님들을 보면 상당한 거물급 인사들이 있거든요! 우리만 아저씨의 빵에 감명받은 것이 아니라면 그들도 분명 만족스럽게 빵을 먹고 있을 거예요.”

    “하하하, 말씀은 고마운데 다짜고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막연하네요. 방법도 떠오르지 않고, 뭐라고 말을 해야 하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건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물론 무조건 좋은 방법이 떠오르리라고는 장담 못 하겠지만.”

    “하하,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부담은 가지지 마세요. 이런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행복합니다.”



    나는 호출기로 차를 불렀다. 기사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30분 후에 도착하기로 했다. 우리는 차가 접근할 수 있는 곳까지 천천히 마을을 걸어 내려갔다. 처음 생각보다 빵집에 오래 머물러버렸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빵집을 나온 우리의 품에는 빵 봉투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어차피 브라운 슈거는 아침 장사가 메인인 동네 빵집이라 오후에 남은 빵들은 대부분 끝까지 남는다고 한다. 저녁에 마을 주민을 위한 비상용 빵으로 몇 개를 남겨두기는 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많이 남았다고 말하며 그는 우리에게 빵을 푸짐하게 안겨주었다.


    “너무 좋은 분 같아요, 그쵸?”


    알렉시스는 빵 봉투를 내려다보며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맞아요, 좋은 분이네요. 처음에는 그냥 소풍에서의 컨텐츠 하나로 찾아온 거였는데 이렇게 좋은 시간이 될 줄이야.”

    “우리가 아저씨를 유명하게 만들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같이 천천히 생각해 봐요. 보이지 않던 게 보일 수도 있어요.”

    “그건 그렇고, 오늘 이야기 잘 들어주시던걸요?”


    알렉시스가 나를 다시 봤다는 느낌으로 말했다. 괜히 쑥스러워진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둘러댔다.


    “그냥 아저씨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을 뿐이에요. 왜요, 나에게서도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나요?”


    그녀는 피식 웃었다.


    “글쎄요?”

    “나는 하나 찾은 것 같은데?”

    “저에게서요?”


    알렉시스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내게서 그것이 무엇인지 유추해 내려했다. 그녀의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아름다움’ 같은 것들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대답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손을 뻗어 그녀의 입가에 아직도 묻어있는 스콘 가루들을 살살 털어주었다.


    “이 정도면 잘 찾은 거 맞죠?”


    예상 못한 정체에 그녀는 조금 창피했는지 약간 붉어진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역시 스콘은 하나만 먹을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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