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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Mar 23. 2021

걷기, 나와 마주하는 시간

아침에 일어났는데 머리가 무겁다. 샤워를 하고 밥도 챙겨 먹고, 커피도 마셨는데 계속 머리가 아프다. 어젯밤에 늦게 자서 그런가. 점심에 타이레놀을 먹고 잠깐 잠을 잤다. 아침보다 조금 괜찮아진 것 같지만 여전히 머리가 아프다. 월요일 한 주의 시작을 지끈거리는 머리와 뭔지 모를 우울감과 함께 했다.


일을 마치고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 머리가 상쾌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문득 라디오에서 오늘 날씨가 겨울처럼 춥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몸을 싸매고 후드티 모자를 썼다. 밖에 나오자마자 들이 마신 찬 공기 때문인지 머리 아픈 게 조금 나은 듯하다.


아파트 1층 목련나무에 꽃봉오리가 보인다. 며칠 있으면 활짝 핀 목련꽃을 볼 수 있겠다. 작년에도 이곳에서 목련 꽃을 마스크 쓰고 봤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 다시 봄이 왔는데 시간이 멈춰버린 기분이다. 만개한 목련꽃은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그 모습은 잠깐이고,  후두둑 지저분하게 떨어진 목련꽃을 더 오래 보게 된다. 앞으로 일주일 목련나무를 자주 살펴봐야겠다. 목련꽃, 그 찰나의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6시 30분 호수공원은 인적이 없다. 차가운 바람과 적막함,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독이 좋다. 특별히 떠오르는 생각은 없고 그냥 내가 나를 느끼며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잠깐 짬을 내서 나오면 이리 좋은데 마음먹는 게 어려운지 올 때마다 다짐하지만 실행이 쉽지 않다. 걷다 보니 산발적으로 생각이 떠오른다. 주말에 본 TV장면, 오늘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 무의식 속에 오늘 글쓰기 소재를 찾고 있었다. 


MBC의 예능 프로그램인《나 혼자 산다》에 샤이니의 키가 나왔다. 자기 집에 마련한 '비밀의 방'에서 온전히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다. 군대에 있을 때 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기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항상 남에게 물어보고 정작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바쁜 일상이지만 텃밭도 가꾸고,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그는 지금 자신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내가 나와 마주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내 시선을 빼앗는 것들에 의해서 정착 가장 중요한 나를 돌볼 시간이 없다. 중요한 일을 일정에 등록하듯이 내가 나와 마주하는 시간도 일정을 정해둬야 하지 않을까. 


걷고 걷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했고 머리가 맑아졌다. 마음도 편안하다.

 

 

* 상단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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