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넘게 이어져온 체제를 무너뜨린 혁명가, 사카모토 료마
“미국에선 대통령이 하녀가 월급으로 얼마를 받는지를 걱정한다. 도쿠가와 막부 300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쇼군이 이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국민들의 삶을 걱정하지 않는 막부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
얼마 전 일본의 작가 시바 료타로가 쓴 <료마가 간다>를 읽었습니다. 지난 2월부터 읽기 시작한 책인데 모두 8권으로 이뤄진 책이라 읽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습니다. 이 책은 일본 메이지 유신의 설계자라고 할 수 있는 사카모토 료마의 일생을 다룬 책입니다. 시바 료타로는 우리나라로 치면 박경리나 조정래와 같은 일본의 국민 작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실 특정 인물의 인생을 각색한 소설을 읽고 그 시기의 역사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듭니다. 박경리의 <토지>나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역사를 공부했다고 말하기는 힘든 것과 마찬가지죠. 아무리 실존 인물을 토대로 썼다고 해도 소설은 기본적으로 픽션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료마가 간다>를 읽으면서 메이지 유신 당시 일본 역사에 대해서 조금은 알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시바 료타로 자체가 신문 기자 출신으로 소설 안에서도 자신이 어떤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이 같은 내용에 대해서 서술했는지를 꼼꼼히 밝히고 있기 때문인데요.
<료마가 간다>는 워낙에 유명한 소설입니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에서 사카모토 료마를 바탕으로 한 대하 드라마를 만들었을 정도로 료마 자체가 일본의 역사적 인물로 꼽히기도 하죠. 그래서 저도 그 이름은 원래부터 알고는 있었는데요.
제가 이번에 <료마를 간다>를 읽은 건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그의 경영 철학에 대한 글을 쓰고 같은 내용으로 팟캐스트도 만들었었는데요.
(브런치 글)
(팟캐스트)
이를 위해서 손정의에 대해 다룬 책도 읽고 그가 2010년대 초반에 중앙일보에 직접 기고했던 약 20회에 달하는 연재 기사도 모조리 읽어봤습니다. 국내외 언론의 인터뷰 기사도 찾아서 읽었고요.
그리고 이 모든 글들에서 손정의 사장은 꼭 사카모토 료마 이야기를 하더군요. 자신이 힘들었던 시절 가장 큰 위로와 영감을 받은 인물로 료마를 꼽았습니다. 실제로 그의 사무실에는 사카모토 료마의 사진을 사람 크기로 출력한 사진도 있더군요.
손정의라는 뛰어난 기업인이 왜 하필이면 일본 막부 시대 말기의 사무라이를 존경한다고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제가 <료마가 간다>를 주문해서 8권이나 되는 책을 읽게 된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덮을 때쯤이 되자 손정의 사장이 왜 사카모토 료마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선 300년에 걸쳐서 계속된 도쿠가와 막부 체제를 깨뜨려야만 한다고 결심했던 결단력, 이를 위해 밑바닥을 구르면서 막부 타도를 위한 힘을 길렀던 실천력,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인’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낸 시대를 뛰어넘는 상상력이야말로 손정의가 료마를 본받게 만든 이유입니다.
당시 일본은 앞선 가마쿠라 막부 시대부터 전국 시대를 거쳐 에도 막부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백여 개의 봉건 국가로 쪼개진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살면서 평생 동안 자기가 태어난 봉건 왕국(번)의 경계를 벗어나지도 못했고, 일본이 아닌 자신이 태어난 번을 고국으로 여기고 살았죠.
이런 상황에서 영주가 이끄는 봉건 왕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기존에는 없던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쉽게 떠올릴 수 없던 일이었죠.
손정의 사장과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를 비교해가면서 읽다 보니 손정의가 사업을 키우면서 내렸던 결단 중에서 료마의 그림자가 묻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지금의 손정의를 만들어낸 토대를 알고 싶은 분이라면 조금 시간을 들여서라도 <료마가 간다>를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이 나라는) 털끝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그칠 것이다. 이러하니 어찌 충신 지사가 팔짱만 끼고 방관할 수 있을 것인가.”
정약용이 자신의 책 <경세유표>에 남긴 말이었습니다. 사카모토 료마든 정약용이든 세상의 거친 파도 속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걱정하는 인물들은 모두들 비슷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국에서도 정약용 같은 인물이 단순히 사상을 전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는 데 까지 이르렀다고 하면 그 이후의 역사가 크게 달라졌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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