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통업계 7위까지 갔던 빅마트 창업자가 말하는 실패 극복법
회복탄력성은 시련이나 실패를 겪은 뒤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능력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몸에 탄탄한 근육이 있어야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마음에도 근육이 있고, 이 마음 근육이 단단해야 실패를 딛고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는 개념이죠.
오늘 소개해드릴 하상용 로컬푸드 빅마트 대표는 아마도 회복탄력성이 높기로는 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만한 인물입니다.
서른네 살에 할인마트 프랜차이즈 빅마트를 창업한 그는 회사를 한때 연 매출 2000여 억 원, 직원 3000여 명 규모까지 키웠습니다. 하지만 창업 17년째 되던 해 회사는 결국 파산했고 그와 가족들은 거리에 나앉을 지경에까지 몰렸죠.
평범한 사람이라면 쉽게 극복하기 힘든 시련이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에 대한 집착과 실패에 대한 자책에 휩싸여 남은 인생을 아무런 꿈과 희망 없이 무기력하게 보낼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하 대표는 달랐는데요. 그는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다시 일어났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작은 만두 가게를 시작하기도 했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김치를 판매하는 사업에도 나섰습니다.
과거 운영하던 회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규모지만 새롭게 친환경 농산물과 로컬푸드 농산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매장도 열었고요.
최근엔 젊은 창업자들을 돕는 창업 멘토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실패 경험을 거울삼아 후배 창업자들은 실패의 고통을 피해 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성공한 사업가에서 밑바닥까지 떨어진 뒤 다시 일어나 ‘재도전 전도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를 만났습니다.
빅마트라는 회사를 빼놓고서는 하 대표에 대해 설명드릴 수 없는데요. 빅마트는 하 대표가 젊은 날을 고스란히 바친 그의 분신과도 같은 회사입니다. 1995년 광주 주월동에서 1호점 문을 연 빅마트는 광주‧전남 지역을 터전으로 한 프랜차이즈 할인마트였습니다.
매장 수가 가장 많았던 2006년에는 17개의 지점을 운영했고, 직원 수는 3000여 명(협력업체 파견사원 2000명 포함), 협력업체는 1000여 곳에 달했습니다. 매출 기준으로 전국 할인마트 순위 7위까지 올라서며 대표적인 광주 지역 중견기업으로 자리매김했고요.
하 대표가 처음 빅마트를 시작한 1995년 무렵만 해도 국내에선 대형 할인마트를 찾아보기 힘들었는데요. 국내 최대 할인마트인 이마트가 1호점인 서울 창동점 문을 연 게 1993년이었습니다.
사업에 뛰어들기 전 유통업체와 창업투자회사에서 일했던 덕분에 유통업 트렌드에 밝았던 하 대표는 ‘이제 한국도 미국 월마트나 코스트코와 같은 대형 할인마트가 유통업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할인마트 창업을 결심합니다.
신생 유통업체 빅마트가 내건 전략은 간단했습니다. 서울 대형마트의 최저 가격과 같은 가격으로 상품 판매 가격을 매기는 것이었죠.
“빅마트 같은 소규모 업체는 애초에 구매처에서 물건을 사 올 때부터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대형 업체보다 더 비싼 가격을 주고 들여올 수밖에 없어요. 라면 100개를 살 때보다는 라면 1000개를 살 때 더 싼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거잖아요. 빅마트는 구매 물량이 적기 때문에 가격도 더 비싸게 주고 사 올 수밖에 없었죠.
애초에 물건을 가져올 때부터 더 비싸게 주고 사 올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빅마트가 서울 대형마트에서 파는 최저 가격으로 소비자들한테 물건을 팔기 위해선 비용을 철저하게 줄이는 방법밖에 없었어요.”
하 대표는 매장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회사의 목표 이익률을 1%에 맞추는 방식으로 좋은 상품을 가장 싸게 팔겠다는 전략을 실천해갑니다. 매장 운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매장 내외부 인테리어를 최소화했고, 계산대 등 매장 비품도 중고 용품을 활용했습니다.
유니폼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매장 직원들은 별도의 유니폼을 입는 대신 청바지에 빨간 조끼 하나만 상의 위에 걸친 채 일하도록 했습니다.
사무 관리직의 비중을 줄여 인건비를 아끼고 대형 업체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현장에서 일하는 팀장들에게 어떤 상품을 매장에 들여놓을지 결정하는 권한을 내준 것도 하 대표가 도입한 경영 전략이었습니다.
“소비자들이 어떤 상품을 원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역시 매일 현장에서 고객들과 만나는 현장 직원들이에요. 대형업체들에선 사무실에서 일하는 관리직들이 어떤 물건을, 얼마만큼 들여놓을지를 결정했는데 이렇게 해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그때그때 바로 들여놓을 수가 없어요.
현장 팀장들에게 어떤 상품을 구입할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준 덕분에 필요한 상품을 필요한 수량만큼 필요한 때에 맞춰서 갖춰놓을 수 있었죠.”
비용 절감을 통한 최저가 판매 전략과 광주‧전남 지역 소비자들의 특성에 맞춘 맞춤형 전략이라는 두 날개를 바탕으로 빅마트는 설립 이후 10여 년 동안 고속 성장의 페달을 밟아나갑니다. 1995년 한 개로 시작한 매장 수는 2006년 17곳까지 불어났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규모가 정점에 달했던 그 해 빅마트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전국구 대형 유통 업체들의 잇따른 광주‧전남 지역 진출에 대응하기 위해 매장 수를 무리하게 늘렸던 게 부메랑이 돼서 돌아왔던 것이죠. 단기간에 매장 수를 급격하게 늘린 탓에 회사가 갖고 있던 현금이 말라버렸고 회사에 경영 위기가 찾아왔죠.
하 대표는 빅마트의 실패 원인으로 무리한 점포 확장과 오너 경영자인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회사 안에 없었던 것을 꼽습니다.
“빅마트 창업 초기만 해도 저와 같이 창업한 경험 많은 멤버들이 회사 안에 여러 명 있어서 제가 오너이긴 해도 중요한 결정을 저 혼자서만 내리지를 못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창업 멤버들이 한, 두 명씩 회사를 떠났고 제가 회사 안에서 유통업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돼버렸죠.
제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더라도 옆에서 바로잡아줄 사람이 없었던 거죠. 이점 역시 빅마트가 위기에 빠지게 된 큰 원인 중의 하나예요.”
결국 빅마트는 2007년 대부분의 매장을 롯데쇼핑에 매각하게 됩니다. 당시 하 대표가 롯데쇼핑 측에 내걸었던 조건은 회사가 인수된 후에도 빅마트에서 일하고 있던 모든 직원의 고용을 보장하고, 그동안 빅마트에 상품을 납품하던 1000여 곳에 달하는 협력업체와의 계약을 3년 동안 유지하는 조건을 걸고 회사를 팔았죠.
“사실 그때 롯데쇼핑보다 더 비싼 값에 회사를 사준다고 했던 대기업이 있었어요. 대신 이곳에 회사를 팔려고 하면 직원들을 정리해고해야만 했어요. 회사를 구조조정한 다음에 매각하면 돈을 더 쳐주겠다는 거였죠.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러지 않았던 건 정말 옳은 판단이었어요.
내가 어려워졌다고 해서 함께 빅마트를 만들어왔던 동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니까요.”
알짜 매장을 모두 넘기고 세 개 지점만 남게 된 빅마트는 그 이후 빠른 쇠락의 길에 접어듭니다. 2010년엔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12년엔 최종적으로 파산에 이르게 됩니다.
하 대표의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시기였습니다. 오랫동안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갔지만 월세 보증금 1000만 원이 없어서 다섯 식구가 살 곳을 구하지 못하는 처지였죠. 다행히도 과거 빅마트에 기름을 납품하던 주유소 사장이 주유소 2층 사무실을 내준 덕분에 가족들과 함께 비바람을 피할 공간은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주유소 2층에서 생활하던 3년의 기간 동안 하 대표는 다시금 뛰어오를 채비를 갖춥니다. 공구상가 유통단지 안에 조그만 사무실도 하나 얻은 그는 앞으로는 어떤 사업을 해나 갈지를 고민합니다.
“매일 같이 공구상가 사무실에 나가 이런저런 사업들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이십 년 동안 유통업에서 일했으니 앞으로도 유통 분야 일을 해야 할 텐데 돈 한 푼 없는 처지에 당장 오프라인 매장을 낼 수는 없잖아요. 앞으로는 유통업도 온라인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을 거고, 우선은 온라인 비즈니스 감각을 익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이 글처럼 경제와 경영에 대해서 쉽고, 재미있게 설명드리는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을 만나보세요. 출간 26일 만에 3쇄를 찍은 베스트셀러 경제 상식책입니다.>
(예스24)
2000억 대 매출을 올리는 유통 업체를 운영했던 그였지만 막상 온라인 사업에 뛰어들려고 하니 제대로 아는 게 없었습니다. 우선 온라인에서는 어떻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지부터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먼저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블로그 운영부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 마케팅에 대한 다섯 권 정도의 책을 읽고 감을 잡은 그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블로그에 글들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유통업의 타깃 고객인 30~40대 주부들을 끌어올릴 수 있는 포스팅을 올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잠재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기 위해서였죠.
아내 정지영 로컬푸드 빅마트 이사와 함께 블로그에 매일 한 편씩 음식과 여행, 지역 맛집에 대해 다루는 글들을 올렸습니다. 정 이사는 사진과 함께 각종 찌개와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멸치볶음과 같은 기본적인 반찬들을 만드는 레시피를 정성 들여 소개했고요.
이런 식으로 몇 달 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며 SNS 마케팅에 대해 공부한 뒤에는 블로그와 카카오스토리 등 SNS 통해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한 대표 부부가 선택한 상품은 김치였는데요.
평범한 제품을 만든 뒤 저렴한 가격을 받고 판매하는 방식으로는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다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프리미엄 전라도 김치’라는 희소성 있는 상품을 개발합니다.
전라도에서 김치를 담글 때 재료로 사용하는 해조류에 많이 들어있는 후코이단이란 성분이 건강에 좋다는 점에 착안해 이를 집중적으로 홍보했죠. 프리미엄 상품임을 내세운 만큼 가격 경쟁에서는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2013년 6월에 카카오스토리를 통해서 처음 상품을 판매했어요. 첫날에 김치 60박스를 택배로 보냈는데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김치 사업을 할 때는 온 가족이 똘똘 뭉쳐서 일했죠. 아내는 레시피를 개발하고, 딸아이는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고, 아들은 누나가 찍은 사진을 보정하는 식으로 일했으니까요. 전형적인 가족기업이었어요.
김치 사업 덕분에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게 됐어요. 아내가 개발한 전복 김치 레시피가 김치축제에서 광주시장상을 받기도 했고, 또 아내의 김치 레시피가 책으로도 나오면서 사업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됐어요.”
김치 사업으로 재도전의 발판을 마련한 하 대표 가족은 2013년 말에 광주 봉선동에 친환경 농식품을 판매하는 오가닉 빅마트를 개업하며 다시 본격적으로 오프라인 유통업에 뛰어듭니다. 빅마트가 파산한 지 1년여 만에 다시 일어선 것이죠. 좌절과 실망에만 젖어 있었다면 이룰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오가닉 빅마트는 현재 광주 지역에 모두 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하 대표는 지난 8월 말에는 로컬푸드 빅마트란 이름으로 광주‧전남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주로 판매하는 로컬푸드 전문점도 열었습니다. 광주 학동에 자리 잡은 200평 규모의 매장인 이곳은 300여 명의 농민들과 계약을 맺고 진열대에 오르는 농산물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오가닉 빅마트를 하면서 직접 농민 생산자들과 만날 일이 많았어요. 대농들이야 경매나 고정 납품처를 통해 생산한 농산품을 대부분 팔 수 있지만 소농들은 항상 판로 때문에 걱정하더라고요.
특히 귀농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도 팔 곳이 없어서 정말 걱정이 크더라고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지역 소농들이 생산한 상품을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광주‧전남 지역은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곳이에요. 이곳에 살겠다고 내려온 귀농인들마저 농산물을 팔지 못 해서 다시 서울로 올라가버리면 지역 자체가 없어져 버릴 수 있잖아요. 소농들도 돕고 지역에 귀농인들도 계속 불러들일 방법을 고민하다가 로컬푸드 매장을 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됐죠 ."
로컬푸드 빅마트 역시 과거 빅마트와 마찬가지로 좋은 제품을 가장 싼 가격에 판매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고 있습니다. 경매 과정을 거치지 않고 농민들이 직접 농산물을 선별해 매장에 진열하도록 함으로써 유통 비용이 ‘제로(0)’가 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딸기면 딸기, 상추면 상추처럼 한 품목당 최대 다섯 명의 농민이 물건을 납품하게 함으로써 서로 간의 경쟁을 통해 더 좋은 농산물이 매장 진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정지영 이사는 “오가닉 빅마트 매장은 좁아서 손님들이 매장 안에서 카트를 사용할 수 없었어요. 그게 손님들한테 제일 미안했는데 이번에 문을 연 매장은 넓어서 카트가 다닐 수 있어서 정말 좋네요”라고 말합니다.
하 대표는 몇 달 전 <다시 일어설 용기만 있다면>이란 제목으로 빅마트의 흥망성쇠를 다룬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는 그가 빅마트를 창업해 빠른 속도로 회사를 키웠던 시절의 경험과 회사가 어려워지며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된 과정,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나 로컬푸드 빅마트를 창업하기까지의 여정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빅마트의 실패 경험을 거울 삼아 다른 창업자들은 저처럼 실패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내게 됐어요. 비록 파산했지만 한때 정규직 직원만 1000명에 달했던 회산데 어떻게 일어 섰고 결국 어떻게 문을 닫게 됐는지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제가 사업이 망하고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던 경험이 실패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다른 분들께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글의 초반부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하 대표는 자신의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예비 창업자와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기 창업자들에게 창업과 회사 운영에 대해 조언해주는 멘토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창업지원네트워크를 만들어 이사장이자 멘토로도 활동하고 있고,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에서도 창업자들에게 창업과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광주 지역 창업 지원 기관들과 함께 손잡고 창업 스쿨도 운영하고, 광주지역 일간지 지면을 통해 청년 창업자들을 세상에 알리는 ‘하상용이 만난 사람’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창업자 열 명 중 아홉 명이 단 한 시간도 창업 교육을 듣지 않고 창업을 한다고 해요. 회사를 창업해서 운영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이렇게 준비 안 된 상태로 창업을 해서는 성공하기가 힘들잖아요. 다른 창업자들은 저처럼 힘든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창업에 대해 교육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하 대표는 창업 스쿨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예비 창업자들이 자신이 구상한 사업 아이템이 부족하다는 사실과 창업에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창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철저하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창업에 나서지 않도록 하는 것도 창업을 지원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합니다.
그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농식품 분야 기업을 창업할 경우에는 먼저 자기 지역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자원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지역의 특성을 잘 살린 창업 아이템일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입니다.
“제가 소개했던 청년 기업인 중에 장흥김과 국내산 참깨로 부각을 만들어서 수십억 원 대 매출을 올리는 창업자가 있어요. 원래 이 분이 부각을 만들어서 판매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기 전에는 다들 그냥 바다에서 김을 키워서 원재료로만 납품했었죠. 그런데 이걸 부각으로 만들어서 파니까 그 부가 가치가 훨씬 커질 수 있었죠.
농촌과 지역에는 이렇게 젊은 창업자의 아이디어가 적용되면 그 가치가 크게 높아질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 많아요. 지방에서 창업을 한다고 하면 이렇게 그 지역 특산물을 어떻게 하면 새로운 상품으로 가공해 판매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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