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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Feb 28. 2020

강한 농식품 기업을 만들어낸 창업자들의 3가지 공통점

네이버FARM판에서 100여명의 기업인을 만나며 알게 된 성공의 비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장편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인데요. 워낙에 유명한 문장이라 소설을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도 어디선가 한, 두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구절입니다.


세계적인 명작 소설의 탄생을 장식한 이 문장은 기업 경영과 비즈니스의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는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담고 있습니다.


“성공한 기업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성공했지만 실패한 기업은 저마다의 이유로 실패했다”는 말로 조금만 바꿔서 읽으면 그 의미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죠.


2017년 1월부터 지금까지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곳 네이버FARM판에서 일하면서 100여 명이 넘는 농식품 기업인들을 만나 인터뷰했고, 그 내용을 글로 정리했는데요. 제가 만난 기업인들의 대부분은 본인이 직접 회사를 창업해서 키워낸 창업자, 오너 CEO들이었습니다.


FARM판에서 일하며 만난 농민/농식품기업인


농식품업계라는 같은 카테고리에 속해있지만 이 회사들은 그 수만큼이나 업종, 규모, 역사가 다양했는데요. 작게는 직접 재배한 쌀을 온라인 직거래로 판매하는 직원 2,3명 규모의 회사도 있었고, 크게는 뒤에 소개드릴 칠갑농산처럼 연 매출 약 700억 원에 500명에 가까운 직원들이 일하는 중견 식품회사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회사의 창업자들을 만나면서 이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나갈 수 있었습니다. 업종과 규모, 비즈니스 모델에 상관없이 성공한 기업과 이 회사를 이끌어 가는 경영자일수록


‘원가 절감을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 ‘강한 상품 브랜드 구축’, ‘끊임없는 기술 개발’, ‘미리 그려놓은 밑그림에 따라 한 단계씩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치밀함’과 같은 사업의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이죠.


어찌 보면 당연하고 뻔한 말 같지만 사실 이처럼 당연한 것을, 멈추지 않고, 제대로 해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요.


“성공한 기업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성공한다”는 말에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막상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던 기본적인 원칙들을 지켜낸 소수의 기업만이 빠르고, 안정적인 성장이라는 결실을 맛볼 수 있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업종과 규모를 넘어서 시장에 탄탄히 자리 잡은 기업들은 모두 비슷한 공통점들을 갖고 있는 거고요.


FARM판에서 일하며 만난 농민/농식품기업인들


이번 글에서는 제가 그동안 만났던 창업자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3명의 사례를 살펴보고, 각각의 창업자로부터 꼭 배워야만 하는 전략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들 3명의 창업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만들어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3가지 비결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은데요.


1. 작고 보잘것없더라도 이름만은 꼭 남겨야 한다. 남과 다른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내 회사의 이름을 남겨두어라.


2. 흐르는 강물에서 가만히 있으면 결국 뒤로 밀려나게 된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만이 기업을 생존하게 한다.


3. 작은 시장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 시장을 키워 크고, 장기적인 이익을 거머쥐어라.


각각의 창업자들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본문에 함께 첨부된 링크 주소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선 이들 3명의 창업자들이 회사를 키워낸 전략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들을 하나씩만 뽑아서 정리해봤습니다.


그럼 먼저 첫 번째 비결인 ‘작고 보잘것없더라도 이름만은 꼭 남겨야 한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 전략의 위력에 대해서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던 건 고화순 하늘농가 대표의 사례를 통해서였습니다.


고화순 하늘농가 대표


이름을 남겨야 산다


경기 남양주시에 자리 잡은 하늘농가는 2018년 기준 연 매출 132억 원에 직원 50여 명이 일하는 식품 가공업체인데요. 식재료를 초·중·고 학교 식당과 기업 구내식당에 납품하는 게 주업인 회사입니다. 


미리 반조리해놓은 나물과 소스를 함께 담아 집에서도 쉽게 나물 요리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나물 HMR(가정간편식) 상품도 판매하는 회사죠.


고화순 대표는 사업을 시작한 지 20여 년 만에 회사를 이 정도 규모로 키워낼 수 있었는데요. 원래 그 시작은 ‘부업’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식자재 납품업체에서 일했던 고 대표는 작은 부업을 시작했는데요.


부모님이 고향에서 농사지은 도라지를 학교 급식장을 돌아다니며 파는 일이었습니다. 중국산 도라지가 수입되며 부모님이 수확한 도라지를 팔 수 있는 곳이 줄어들자 딸인 고화순 대표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건데요.


처음엔 도라지로 시작했지만 학교 급식장들에서 점점 ‘다른 농산물도 구해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면서 고향 마을 이웃들이 수확한 농산물까지 납품하게 됐고 이런 과정을 거쳐 처음엔 부업으로 시작했던 일이 작은 회사가 되어갔습니다.


하늘농가의 나물 가공 모습과 판매하는 상품들


앞서 말했듯 고화순 대표는 사업 초기부터 자기 회사 식자재를 사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고객들의 머릿속에 ‘하늘농가’라는 네 글자를 심어놓는 데 집중했는데요.


고 대표가 사업을 막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의 급식 식재료 납품업계에는 브랜드라는 개념 자체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자기들이 구해온 식재료를 커다란 파란 봉투나 갈색 종이상자에 담아 조리장으로 보냈죠.


고 대표는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브랜드를 갖춘 대형 식품업체들이 식자재를 어떻게 포장하는지를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자기 회사 상품을 포장해 납품하는데 벤치마킹했죠.


회사 브랜드가 잘 드러나도록 포장 용기와 상자를 디자인한 건 물론이고요. 일부 채소는 팩 두부처럼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다음에 윗부분을 비닐로 덮어서 포장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식품박람회인 프랑스 시알 박람회에 참가한 모습


그리고 이렇게 실제로 식재료를 만지는 영양사와 조리사들에게 회사 브랜드를 끊임없이 각인시켰던 노력은 큰 보답을 받았는데요.


몇 년 후 고 대표의 회사는 줄곧 식재료를 납품하던 대형 업체와의 계약이 해지되는 위기에 처합니다. 만약 고 대표의 회사가 다른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브랜드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면 회사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고 대표는 그동안 자신의 상품을 사용하는 고객들의 머릿속에 하늘농가라는 브랜드를 깊이 박아놓는데 성공했고 ‘하늘농가가 보내는 채소와 나물이 신선하고 좋다’는 인식 역시 심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대형 업체와의 계약이 끝난 뒤에도 원래 하늘농가의 식재료가 들어가던 급식장들에 계속해서 식자재를 납품할 수 있었습니다.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하늘농가의 브랜드를 새겨놓기 위한 끝없는 노력이 없었다면 어쩌면 하늘농가라는 회사는 이때 문을 닫았을지도 모릅니다.


박람회에서 상품에 대해 설명하는 고화순 대표


신제품이 없으면 기업은 나아갈 수 없다


제가 성공한 농식품 기업 창업자들을 만나면서 배운 두 번째 비결은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더라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서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자세입니다.


기업 경영과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오는 표현이 ‘블루 오션(Blue Ocean)을 만들라’는 건데요. ‘푸른 바다’라는 뜻의 이 말은 한 기업이 세상에 없던 획기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음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걸 말합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이기 때문에 블루 오션을 만드는 데 성공한 회사는 다른 기업들과 경쟁을 벌일 필요 없이 한동안 그 시장에서 나오는 모든 이익을 거둬들이며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블루 오션도 시간이 지나면 레드 오션(Red Ocean)으로 변하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혁신적인 상품을 내놨다고 하더라도 경쟁자들 역시 기술 개발을 통해서 이와 비슷한 혹은 더 나은 상품을 갖고 그 시장으로 들어오기 때문이죠. 푸른 바다가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핏빛, 붉은 바다로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순리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성장하는 기업의 경영자들은 지금 당장 안정적인 이익을 누리더라도 미래에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신제품을 구상하며 개발하는 일에 항상 신경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박인호 자연터 대표


이 같은 모습은 박인호 자연터 대표의 사례를 통해서 뚜렷하게 배울 수 있었는데요. 그는 국내에 처음으로 알록달록한 색깔의 ‘무지개 방울토마토’를 처음 내놓은 인물입니다.


다니던 식품회사를 그만두고 2003년부터 자기 사업을 시작한 그는 여러 차례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신제품 개발이야말로 기업이 계속해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는데요.


2011년 해외 박람회에서 이스라엘 업체가 갖고 온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보라색의 알록달록한 방울토마토를 보자마자 ‘이거다’라고 생각한 그는 이후 계약을 맺고 이 종자를 한국으로 갖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2년가량 이 토마토를 키우면서 국내 재배 환경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개량한 그는 2014년에 처음으로 무지개 방울토마토를 소비자들에게 선보입니다.


이후 대형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 토마토를 납품하면서 회사 규모를 빠르게 키울 수 있었는데요. 현재는 연 매출 53억여 원에, 직원 20명 규모로 회사를 성장시킵니다.


맨손으로 시작해 이 정도 규모까지 회사를 일궜으면 만족하고 지금 이 상황을 유지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도 있는데요.


무지개 방울토마토와 건조 과일 스낵, 토마토 차 등


하지만 그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상품을 내놓는 데 집중합니다. 국내에 4,5대 밖에 없는 근적외선 건조기를 사들여 토마토와 다른 과일들을 말린 건조 과일 스낵을 내놨고요. 또 이렇게 건조한 토마토를 차로 우려 마실 수 있게 만든 ‘토마토 차’도 내놨습니다. 


토마토와 고기 육수, 여러 양념을 섞어 마든 ‘토마토 라면 육수’도 개발해 프랜차이즈 식당과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있고요.


국내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 시장을 뚫는 일에도 집중하고 있는데요. 2017년 홍콩 수출을 시작으로 매년 토마토를 홍콩, 싱가포르 등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상품을 알리기 위해 2018~2019, 2년 동안 참가한 해외 박람회만 20곳에 달합니다.


해외 박람회에 참가한 박인호 대표


“2014년에 칼라 대추 방울토마토를 처음 선보였을 때만 해도 경쟁자가 없었어요. 이스라엘에서 종자를 갖고 들어와서 3년 동안 국내 환경에 맞게 품종을 개량해서 내놓았던 거라 당장 다른 업체들이 우리 제품과 같은 토마토를 내놓을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몇 년 지나니까 슬슬 다른 업체들에서도 칼라 방울토마토를 내놓더라고요. 최근에는 정말 큰 대형 온실에서도 이런 토마토를 대량으로 키우고 있고요.


아직까지는 저희 제품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편이지만 다른 업체들도 제품을 꾸준하게 내놓고 있으니 이게 언제까지 갈지 장담할 수는 없죠. 그래서 3,4년 전부터 토마토 라면 소스와 건조 과일 스낵, 토마토 차와 같은 신제품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빠르게 흘러가는 강물 속에서 가만히 있으면 결국 뒤로 물러나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죠. 이미 다른 업체들이 속속 컬러 방울토마토를 내놓은 상황에서 회사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신제품을 내놓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입니다.



(지금 이 글에 나온 국내 중소기업 창업자들과 손정의, 앙겔라 메르켈, 빌 게이츠, 레이 달리오, 이나모리 가즈오 등 탁월한 리더와 창업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낸 비결에 대해서 쉽고, 깊이있게 분석한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

예스24

쌀 소비를 늘린 공로로 훈장을 받는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


작은 시장의 1등이 돼봐야 얻을 건 별로 없다


성공한 창업자들에게 배운 세 번째 전략으로는 ‘작은 시장에서 1등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 먼저 시장을 키워라’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전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는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이 자신이 개발한 특허 기술을 경쟁자들도 쓸 수 있게 무료로 공개했던 걸 들 수 있는데요.


칠갑농산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농촌에 있는 작은 상점을 떠올리실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1982년 설립된 이 회사는 연 매출 680억 원, 직원 수 450여 명에 달하는 식품기업입니다.


떡국용 쌀떡부터 시작해서 떡볶이용 떡, 각종 생면과 건면, 수제비, 냉동 만두를 비롯한 식품을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뜨거운 물을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떡국과 쌀국수, 떡볶이 등 간편 조리식품 역시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 제품의 80%는 쌀을 주원료로 하는 쌀 가공식품인데요. 칠갑농산은 국내의 대표적인 쌀 가공식품업체이자 강소 식품기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고향인 충남 청양군에서 처음 서울로 올라온 이능구 회장은 1970년대 중반 자전거 짐칸에 떡국용 쌀떡을 가득 싣고 서울 서교동, 망원동 일대 정육점들에 쌀떡을 납품하는 일로 ‘장사’를 시작했는데요.


이능구 칠갑농산 대표


방앗간에서 쌀떡을 떼다가 파는 일로 시작한 사업이 연 매출 700억 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노력과 도전, 그만큼이나 많았던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능구 회장의 여러 도전들 중에서 제 가슴에 가장 깊숙이 들어왔던 사례는 바로 ‘작은 시장에서 골목대장이 되려 하지 않고 먼저 시장을 키워서 더 거대하고, 장기적인 이익을 거머쥐려 했던’ 결단이었습니다. 이 같은 결정 덕분에 칠갑농산이 오늘날의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이죠.


칠갑농산이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198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떡, 국수 등의 유통기한은 길어도 채 열흘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짧은 유통기한을 늘리지 않고선 칠갑농산을 비롯한 국내 업체들의 쌀 가공식품 판매가 늘어나길 기대할 수 없었는데요. 산지 며칠만 지나도 먹을 수 없게 돼버리는 식품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기는 힘들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떡과 국수 같은 쌀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이능구 회장의 눈이 번쩍 뜨인 건 일본에서였습니다. 1980년대 중반 그는 정부 지원을 받아 국내 쌀 가공업체 임직원들과 함께 일본 식품회사들을 찾아가는데요.


이곳에서 일본 회사들이 만드는 쌀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은 세 달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똑같이 쌀로 만든 식품인데 유통기한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던 거죠.


칠갑농산에서 판매하는 식품들


이능구 회장은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식품 전문가들을 찾아다니고 직접 관련 연구 문헌들을 뒤적이면서 일본 업체들이 만든 쌀 가공식품이 몇 달 동안 상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는데요. 그런 과정을 통해 일본에서는 술의 원료인 주정을 활용해 식품을 살균 처리해 유통기한을 늘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간신히 주정을 수입하긴 했는데 막상 갖고 오니까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몇 달 동안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주정을 분무기에 넣어서 제품에 뿌려도 보고, 제품 반죽에 넣어보기도 하고, 완성된 제품을 주정에 살짝 담갔다 빼기도 하면서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를 직접 배워나가는 수밖에 없었어요.”


여러 시도와 실패 끝에 이능구 회장은 주정침지법을 개발하는데요. 이 방법은 식품의 겉면을 주정으로 코팅함으로써 살균 효과를 얻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주정침지법을 통해 이능구 회장은 쌀떡, 수제비, 국수, 냉면, 칼국수 면 등 쌀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을 방부제를 활용하지 않고도 3~5개월까지 늘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냉면 면과 반건조 국수면의 유통기한은 하루에서 수개월로 늘어났습니다. 덕분에 칠갑농산은 경기 파주 공장과 가까운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으로 판매망을 넓혀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영주 칠갑농산 대표와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


그리고 얼마 뒤 이능구 회장은 한 가지 결단을 내리는데요. 주정침지법 기술을 다른 식품업체들도 무상으로 쓸 수 있게 한 것이죠. 주정침지법 특허의 소유권을 식품 관련 협회에 넘겼습니다. 자신이 공들여 개발한 특허를 경쟁자들에게 제공한 거였죠.


“주정침지법 특허를 저희 회사만 계속 사용한다면 칠갑농산 혼자 돈을 잘 벌 수는 있었겠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은 한계가 있어요. 그 당시 소비자들의 머릿속에는 ‘쌀로 만든 식품은 며칠 지나면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박혀있었죠. 사람들이 다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쌀 가공식품을 팔아야 얼마나 팔겠어요. 아주 작은 시장이죠.


제가 갖고 있는 특허를 풀어야 다른 업체들도 유통기한이 오래가는 상품을 만들 수 있고 그래야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시장도 훨씬 커질 수 있죠. 좁은 시장에서 혼자 1등을 하는 것보다 일단 시장을 넓히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회사는 기술력이 있으니까 넓어진 시장에서도 계속해서 앞서 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고요"


이능구 회장의 예상대로 주정침지법 기술이 보급되면서 쌀 가공식품 시장은 물론 식품업계 전체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유통기한을 크게 늘릴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덕분에 쌀 가공식품 시장의 규모도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요. 시장이 커지면서 선두 기업인 칠갑농산의 매출과 이익도 늘어났죠.


해외에 수출된 칠갑농산 상품들


이번 글에서는 제가 그동안 이곳 FARM판에서 일하며 만났던 여러 농식품기업 창업자들 중에서도 저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 분들의 사례와 이분들이 회사를 위기로부터 지켜내고 급성장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전략들에 대해서 살펴봤는데요.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작고 보잘것없더라도 이름만은 꼭 남겨야 한다. 남과 다른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내 회사의 이름을 남겨두어라.



2. 흐르는 강물에서 가만히 있으면 결국 뒤로 밀려나게 된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만이 기업을 생존하게 한다.



3. 작은 시장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 시장을 키워 크고, 장기적인 이익을 거머쥐어라.


팜판에서 취재하며 만났던 농식품 기업인



이번 글에서 소개해드린 분들 말고도 이처럼 저희 FARM판 독자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략을 나눠주실 수 있는 기업인 분들은 여러 명이 더 계시는데요.


앞으로도 이처럼 저와 저희 FARM판 동료들이 전국 곳곳을 누비며 만난 농식품 기업인들의 성공 비결에 대해서 쉽고, 깊이 있게 설명드리는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시작한 창업한 창업자들을 성공으로 이끈 비결에 대해서 꾸준히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지금 이 글에서 소개한 국내 농식품 기업 창업자들의 전략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과 손정의, 앙겔라 메르켈, 빌 게이츠, 레이 달리오 등 23명의 탁월한 리더들이 자신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낸 비결은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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