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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Jul 04. 2020

내가 검도에서 배운 5가지 창작의 원칙

나의 칼에는 엄격하고 상대의 칼에는 관대하라

1. 망설이지 마라    


검도를 처음 배우게 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다. 칠지 말지 고민하지 말고 일단 치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과감하게 치고 들어가라는 말이다. 망설임은 결국 패배를 부르고 패배는 후회만 남긴다.     


자신의 망설임과 유약함을 신중함이라는 말로 꾸미려 하지 말아라.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일단 움직여야 한다. 당신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생각인지, 아니면 시시껄렁한 잡생각에 불과한지는 결국 세상에 내놔봐야 알 수 있다.      


오늘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내일이 달라져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약간은 정신병 초기와 비슷한 증상이다. 첫 문장도 쓰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며 글이 완성되길 바라는 건 더욱 심한 증상이다.  

   


2. 검도는 직선의 스포츠다    


검도에 없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후퇴와 회피다. 상대의 칼 앞에서 뒷걸음질 치거나 상대의 칼을 피하려고만 하는 건 패배로 가는 아주 확실한 지름길이다. 검도에는 오로지 전진만 있다.     


검도는 직선의 스포츠다. 정면으로 마주한 상대를 향해 최단 거리인 일직선으로 뛰어든다. 설령 칼이 빗나갔다고 하더라도 죽도의 코등이(손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칼받침)를 상대의 호면 쇠창살 안으로 박아 넣는다는 기세로 상대를 밀어붙여야 한다.     

    


애매모호하게 빙빙 돌려 말하지 말라.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라. 본인조차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글이라면 그건 글이 아니다. 단어의 덩어리일 뿐이다.

     

빗겨맞는 건 맞춘 게 아니다. 검도에선 상대를 정확하게 타격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면 점수로 인정되지 않는다. 애매모호하게 말해도 독자가 알아서 이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오만이다.  

   


3. 나의 칼에는 엄격하고 상대의 칼에는 관대하라


“내가 맞았을 때는 빗겨 맞았다고 하더라도 점수를 잃은 것처럼 여기고 내가 때릴 때는 정확히 타격하지 못했으면 맞혔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삼류는 문장을 그대로 베끼고, 일류는 작품의 스타일과 주제의식을 배운다.     


모든 위대한 작가는 뛰어난 ‘모방가’다. 위대한 창작자가 되고 싶다면 먼저 타인의 수많은 작품을 읽고, 배워야만 한다. 양적 축적 없이 질적 전환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위대한 작가의 뛰어난 작품에서 배우라. 그 작품 속 무엇이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그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는지, 그 작품의 어떤 점이 수십 년이 지나도 작품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지를 샅샅이 찾아내서 남김없이 배우라.     



타인의 작품을 볼 때는 관대해져라. 비록 부족한 점이 있을지라도 단점보다는 강점을 보라. 당신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작품을 깎아내리고만 싶어 하는 삐딱한 삼류 비평가가 아니다. 위대한 창작자가 되고 싶다면 타인의 작품에 관대해져라.     


대련에서 상대가 나를 때렸을 땐 감사해야 한다. 비록 정확히 맞추지 못하고 빗겨맞았다고 하더라도 상대의 죽도가 나를 쳤을 땐 점수를 잃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내게 빈틈이 있어서 상대에게 공격을 허용한 거니까. 나의 부족함을 가르쳐준 상대에게 감사해야 한다.     


타인의 칼에 관대하지 못하고 남을 깎아내리려만 하는 자는 절대 뛰어난 검객이 될 수 없다.

나의 칼에 엄격하지 못하고 작은 장점만을 내세우려 하는 자 역시 마찬가지다.     



4. 무작정 휘두른다고 누구나 다 검객이 되는 건 아니다      


검도는 섬세한 스포츠다. 그저 칼만 휘두른다고 검객이 되는 건 아니다.     

 

뒤로 한발 물러선 왼쪽 종아리 뒤편 근육의 팽팽함에서 시작된 추진력이 왼쪽 엄지발가락으로 전해진 뒤 다시 오른쪽 다리로 건네지고 오른쪽 발바닥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칼이 상대를 내리치면서 타격이 극대화된다.   

   

하체뿐 아니라 팔과 어깨, 손목 모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정해진 대로 움직여야만 죽도에 힘이 실린다. 여러 신체 부위 중 한 군데서만 삐끗하더라도 그저 대나무 다발로 한 대 갈기는 것에 불과하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잘못 알려졌다. 이 개념은 말콤 글래드웰이 자신의 책 <아웃라이어>에서 소개해 유명해졌지만 그는 ‘1만 시간의 법칙’ 개념을 완전히 잘못 이해했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말콤 글래드웰에게 자신의 연구 성과에 대해 알려줘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개념이 나올 수 있도록 한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슨 박사의 말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잘못 받아들여진 자신의 연구 성과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나중에 <1만 시간의 재발견>이란 책까지 냈다.


안데르스 에릭슨이 말하는 핵심은 이거다. '연습을 통해 무엇을 개선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연습을 해봤자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확한 원리를 파악한 뒤 연습을 통해 부족한 점을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목표가 없는 이상 아무리 많은 연습을 해봤자 무의미한 반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숙달과 향상은 다르다는 건 알고 있는가?


검리(劍理·검의 이치)를 모른 채 죽도만 휘두른다고 고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창작 역시 마찬가지다. 올바른 문장에 대한 이해와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없다면, 자신이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생각이 없다면 아무리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눌러댄다 해봤자 그건 그저 손가락 운동에 불과할 뿐이다.



5. 상대의 칼끝이 움직일 때마다 매번 따라 움직이면 얻어맞기만 한다


고수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정중동(靜中動), 고요한 정적 속에 수많은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담겨 있다.      


대련을 하면 상대의 얼굴은 호면(검도할 때 머리에 쓰는 보호구) 쇠창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건 거라곤 오직 상대의 눈빛과 나를 향해 있는 그의 칼끝뿐이다. 표정을 읽을 수 없으니 칼끝만이 그의 의도를 짐작하게 해 줄 뿐이다.     


하수는 상대의 칼끝이 움직일 때마다 몸을 요동친다. 상대가 칼끝을 1㎝만 옮겨도 그 열 배, 스무 배 몸을 움직이며 대응한다. 상대가 칼을 들어 올리려는 시늉만 해도 덩달아 머리 끝까지 칼을 치켜든다.     


이렇게 했다간 상대의 페이크에 말려들어 머리, 손목, 허리를 연달아 얻어맞고 시합을 내줄 수밖에 없다.     


자기 실력에 대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가벼운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말에 일일이 다 신경 쓰려하다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어떤 일도 시작할 수 없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분명 바람직한 태도다. 하지만 상대의 말이 귀담아들을 만한 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능력이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능력, 특히 창작자라면 꼭 갖춰야만 하는 자질이다.
    

내가 만든 작품에 대해 자신이 있다면 일단 밀고 나가라, 이기고 지는 건 결국 시합이 끝나 봐야 한다. 사람들은 당신이 누군지, 당신이 얼마나 연습해왔는지를 알지 못한다. 결과로 보여주기 전까지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은 없다.

      

시합 중간중간 상대가 보이는 모든 동작에 일일이 반응하려 하다간 상대의 의도에 휘말려 공격 한 번 하지 못한 채 두드려 맞고 시합을 내주고 만다. 그러려고 시합에 나간 건 아니지 않는가.


먼저 자신을 믿고, 자신의 판단대로 밀고 나가라.     


상대가 칼을 들 때마다 움찔움찔하며 몸을 움직이지 말라.


정중동의 자세로 자신의 판단을 믿고, 밀고 나가라.


나의 승부는 내가 결정짓는다.


홍선표

rickeygo@naver.com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 <리치 파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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