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2년차 빌 게이츠가 글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만들어낸 비결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 완벽한 사례는 빌 게이츠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스물한 살이던 1976년에 쓴 A4용지 한 장 남짓한 짤막한 글은 그를 단숨에 미국 IT업계의 유명인사로 만들어줬다. 글을 통해 자신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던 큰 장애물을 치워버릴 수 있었던 건 유명세보다도 더 큰 성과였다.
1976년,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자리 잡은 한 작은 사무실. 1년 전 하버드대학교를 휴학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는 솟구치는 화를 간신히 눌러가며 타자기 자판을 눌러대고 있었다. 화를 참고 최대한 냉철하게 쓰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문장들 곳곳에선 강한 분노가 터져 나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당신들이 하는 일은 절도입니다.”
얼마 뒤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이 편지의 수신인은 미국 전역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이용자들이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고 있는 자들, 불법 복제 이용자들을 향해 쓴 편지다.
빌 게이츠는 이 편지에서 컴퓨터 애호가란 이들이 오히려 컴퓨터 산업을 뿌리부터 말려 죽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신과 동료들이 1년여 동안 4만 달러의 비용을 투입해 만든 ‘알테어 베이직’ 소프트웨어가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90% 이상의 사용자가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제해 사용한 덕분에 회사는 오히려 손해를 보고 말았다고 말한다.
“여러분은 좋은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누가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전문적인 일을 하겠습니까? 취미 생활자들 중에 혼자서 3년 동안 죽어라 프로그래밍을 하고 버그 소탕과 문서화 작업을 마친 후에 그것을 무료로 배포할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우리 말고는 취미용 소프트웨어에 많은 투자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은 아직 개인용 컴퓨터(PC·Personal computer)가 등장하기도 전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집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컴퓨터 사용이 괴짜들의 취미 생활로만 여겨지던 시기였다.
빌 게이츠가 컴퓨터 사용자들을 ‘컴퓨터 취미 생활자’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컴퓨터 사용이 취미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시절 사람들에게 소프트웨어를 팔아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낯설 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같은 취미를 가진 동호회 회원들끼리 이런저런 자료를 공짜로 공유하듯, 소프트웨어 역시 무료로 나눠 갖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시절이다.
빌 게이츠는 이런 통념과 관행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글을 썼다. 소프트웨어 역시 누군가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만든 상품이고, 소프트웨어를 무단으로 복제해 사용하는 건 다른 이의 재산을 강탈하는 범죄 행위임을 지적했다. 지적 재산으로써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처음으로 선언한 글이었다.
“알테어 베이직을 재판매(불법 복제한 소트웨어를 싼값에 판매하는 행위를 가리킴)하는 사람들은 뭡니까? 그들은 취미용 소프트웨어로 돈을 벌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신고가 들어온 사람들은 결국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들은 취미 생활자의 이름을 더럽히는 사람들이고, 모든 모임에서 제명당해 마땅합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제품을 불법으로 복제해 판매한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동시에 이용자들도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잘못된 관행을 이제는 그만둬야 한다고 설득한다.
“저는 프로그래머 열 명을 고용하고,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취미 시장에 맘껏 공급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남긴 말이다. 훗날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가 되는 사람의 꿈 치고는 지나치게 소박하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는 이 공개 편지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소를 공개하며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거나 제안사항 또는 의견이 있는 사람은 편지를 보내달라’고 말한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어떤 반대 의견이든 상대해주겠다는 뜻이다.
빌 게이츠는 <손자병법>의 열렬한 애독자로 유명하다.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은 손자병법”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손자병법>을 통독하고 여기서 배운 전략과 지혜를 통해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된 그에겐 ‘병법(兵法)의 대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손자병법>의 핵심 메시지는 ‘먼저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어 놓고 싸움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불리한 조건에서 싸운다면 적을 이길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힘겹게 승리를 얻는다 하더라도 피해만 막심할 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손자병법> 제6편 허실 편에 나오는 다음 문장이 이 사실을 잘 말해준다.
“무릇 먼저 전쟁터에 터를 잡고 적을 기다리는 자는 여유가 있고, (적보다) 늦게 전쟁터에 터를 잡고 전투에 달려 나가는 자는 피로하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을 끌어들이지, 적에게 끌려가지 않는다.”
로마 최고의 장군이자 정치가, 전략가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책 <갈리아 전기>에서 “로마군은 불리한 지형으로 진격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워런 버핏은 “나쁜 공에는 스윙하지 않고 걸어나가라”라는 말로 같은 뜻을 표현했다.
전쟁이든, 사업이든 일을 시작하기 전 먼저 자기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놓고 시작하는 건 최고의 전략가들의 공통점이다.
빌 게이츠는 앞서 설명한 공개 편지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사람들이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제해 사용하는 걸 당연히 여기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봤자 돈을 벌 수 없다. 알테어 베이직이든 윈도우든 엑셀이든 어떤 제품을 내놓든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를 팔아 돈을 벌고 싶다면, 회사를 급성장시키고 싶다면 먼저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과 관행을 바꿔야만 한다.
스물한 살의 젊은 빌 게이츠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가 범죄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지적함으로써 소프트웨어의 지적 재산권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에 불을 지폈다.
논쟁의 장을 만든 뒤 적과 싸우는 검투사처럼 반대자들과 맞서 싸우며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냈고,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했다.
글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도록 해주는 최고의 전략적 무기라는 사실을 빌 게이츠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워낸 그는 이후
<빌 게이츠@생각의 속도>, <미래로 가는 길>, <게이츠가 게이츠에게>에게 등 여러 권의 책을 내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함께 동참하기를 사람들에게 설득했다.
회사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난 지금도 그는 매일 같이 SNS 플랫폼 링크드인에 글을 올린다. 그가 아내 멜린다 게이츠와 함께 운영하는 자선단체인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활동과 성과에 대해서 설명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1976년 공개 편지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설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전 세계의 가난, 질별, 차별에 맞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함께해줄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있다.
최고의 리더에게 글쓰기는 목표를 제시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최고의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