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를 찾아보기 위해 미국 네브래스카주에 있는 오마하로 떠나보자. 이곳은 동쪽으로 미주리강을 끼고 있는 인구 40만여 명의 중소 도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가축 거래 시장이 있는 축산·정육업의 중심지이며 해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양의 곡류가 거래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철도 교통망이 가장 발달한 도시라는 이점이 오마하를 농축산물 거래 중심지로 키워냈다.
하지만 만약 지금 소개할 이 사람이 없었다면 이 도시는 오늘날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알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특히 전 세계 투자업계 종사자들의 머릿속에 오마하란 이름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건 이 한 사람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인물은 바로 ‘오마하의 현인’(Oracle of Omaha) 워런 버핏이다. 1930년 오마하에서 태어난 그는 9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이곳에 살면서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 본사로 직접 차를 몰고 출퇴근하고 있다.
재테크에 전혀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워런 버핏이란 이름을 모를 수는 없다. 인류 역사상 투자로 가장 큰돈을 번 인물이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포브스 발표) 그는 675억 달러(약 80조 원)의 재산을 갖고 있는 세계에서 네 번째 가는 부자다.
한때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부자 자리에 오르기도 했었다.
그에게 ‘오마하의 현인’이란 별칭이 붙은 건 그저 투자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누구나 현명한 사람으로 불리는 건 아니다. 그는 천문학적인 재산 규모만큼이나 엄청난 액수의 기부와 사회 환원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얻었다.
그가 2019년까지 기부한 금액을 모두 합하면 340억 달러(약 39조 2800억 원)에 달한다.
그가 매년 직접 주주들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세계 최고의 갑부인 워런 버핏이지만 그의 평소 생활을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는 스물여덟 살이던 1958년에 3만 1500달러(약 3700만 원)를 주고 산 집에서 여전히 생활하며 요금 12달러의 이발소를 찾아 이발을 한다. 좋아하는 음식은 20달러짜리 스테이크이며 아침은 출근길에 맥도널드 드라이브 스루에 들려서 산 맥머핀으로 해결한다.
“주식 시장이 좋을 땐 베이컨과 달걀, 그리고 치즈 비스킷이 들어간 3.17달러짜리 세트를 먹고 보통이면 2.95달러짜리를 그리고 일이 그다지 잘 돼가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땐 소시지 패티 두 장이 들어간 2.61달러짜리 메뉴를 먹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부를 일궜지만 언제나 검소하게 생활하고, 그러면서도 남을 위해 돈을 기부하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 이 유쾌한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세계 최고의 투자자에게는 1979년부터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매년 빠뜨리지 않고 치르는 그만의 의식이 있다. 매년 초가 되면 그는 며칠간 일상적인 업무를 멈추고 한 가지 일에만 생각을 집중한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들에게 보낼 편지, 주주서한을 쓰는 일이다.
종이봉투에 고이 담아 보내던 편지에서 이메일로 그 전달 방식은 달라졌지만 주주서한 작성을 앞두고 며칠간 이 일에만 전념하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전 세계의 언론과 투자자, 기업인, 경제 부처 관료들은 매년 워런 버핏의 주주서한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큰 관심을 갖고 기다린다. 천재 투자자이자 400여 개의 계열사, 39만여 명의 직원들을 이끌고 있는 거대 기업의 회장이 그 해의 경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생생히 나와 있는 글이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전 세계 주식시장에 투자한 금액은 200조 원이 넘는다. 때로는 현금성 자산으로 150조 원을 들고 있을 때도 있다. 워런 버핏이 지금의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따라 이 돈이 어느 나라의 어떤 기업에게 흘러갈지가 결정되는 거니 그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대체 주주서한이 내용의 글이길래 워런 버핏 같은 세계 최고의 부자가 그들의 금쪽같은 시간을 문장 하나하나를 쓰고, 고치는 데 들이는 걸까?
좋은 주주서한이 갖춰야 하는 3가지 조건
주주서한은 회사의 최고 경영자(CEO)가 다른 임직원들을 대표해서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말한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가 아니고선 매년 초에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지난 한 해 회사가 어떤 실적을 거뒀는지 돌아보고 새롭게 시작된 한 해에는 어떤 계획으로 어떻게 회사를 운영해나갈지, 그리고 이를 통해 회사는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지 설명하는 내용을 담는다.
과거에 대한 평가, 현재 회사가 처한 상황에 대한 분석, 미래에 달성할 목표 제시 이 세 가지야말로 좋은 주주서한이 꼭 갖춰야 하는 조건들이다.
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는 회사의 주인이다. 주주들에 의해 임명된 최고 경영자가 지금까지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설명하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워런 버핏은 단순히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귀찮은 마음을 억누르며 주주서한을 쓰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부하 직원이 써준 문서에 사인만 하면 되지 몇 날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면서 직접 글을 쓰고 문장을 가다듬을 필요가 없다.
최고의 리더들이 여러 어려움과 번거로움을 무릅쓰고서라도 스스로 글을 쓰는 건 글을 쓰는 행동 그 자체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도록 하며, 목표를 뚜렷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란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발판을 만드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계획을 짜는 최고의 전략적 행동이란 말이다. 왜 그럴까?
글쓰기가 최고의 전략적 무기인 까닭은
전략의 기본은 현재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데서 시작되며 글쓰기이야말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전략적 무기이기 때문이다.
전략에 대해서 말하면서 <손자병법>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중국 춘추시대에 쓰인 <손자병법>은 동서고금을 꿰뚫는 최고의 전략서로 꼽히는 책이다.
빌 게이츠, 손정의, 마크 저커버그 같은 오늘날의 기업인들은 <손자병법>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고 말하니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6000여 자의 한자로 쓰인 <손자병법>의 핵심은 대부분이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지피지기 백전불태’에 담겨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문장이다.
전략을 짜고, 목표를 세우기 전에 먼저 나는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고 나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경쟁자의 상황과 장단점을 분석해야만 어떤 싸움에서도 일방적으로 몰리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일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손자병법>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문제 해결의 기본’이라고 강조하는 건 현대에 등장한 걸출한 경영 사상가·전략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든 ‘경쟁 우위’ 개념을 처음 만들어낸 마이클 포터든, 한때 세상을 휩쓴 ‘블루오션 전략’이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강조하는 건 먼저 나에 대해서 정확히 알라는 것이다.
내가 누구고 어디에 서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서울에 있는지, 전주에 있는지 아니면 울산에 있는지 모르면서 부산으로 갈 방법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먼저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글쓰기가 가장 효과적인 전략적 도구인 이유, 그리고 제프 베조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세계 최고의 전략가들이 모두들 자신의 글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 현실을 분석하고, 문제 해결과 목표 달성에 적용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뛰어들기 전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글쓰기를 통해서 마칠 수 있다.
(이 글은 올해 하반기 출간 예정인 홍선표 작가의 <최고의 리더는 왜 쓰는가>(가제)에 담길 원고의 일부 내용을 편집해 올린 글입니다. 이 브런치를 구독하시거나 아래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지금 이 글처럼 책이 담길 내용을 먼저 접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워런 버핏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1999년은 이 투자의 대가에게 잔혹한 한 해였다. 그가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끌기 시작한 1969년 이후 30년 동안 최악의 실적을 거둔 한 해였다.
버핏 스스로도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1999년도의 실적이 얼마나 저조한지는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절대적인 수치상으로도 작년의 실적은 제가 취임한 이래 사상 최악의 수준이었으며, S&P지수와 비교한 상대적인 측면에서도 최악의 측면이었습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니 말이다.
물론 워런 버핏 같은 인물들도 때로는 큰 손실을 본다.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가 있는 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와 같은 거대한 위기 앞에서는 작아질 수밖에 없는 건 투자의 대가들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태풍이 불어닥치면 아무리 큰 우산을 들고 있더라도 비에 젖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1999년은 달랐다. 이때 버핏과 버크셔 해서웨이가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건 시장이 흔들렸기 때문이 아니다. 시장은 좋았다. 1998년과 1999년은 미국 IT(정보통신) 기업들의 주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으며 시장에는 낙관적 전망이, 투자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한 해였다. ‘닷컴 버블’의 시기였다.
모두가 행복하던 이때 오직 버핏만이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던 건 그가 시장의 흐름에 올라타는 걸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껏 돈 한 푼 벌지 못했고 앞으로도 제대로 돈 벌 가능성이 없는 IT 기업들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등하는 건 시장이 광기에 휩싸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이동통신, 정보통신 기술 회사 등 IT기업에 투자하지 않았던 이유다. 덕분에 그는 그때까지 본 적이 없던 최악의 실적과 마주해야만 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실적 자체도 나빴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IT 기업들의 주가가 높이 끌어올린 주식시장의 평균적 수익률과 비교한 상대 수익률도 최악이었던 해였다.
물론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잘 알고 있다. 버핏이 1999년의 성과에 대해 설명하는 주주서한을 쓰고 있던 2000년 3월에 정점을 찍었던 닷컴 버블은 부풀어올랐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버블 붕괴 1년 만에 미국 IT 기업들이 주로 상장돼 있는 나스닥의 지수는 50% 넘게 떨어졌고, 2004년 10월엔 2008년 3월보다 78%가 떨어졌다. 4년여 만에 주가가 5분의 1로 쪼그라든 것이다.
하지만 워런 버핏이 주주서한을 쓰던 그 순간까지 이처럼 IT기업들의 주가가 바닥까지 떨어져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저 지하 깊숙한 곳까지 뚫고 내려 갈 거라고 예상했던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버핏 역시 언젠가는 IT기업들의 주가가 떨어질 거란 걸 예상하긴 했겠지만 그 충격의 폭과 깊이가 이 정도로 넓고, 깊을 줄은 예상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모든 책임은 여러분의 회장인 저에게 있습니다
버핏은 1999년에 기록한 저조한 실적의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신이 IT 기업에 투자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이 늘어놓거나 IT 기업들의 주가가 곧 급락할 거라는 예상을 쏟아내지 않는다.
대신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자신이 투자한 회사들이 실망스러운 성적을 냈던 이유를 분석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최고의 리더는 남을 비난, 조롱, 저주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과 조직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글을 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고 해서 자신이 더 강해지지는 않는다. 만약 누군가를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면하려 하거나 자신을 높이려는 리더가 있다면 그는 조직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나쁜 리더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클루소 형사마저도 밝혀낼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여러분의 회장이지요. 제가 거둔 실적을 보고 있노라면 F 학점 4개와 D 학점 1개가 있는 성적표를 받은 쿼터백이 생각납니다.”
버핏은 주주서한의 앞부분에서부터 지난 한 해 회사가 거둔 불만족스러운 실적의 책임이 모두 자신에게 있다고 확실하게 말한다. 약간의 유머를 곁들여서 말이다. 이후 그는 회사의 실적이 최악이었던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하나씩 짚어나간다.
“우리의 대부분의 돈을 투자하고 있는 몇몇 기업들이 작년에 심각하게 시장에서 뒤처졌습니다. 그들의 영업 실적이 실망스러운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회사들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많은 돈을 투자하는 데 불만이 없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그들이 고전하면서 우리의 실적에 피해를 입힌 것은 사실이지요. 빠른 시간 안에 원상회복할 수 있을지 아직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제너릴 리, 게이코 등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력 계열사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제대로 된 실적을 거두지 못한 탓에 회사 실적이 최악으로 치닫게 됐다는 설명도 이어진다. 저조한 성과의 원인에 대해 숨기지 않고 설명하고 있다.
버핏의 글을 보면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 리더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 사례와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기를 불러온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 정확하게 분석해 구성원들과 공유한다.
그리고 그다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추진해야 하는 목표와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뒤 목표를 제시한다
“우리의 목표는 현재 사업을 잘 운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탁월한 경영자들 덕분에 이 과제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또 다른 목표는 이미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에 비견할 만한 훌륭한 경영자를 더 많이 확보하고, 경제적으로 특색 있는 회사를 인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1999년에 조던스 퍼니처를 인수하고 미드아메리칸 에너지의 대부분을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버핏은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고 의기소침해 있을 주주들에게 앞으로 자신이 어디에 초점을 맞춰 회사를 경영해 나갈지를 명확하게 가리킨다. 우수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인수해 회사를 더 강하게 만들겠다고 말하면서 이미 지난 한 해동안 이를 위해 두 건의 기업 인수를 성사시켰음을 강조하고 있다.
“제 순자산의 99% 이상은 버크셔 주식입니다. 저나 제 아내는 버크셔 주식을 단 한주도 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표가 부도가 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주식을 팔 생각은 없습니다.”
자기 순자산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가 떨어지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건 버핏 자신인만큼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회사 실적을 올리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할 테니 자신을 믿고 안심하라는 말을 “앞으로도 주식을 팔 생각은 없습니다”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버핏의 2000년 주주서한을 읽으면 글쓰기가 왜 리더에게 최고의 전략적 무기가 될 수 있는 지를 잘 알 수 있다. 지금껏 살펴봤듯이 버핏은 글쓰기를 통해서 현재 상황에 대한 분석과 문제 해결을 위한 목표 제시라는 성공하는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꼭 필요한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달성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최악의 실적을 거둔 이유를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어디에 더 힘을 실어야 하는지를 글쓰기를 통해 정리했다. 리더로서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동시에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점을 알림으로써 사람들의 불안감을 잠재웠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2000년 주주 서한의 마지막 부분에서 버핏은 살아있는 사례를 통해 버크셔 해세웨이가 앞으로로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는 걸 주주들에게 확인시킨다.
사례는 이론보다 강하다
사례는 그 어떤 이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버핏이기에 회사의 재무제표를 가리키며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대신 버크셔 해세웨이의 한 계열사를 이끌고 있는 몰몬교 CEO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한다.
이 계열사는 유타 주에서 가장 시장 점유율이 높은 가정용 가구 회사인 R.C 윌리다. 버크셔 해세웨이가 1995년 인수한 이 기업은 회사 임직원 대부분이 몰몬교인 회사다. 기독교의 일파인 몰몬교는 일요일은 신에게 바치는 성스러운 날이라고 여겨 일요일에 일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직원 대부분이 몰몬교인 회사인 만큼 R.C 윌리는 창립 이후 단 한 번도 일요일에 매장 문을 열지 않았다.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일요일에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건 심각한 약점이었지만 이 회사는 1999년 매출이 3억 4200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탄탄하게 성장했다.
1999년 이 회사는 유타 주를 벗어나 아이다호 주 보이지에 신규 매장을 연다. 유타 주는 미국에서 몰몬교 신자들의 수가 가장 많은 주라 일요일 폐점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이익을 올릴 수 있었지만 다른 주에서도 이 같은 방식이 통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때 R.C 윌리의 CEO인 빌 차일드는 워런 버핏에게 회사 구성원들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아이다호 주에 연 매장이 제대로 수익을 거두지 못한다면 그 손해액은 모두 자신의 돈으로 메우겠다고 말한다.
버핏이 “제의는 고맙지만 회사란 잘 나갈 때가 있으면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라고 말하며 만류할 때도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다행히 1999년 8월 문을 연 이 매장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워런 버핏은 빌 차일드에게 성공에 대한 보상을 주려했지만 그는 어떤 보상도 받지 않으려 한다. 손해는 모두 자기 자신이 감당하려 마음먹었으면서도 성공에 대한 보수는 받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공기업에서도 경영자가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빌 차일드 같은 사람과 파트너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탭 댄스를 춥니다. 여러분도 그런 제 심정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일한다는 게 신나서 아침마다 탭 댄스를 추게 만들 정도로 훌륭한 CEO, 빌 차일드처럼 존경할 수 있는 수많은 경영자들이 우리 버크셔 해세웨이 계열사들을 이끌고 있고 그런 만큼 회사의 미래를 밝다는 말이다. 최고의 리더는 이론이 아닌 이야기로 사람들을 설득한다.
버크셔 해세웨이가 역대 최악의 실적을 거둔 직후에 쓴 버핏의 2000년 주주서한을 최고라 말하 수 있는 건 잘못에 대한 책임 인정, 현재 상황에 대한 냉철한 분석, 문제 해결을 위한 목표 제시, 살아있는 사례를 통한 설득이라는 리더의 글이 갖춰야 하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 저자
rickeygo@naver.com
(이 글은 올해 하반기 출간 예정인 홍선표 작가의 <최고의 리더는 왜 쓰는가>(가제)에 담길 원고의 일부 내용을 편집해 올린 글입니다. 이 브런치를 구독하시거나 아래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지금 이 글과 같은 글을 계속해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