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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Sep 15. 2020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연설에서 '거짓말'을 한 이유

연설문을 대신 써달라는 부탁을 퇴짜 맞은 잡스가 늦은 밤 홀로 쓴 연설문

글쓰기는 어렵다. 누구나 쉽게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평생을 글을 써서 먹고 살아온 베테랑 작가에게도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새하얀 워드프로세서 화면을 바라보며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은 막막함을 느끼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소개할 이 인물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시가 총액을 자랑하는 회사의 창업자인 그에게도 글쓰기는 어렵기만 한 일이었다. 


글쓰기가 너무 어려워 평소 알고 지내던 유명 작가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던 그는 결국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막막한 마음을 안고 책상 앞에 앉아 홀로 키보드를 누르며 글을 쓰고 지우는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런 고생 끝에 탄생한 이 글은 역대 최고의 대학교 졸업 연설로 불리게 됐다. 


아마 당신도 유튜브나 포털사이트에서 한 번쯤은 접해 봤을 연설문이다. 글의 내용 전부를 알지는 못해도 연설을 마무리했던 다음 한 문장은 분명 들어봤을 거라 생각한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다. 


그가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연설할 연설문을 쓰기 위해 겪었던 과정을 살펴보면 글쓰기가 그와 같은 최고의 리더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이토록이나 어려운 일에 도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초 그는 스탠퍼드대학교 측으로부터 6월에 있을 졸업식에서 연설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원래 그는 애플의 제품을 소개하는 발표 자리가 아니고선 무대에 서는 경우가 없었지만 이때만큼은 제안을 수락한다. 


2003년 10월 처음 암 진단을 받고 남 모르게 병과 싸워야만 했던 그에게 막 사회에 나서는 20대 졸업생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건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세 가지 이야기로 이뤄진 15분의 짧은 연설


거침없는 직설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그답게 그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오늘 이 자리에서 자기 인생의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한다. 졸업을 축하한다는 말 같은 의례적인 인사는 생략한 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연설의 앞부분에서 그는 젊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그가 자신을 길러준 양부모에게 입양된 과정,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스스로 그만뒀던 이유, 서체 수업을 청강하며 배웠던 지식이 나중에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등 자신의 젊은 시절의 삶에 대해 찬찬히 풀어낸다. 


그가 들려줄 세 가지 이야기 중 '인생의 점을 연결하는 것'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였다. 순간순간 내렸던 각각의 선택들, 점이 모여 인생이라는 하나로 연결된 기다란 선이 완성된다는 뜻이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알 수 없었고, 대학이 그것을 깨닫게 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부모님이 평생 모아 온 돈을 다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매우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면 그건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이후 재미없는 필수 과목들을 듣는 것을 그만둘 수 있었고, 보다 더 흥미 있는 강의를 찾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꼭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제겐 기숙사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네 방바닥에서 자기도 했고, 음식을 구하기 위해 5센트짜리 콜라병을 팔기도 했습니다. 매주 일요일 밤이면 하레 크리슈나 사원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얻기 위해 마을을 가로질러 7마일씩 걷기도 했습니다.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어서 그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로 들어간다.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스무 살의 나이에 집 차고에서 애플을 설립해 10년 만에 4000명이 일하는 기업가치 20억 달러 규모의 회사로 키웠지만, 서른 살에는 자신의 회사로부터 해고당해야만 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자신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애플을 잃어야만 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른이 된 다음부터 인생을 다 바쳤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졌기에 그때는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몇 개월 동안은 무엇을 해야 되는지조차 모르고 지냈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애플에서 쫓겨나며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털어놨다.   

  

그다음 이런 좌절감을 딛고 세계 최고의 3D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와 PC 제조업체인 넥스트를 창업해 다시 한번 큰 성공을 거두고,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자신이 떠난 뒤 엉망진창이 돼버린 애플로 다시 복귀할 수 있었던 과정에 대해서도 담담히 설명한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면서 겪었던 끔찍했던 시간들이야말로 과거보다 더 나아진 자신과 애플을 만들 수 있었던 밑바탕이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런 경험은 끔찍한 맛의 약을 삼키는 것과 같았지만 저에게는 이런 경험이 필요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따금 삶이 당신을 배신할 지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던 것이야말로 저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했던 유일한 원천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연설 내용만 보면 스티브 잡스가 이 연설을 준비하는데 별달리 큰 노력을 들였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을 거다. 


그저 자기가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순서대로 차근차근 풀어내는 내용이니 굳이 원고가 필요했을 것 같지도 않다. 연단에 서서 즉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이처럼 뛰어난 연설을 남길 수 있었으니 역시 프레젠테이션의 대가는 다르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스티브 잡스는 A4용지 4장 분량의 그다지 길지 않은 이 연설문 원고를 완성하기 위해 반년 가까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최고의 리더인 그에게도 글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할리우드의 스타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인 아론 소킨


연설문 작성 부탁을 거절당한 잡스


2005년 초 스탠퍼드대학의 연설 제안을 수락한 스티브 잡스는 곧바로 평소 알고 지내던 할리우드의 유명 시나리오 작가 아론 소킨에게 도움을 구한다. 


아론 소킨은 드라마 <웨스트 윙>과 영화 <어 퓨 굿 맨>, <머니 볼>, <소셜 네트워크>의 대본을 쓴 스타 작가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를 다룬 영화 <스티브 잡스>의 시나리오 집필을 맡았을 정도로 평소 스티브 잡스와 친하게 지냈다. 

  

그의 도움을 받는다면 학생들 앞에서 들려줄 멋진 연설문을 쓰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스티브 잡스가 생각했던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아론 소킨의 도움을 받아 손쉽게 연설문을 쓰겠다는 스티브 잡스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연설 제안을 수락한 이후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아론 소킨에게 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답장을 받지 못한 것이다.

  

“2월이었는데 아무 소식이 없기에 4월에 다시 메시지를 보냈더니 ‘아, 그거요’하더군요. 그래서 몇 가지 생각을 더 보냈습니다. 결국 전화까지 했는데 계속 ‘알았다’라고만 하더라고요. 그러다 6월 초가 되었는데도 그는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지요.”

 


졸업식이 눈앞에 닥친 6월 초까지도 아론 소킨에게서 아무런 원고를 받지 못했던 스티브 잡스의 마음은 타들어만 갔다. 


천하의 스티브 잡스에게도 제대로 된 원고 없이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 서는 일, 특히 이제 막 사회로 진출하는 젊은이들의 앞날을 축복해주는 무대에 서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결국 잡스는 스스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잡스는 원래부터 모든 발표 원고를 스스로 작성해왔다. 애플의 신제품을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리에서 검은 터틀넥과 청바지 차림의 그가 무대를 누비며 했던 모든 말들은 그가 미리 써둔 원고에 담겨있던 그대로였다. 


잡스는 자신이 무대 위에서 이런 말을 하면 청중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치밀하게 계산해가며 원고를 썼고, 리허설을 통해 원고를 다듬어나갔다. 즉흥적이고 자연스럽게만 보이는 잡스의 발표였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꼼꼼한 사전 준비 덕택에 그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을 띌 수 있다. 


무대 위에서 그가 보인 모든 행동은 치밀한 계산과 수없는 반복과 수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자, 여기서 먼저 꼭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있다. 아론 소킨이 잡스의 부탁을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애초에 잡스와 잘 알고 지냈던 만큼 그에게 연설문 작성을 부탁했을 테고, 아론 소킨에게 A4용지 몇 장에 불과한 글을 쓰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특히 스티브 잡스처럼 흥미진진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는 연설문이라면 더욱더 쉽게 쓸 수 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만 깔끔하게 잘 정리한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도 한 편의 훌륭한 글이 나오니까. 


처음에는 부탁을 들어준다고 했다가 나중에 가서 이렇게 거절해버리면 실리콘밸리의 거물인 잡스와 척을 지게 될 수도 있고, 이는 결코 아론 소킨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론 소킨은 잡스의 요청을 거절했다. 잡스가 계속해서 연락해서 도움을 구해도 제대로 답하지 않는 방법으로 스티브 잡스 스스로 글을 쓰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글은 2021년 초에 출간될 '최고의 리더는 왜 글을 쓰는가'(가제)의 원고입니다. 뉴스레터 <홍자병법>을 구독하시면 출간될 책의 원고는 물론 깊이 있는 고급지식을 일주일에 한 번 메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시면 바로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아론 소킨


아론 소킨은 알고 있었다. 잡스가 이미 뛰어난 작가라는 사실을. 그가 도와줌으로써 더 매끈한 세련된 글이 나올 수는 있어도 잡스가 스스로 쓴 글보다는 울림이 덜 하리라는 걸. 


가장 좋은 글은 결국 작가 자신이 밤을 새며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견뎌낼 수 있다는 사실을 할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잡스의 연락을 피하며 그가 스스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만약 아론 소킨이 잡스 대신 연설문을 썼다면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이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역대 최고의 졸업 연설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될 수는 없었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다.

  

아론 소킨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 잡스는 결국 졸업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 내려갔고 이렇게 해서 15분 남짓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연설문 원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가장 죽음에 가까이 갔던 순간의 이야기를 꺼내다


앞서 말했듯 잡스는 세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로 연설로 시작했다. 자신의 젊은 시절과 애플에서 쫓겨났던 시절의 뼈아팠던 기억이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의 주제였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준 세 번째 이야기는 잡스가 직접 글을 쓰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이야기였다. 아론 소킨이 아니라 노벨상 수상 작가가 와도 이 세 번째 이야기는 쓰지 못했을 거다. 


세 번째 이야기의 주제는 죽음, 그가 살면서 가장 죽음에 가까이 갔던 순간의 이야기였으니까. 

  

2003년 10월 처음 췌장암 진단을 받은 잡스는 졸업식 연설을 위해 연단에 오르기까지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와 수술을 견뎌야만 했다. 잡스는 자신이 처음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던 순간을 다음처럼 담담히 이야기한다.   


“의사들은 거의 치료할 수 없는 종류의 암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길어야 고작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집으로 돌아가 주변을 정리하고 말했습니다. 죽음이 찾아올 걸 대비하라는 의사들만의 암호 같은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다행히도 자신이 걸린 췌장암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매우 희귀한 종류의 췌장암이었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과 달리 자신은 병을 완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거짓말이었다. 


졸업식 연단에 올라 젊은이들에게 연설하던 그 순간 잡스는 자신의 몸에 암이 자리 잡고 있음을, 췌장에서 시작된 암이 이미 간으로까지 전이돼 치료하기가 더 힘든 상태가 됐음을 알고 있었다. 


수천 명의 청중 앞에서 “저는 수술을 받았고 감사하게도 지금은 완치됐습니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암은 그의 몸을 계속해서 갉아먹고 있었다.

  

그가 왜 굳이 졸업식 연설에서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거짓말을 했는지 그 이유는 잡스 자신만이 알 수 있다. 


남한테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고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걸 무엇보다 꺼려했던, 오만할 정도로 당당했던 그였기에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남들 앞에서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날 연설에서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과 언론에게도 자신의 병이 완치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의 몸에 여전히 암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고 있는 이들은 가족과 매우 절친한 친구 몇몇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이날 연설에서 거짓말을 한 건 그저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애초에 아무도 그에게 그의 몸 상태에서 말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냥 말하지 않고 넘어갔으면 될 일인데 그는 왜 굳이 자신이 병이 다 나았다고, 나는 다시 죽음으로부터 멀찌감치 벗어났다고 거짓말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이어지는 연설문의 내용을 보면 짐작해볼 수 있다.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최종 목적지입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꼭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이야말로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란 삶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세대들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 앞선 세대들을 데리고 갑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여러분이 새로운 세대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분도 곧 점차 구세대가 되어 사라져 갈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당신의 시간을 의미 없게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맞춰 살아가는 삶, 도그마에 빠진 삶을 사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소음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의견이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를 가로막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에 따른 용기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은 여러분이 진짜로 되고 싶어 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그가 졸업 연설에서 거짓말을 한 이유


연설을 하는 동안에도 그의 몸속에선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는 잡스의 이 말들이 스탠퍼드대 졸업생들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50세의 잡스는 자신의 삶이 젊은 시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어느 밤 홀로 책상 앞에 앉아 이 연설문을 적어 내려갔다. 

  

누구도 죽음을 원하지 않지만 새로운 세대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말은 죽음 앞에 서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었다. 


스스로의 마음과 직관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하며 그 외에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일 뿐이라는 말은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스탠퍼드대 졸업 연설은 그가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 (비록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말하긴 했지만) 대중들에게 공개적으로 밝힌 첫 번째 자리였다. 



그가 이 자리에서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거짓말까지 해가며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건 어쩌면 자신의 메시지를 보다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선 자신이 암에 걸렸다가 치유됐다고 말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암이 전이돼 더 이상 수술로써는 나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얼마 뒤면 죽을 수 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자신의 모든 말이 듣는 이에게 죽음을 앞둔 이의 후회와 체념처럼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죽음의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이가 말했을 때 “자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 있는 삶을 살라”는 자신의 말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젊은 세대에게 더 큰 울림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극도의 완벽주의와 미학적 완결성을 추구했던 그였기에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자신이 글과 연설에서 말하는 메시지에 독자와 청중들이 100%에 공감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9년이 지난 2020년 애플은 미국 상장기업 중에 최초로 시가총액이 2조 달러(약 2300조)가 넘는 기업이 됐다. 2조 달러면 한국과 캐나다, 러시아 각각의 연간 국내총생산(GDP)보다도 큰 금액이다. 

  

1997년 그가 다시 애플의 CEO로 복귀했을 때만 해도 애플은 망하기 일보 직전의 기업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들이 야멸차게 쫓아냈던 창업자를 다시 불러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세상을 뜨기 전까지 14년 동안 애플을 지휘하며 자신의 첫 번째 회사를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올려놨다.

  

오늘날 애플이 시가총액 2조 달러의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스티브 잡스에 대한 대중들의 호감, 더 나아가 숭배에 필적하는 존경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구매한 건 단순히 그 품질이 뛰어나서만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혁신과 도전을 멈추지 않는 스티브 잡스의 철학을 따르고, 그를 지지하기 위해 애플의 제품을 샀다. 애플이 자신들만의 충성 고객 집단을 만들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스티브 잡스라는 한 명의 개인에게서 찾을 수 있다.

  

전 세계 대중들에게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의 이미지를 뚜렷이 각인시키는 데는 스탠퍼드대학 졸업 연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잡스의 연설을 담은 영상은 지금껏 유튜브에서만 5000만 건 넘게 재생되며 그가 걸어온 삶과 그의 철학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앞으로도 이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며 스티브 잡스 개인은 물론 그의 분신인 애플에 대한 대중들의 호감을 높여갈 것이다. 단 한 푼도 들이지 않고 회사의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충성 고객 집단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애플에게 이보다 더 좋은 마케팅 수단은 없다.   

  

스티브 잡스가 반년 가까이 고민하다 결국 어두운 밤, 홀로 서재에 틀어박혀 써 내려갔던 A4용지 네 장 분량의 글을 통해서도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담아낸 글쓰기야말로 최고의 마케팅 도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홍선표

rickeygo@naver.com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 <리치 파머>(공저) 저자


<최고의 리더는 왜 쓰는가?> 시리즈의 다른 글들



(이글은 올해 연말에 출간될 '최고의 리더는 왜 글을 쓰는가'(가제)에 들어갈 원고입니다. 홍선표 기자가 보내드리는 지식 뉴스레터 <홍자병법>을 구독하시면 이번 글처럼 세상을 깊이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고급지식을 일주일에 한번 이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시면 바로 구독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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