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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씨 May 22. 2023

자폐 아이와 작은 세상

우리의 특별한 여정

 우리 가족은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날씨만 좋다면 한두 시간 정도는 무난하게 걷는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길고 긴 역사가 있다. 바로 제주도에서 1년 동안 살며 진행했던 ‘특별 훈련'의 역사다. 


 많은 자폐 아이들이 촉감, 시각, 청각, 평형감각 등과 같은 다양한 감각에 문제가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 재준이도 여러 가지 감각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촉감이 민감해 몸, 특히 손에 액체류나 모래 같은 알갱이가 닿는 것을 싫어하고, 시각이 예민해 빛이 강하면 눈을 뜨질 못하기도 한다. 또 청각도 예민해 조용한 곳에서도 시끄럽다며 귀를 막기도 한다. 이 많은 감각 문제 중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재준이의 평형감각 문제다. 


 많은 자폐 아이들이 어릴 때 까치발로 걷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평형감각 문제 때문이다. 평형감각에 문제가 있으면 지면에 똑바로 발을 딛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힘들어한다. 따라서 최대한 발의 좁은 면만을 지면에 접촉하기 위해 까치발로 걷는 것이다. 그런데 평형감각이 극도로 예민했던 재준이는 아예 걷지를 않으려 했다. 걷는 것을 꺼려하는 재준이를 보며 나는 까치발로라도 좋으니 제발 몇 걸음이라도 걸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걷기 힘들어하는 재준이 때문에 나는 늘 유모차, 아기띠를 이용하여 재준이와 이동했다.


 유모차와 아기띠를 버린 건 제주도로 이주하면서부터였다. 나와 남편은 재준이와 오랜 시간 동안 함께 붙어 있으면서 재준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자폐 아이를 키우며 가장 답답한 것은 아이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교육이 맞는지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제주에서 재준이와 붙어 생활하며 재준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알아보기로 했다. 때문에 제주에 가더라도 당분간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최대한 돈을 비축해서 가기 위해 집을 팔고 차도 팔았다. 중고로 산 작은 경차에 우리 셋 짐을 실어 제주에 갔다. 그래서 차에 실을 수 있을 만큼만, 정말 필요한 짐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모두 버리기로 했다. 물건을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집 안을 둘러보니 재준이 짐이 가장 많았다. ‘몸집은 가장 작으면서 짐은 제일 많다니.’ 나는 이 작은 아이가 우리 집에서 얼마나 큰 존재인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제주로 떠난다는 마음을 먹기까지 참 많은 일을 겪었다. 재준이는 생각지도 못하게 자폐를 진단받았고, 일반 유치원은 자폐가 있는 재준이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수 교사가 있는 유치원들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갈 수 있었고, 장애 아이들은 이런 힘든 상황 속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나는 집 안에 있던 수많은 짐을 정리하면서도 마음은 쉽사리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니, 정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바뀌지 않을 테고 나는 재준이를 보살피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아주 작은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마음으로 집 안의 모든 짐을 정리했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자 경차 하나에 우리 셋의 짐이 모두 다 실렸다. 그렇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재준이를 낳고 기를 때까지 떠난 적이 없던 서울을 미련 없이 떠났다.






 우리가 제주로 이주해서 가장 먼저, 그리고 매일 빠짐없이 한 일은 재준이의 손을 잡고 걷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걷기 힘들어하는 재준이의 양쪽 손을 잡고, 재준이의 속도에 맞춰 아주 천천히 걸었다. 재준이는 얼마 가지 못해 안아달라고 하며 떼를 쓰곤 했다. 우리는 번갈아 아이를 안고 업으며 제주의 수많은 숲과 곶자왈, 올레길을 걸었다.




 여름의 숲은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푸르른 길을 걸으며 짙은 숲의 공기를 마셨다. 더운 여름,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재준이를 업고 걷는데 이상하게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용암과 까만 화산재 위에 녹색의 싹과 꽃을 피우고 단단한 나무를 키워낸 제주의 숲을 걸으며, 까맣게 타들어갔던 내 마음에도 새싹이 자라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름 내내 숲을 걸었다. 그러자 가을쯤 되니 재준이는 더 이상 안아달라고 하지 않고 혼자 걸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아기띠를 메고 다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재준이는 다섯 살의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게 걷고 뛸 수 있게 된 것이다. 아기 같이 굳은살이 없던 재준이의 발도 땅을 딛고 뛸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 이제 낮은 오르막길 정도는 안아주지 않아도 혼자 오르는 어린이가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새별 오름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갔고, 차를 타고 멀리 나가기 힘든 날에는 집 앞 베릿내 오름에 올랐다. 




 

재준이와 올랐던 오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오름은 제주 남서쪽, 바다와 붙어있는 군산 오름이다. 군산 오름은 코스가 길지는 않지만 길이 가파르다. 오름 중에서는 길이 험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재준이는 가파른 군산오름도 날씬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올랐다. 군산 오름에 올랐던 날은 날씨가 정말 맑았다. 나무가 우거진 오름을 헤치고 정상에 올라가자 제주 땅과 태평양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보니 세상이 정말 작아 보였다. 재준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보다도 더 작았다. 저 작은 곳에서 내가 겪은 모든 일이 일어났다니. 재준이는 자폐를 진단받았고, 나는 자폐아의 엄마가 되었고, 장애 아이들이 다니는 병원과 치료실을 다니게 되었고.. 내 삶을 모조리 바꿔놓은 수많은 일들이, 그러니까 내가 억울하고 답답하고 두려워했던 그 거대한 일들이 저렇게 작은 곳에서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바위에 앉아 그 작은 세상을 한참이나 봤다. 세상이 얼마나 작은지 내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고 나니 내가 겪은 거대했던 일들이 별 것도 아닌, 아주 작은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작은 세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제야 서울을 떠날 때 정리하지 못했던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나는 이제 이 세상에서 재준이를 키울 준비가 됐다고, 제주의 숲처럼 강하게 살아남을 준비가 됐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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