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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씨 Jul 21. 2022

자폐 아이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일까?

어떤 존재이기는 할까?

  나는 늘 생각했다. 재준이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아니, 어떤 존재이기는 할까?



재준이를 키우며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아이가 표현을 하지 않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재준이 치료를 위해 발달 센터에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였다. 장난감으로 가득찬 치료실에서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상담을 진행하는데, 그 시간동안 재준이는 그 어떤 장난감도 만지지 않았다. 물론 장난감을 달라고 표현하지도 않았다. 불안이 높고 예민한 재준이는 낯선 곳에서 장난감을 만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센터 선생님께서는 장난감을 하나도 만지지 않는 아이는 처음 봤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때 재준이가 자폐 아이들 중에서도 많이 예민하고,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아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마트에 가서 좋아하는 것을 골라보라고 할 때에도 재준이는 출입문 앞에 가만히 있는다. 분명 ‘초코송이'를 먹고 싶어할텐데도 재준이는 과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재준아, 골라.”라는 말을 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답답함을 참지 못한 내가 재준이를 초코송이 앞으로 데려다주고, 초코송이 상자에 재준이 손을 가져다주면 그제서야 안심을 하듯 과자를 집는다. 또 다른 걸 사도 된다는 말에도 재준이는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서있다. 마트에서 뭘 사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를 보면 그때는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장난감을 살 때는 더더욱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재준이에게 문방구나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장난감을 골라보라고 하면, 역시 당연하게도 고르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장난감을 고른다. 그러면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데, 재준이가 내가 가진 장난감 상자를 빼앗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할만한 장난감, 이를테면 ‘뽀로로’와 관련된 장난감이라도 낯선 장난감은 재준이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한동안 계속 반복된다. 그럼 대체 어떤 장난감을 원하는 것인지, 나는 재준이에게 ‘제발 고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재준이는 또 돌이 되어 가만히 있는다. 장난감 하나를 사는 것도 이렇게 어려웠다.



 이처럼 어린 재준이와 나는 소통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재준이는 표현을 하지 못했고, 나는 재준이의 생각을 짐작도 할 수 없는 무지한 엄마였다. 오해는 거기에서부터 쌓여갔다. 나는 재준이가 기본적인 의식주 이외에는 어떤 욕구나 욕망도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밥을 주고 씻겨 주는 사람만 있다면, 엄마인 나를 필요로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준이의 마음을 알 길이 없는 나는 재준이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마치 지구에서 보는 달처럼 말이다. 매일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닿을 수는 없는 달. 나는 밤마다 그런 달을 보면 늘 재준이가 생각나서 마음이 슬퍼졌다.





그러던 어느 밤, 여느 날과 똑같이 자기 전에

“재준아, 사랑해. 잘 자.”

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재준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샤아애(사랑해).”

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당시 재준이는 하루에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않던 시기였는데 말이다. 나는 너무 놀라

“사랑해? 지금 ‘사랑해’라고 한거야?”

라고 되물었다. 재준이는 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다 잠이 들었다. 그 이후로 매일 밤마다 재준이는 내가 ‘사랑해.’ 라고 말을 하면 ‘샤아애.’라고 대답했다.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재준이로서는 큰 마음을 먹고 한 말일 것이다.



 나는 재준이가 처음으로 ‘샤아애.’라고 말한 날, 드디어 우주로 날아가 달의 뒷면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달의 뒷편은 내가 전혀 보지 못한 세계로 가득 차있었다. 재준이에게도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이를 표현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됐다. 재준이의 사랑은 내가 보지 못했던 뒷면에 가려져 있어 지구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던 나는 이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재준이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니었을지 걱정이 된다. 어린 재준이는 그동안 엄마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줘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알아줬어야 했는데.



 오늘 밤 하늘에도 달이 보인다. 나는 달의 뒷편으로 날아가 본다. 거기에는 늘 한결같은 재준이의 마음이 숨어있다. 나는 재준이의 마음 한가운데에서 ‘엄마가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본다. 그럼 재준이는 또 무표정으로 말하겠지.

“엄마, 샤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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