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크레스티드 게코, 레미

by 리을

보름달만큼 땡그란 눈 위에 속눈썹처럼 짧은 돌기를 지닌 생물, 도마뱀의 일종인 크레스티드 게코.

자세히 보면, 그 짧은 돌기가 눈 위를 지나 엉덩이까지 연결되어 있다.

마치 몸 전체로 왕관을 쓴 것 같은 녀석은 우리 집에서 '레미'라는 이름을 얻었다.

뽀얀 피부에 샐쭉한 얼굴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낯설다. 낯설기 그지없다.


언제나 한결같은 도도한 표정의 레미는 숨기는 데 능숙하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뭘 보는지, 어디로 가는지, 왜 그 자세로 멈추는지,

도무지 그 목적을 알아차릴 수 없다.


가끔은 볼 때마다 다른 위치에서 멈추고 있어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어째 자꾸 봐달라고 밀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레미는 오늘도 기묘한 자세로 예고도 없이 게임을 시작한다.

- 거기, 인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한 판 할래?


말도 안 되는 상상이겠지만, 목적을 알 수 없는 나는 그의 움직임을 게임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나는 오늘도 그 유혹에 이기지 못해 작은 플라스틱 통 앞에서 허리를 숙인다.


KakaoTalk_20251103_160434437.jpg 한밤중의 까꿍놀이...
KakaoTalk_20251103_161820496.jpg 턱과 앞발을 바닥에 둔 유사 물구나무 자세...를 하고 있다. 왜?
KakaoTalk_20251103_161712676.jpg 앞발은 천장을 짚고, 뒷발은 아슬하게 모서리에 걸치고 있다. 대체... 왜?!

첫 관찰일지 - 우리 만난지 60일째


이름 : 레미

분류 : 파충류, 도마뱀

종 : 크레스티드 게코

모프 : 레드릴리

탄생일 : 25년 08월 13일

첫만남 : 25년 09월 07일

성별 : 모름

무게 : 아직 측정 불가(우리집 저울은 자꾸 0.0g 이래..)

한 줄 메모 : 두 달 만에 좀 큰 것 같다. 얼른 크고 좋은 집을 마련해 줘야지. 돈 벌자..!


작성자 : 리을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