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g 그리고 12cm

이름을 붙이지 않은 감정

by 리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레미 집을 대청소한다.

오밀조밀하게 들어있던 가구들을 다 꺼내어 전용 칫솔로 문질러 닦아주고, 깨끗한 물에 헹군다.

바닥에 까는 키친타올도 갈아주고, 벽면에 생긴 물 자국도 닦는다.


집 청소는 남편과 돌아가면서 하고 있는데, 이번 주는 남편이 하기로 했다.

청소가 조금 귀찮은 면도 있지만, 기꺼이 하고 싶게 만드는 보상도 있다.

청소를 한 사람이 일주일 동안 지낼 레미의 집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다.

놓고 싶은 자리에 은신처와 물그릇을 두고,

긴 나뭇가지를 배치하고, 나뭇잎을 얹으면서 상상한다.

내가 만든 공간에서 편히 쉬고 있는 레미를 볼 때의 기쁨에 비하면,

귀찮음은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다.


집을 청소할 때면 작은 통에 따로 격리해 둔다.

넓은 곳에 있다가 영문도 모르고 옮겨온 레미는 당황한 듯 분주하게 움직인다.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저울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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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 첫 몸무게 측정값 : 6g!!


와우, 안 그래도 많이 큰 것 같다는 느낌은 느낌이 아니었다!

매번 0g이라 주장하던 저울이 드디어 망설임 없이 숫자를 띄웠다.


내친김에 키도 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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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재기에 비협조적인 레미


하지만 도마뱀은 그렇게 협조적인 녀석이 아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벽을 짚고, 올라타고, 몸을 배배 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집 청소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다.

기다려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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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얻은 첫 번째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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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잡은 두 번째 기회


운 좋게도 레미가 자세를 바꿨다.

재빨리 자를 가져다 대고, 각도를 바꿔서 사진을 찍었다.


레미는 꼬리를 포함해 약 12cm 다.

꼬리를 빼면 7cm이고, 머리 크기만 2.5cm에 달한다.

좀 머리가 큰 편인 듯하다.


겨우 손가락 마디 크기이던 녀석이 제법 락앤락 통이 작아 보이게끔 성장했다.

6g 그리고 12cm에 지난 6개월 간의 흐름이 담겨있다.

꼬집어 말하기 힘든 감정이 든다.


뿌듯함? 자랑스러움? 대견함? 감격?


글쎄. 모두 종이 다른 동물이 같이 살면서 느끼기엔 너무 과한 단어들이다.

언어도 그렇다고 감정 교류도 어려운 우리는 그저 행위와 리액션으로 서로를 짐작만 할 뿐인 사이니까.

그렇다고 '6g 그리고 12cm'가 의미도 없이 가볍다는 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녀석을 찾고, 밥을 먹이고, 집을 치워주고, 기이한 자세를 바라보며 웃는다.

이미 우리 부부에게는 녀석의 존재가 일상이 되어있다.


몇 가지 단어를 억지로 떠올려보다 그냥 지금의 몽글한 상태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흩어질 정도로 가볍지 않은, 그렇다고 가슴에 새길 정도로 무겁지도 않은, 감정을 남긴다.



D+179


이름 : 레미

분류 : 파충류, 도마뱀

종 : 크레스티드 게코

모프 : 레드릴리

탄생일 : 25년 08월 13일

첫만남 : 25년 09월 07일

성별 : 모름

무게 : 6g!!

한 줄 메모 : 성장 속도가 느린 축에 속한다 한다. 귀뚜라미 먹이기를 진지하게 고민 중인 요즘.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