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ulative Design 2
앞의 1편 1부에서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소개하였습니다. 2부에서는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의 예시와 필요성에 대해 다룹니다.
[1편 1부]
1.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이란
[1편 2부]
1. 디자인이 어떻게 비평을 한다는거야?
2.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이 왜 필요할까?
그럼 저와 함께 2부를 시작해봅시다.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분야의 선구자 격인 던과 라비(Dunne and Raby)에게 영향을 받은 유럽과 미국의 여러 기관과 작가들이 그동안 놀랍고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왔습니다. 오늘은 가볍게 라이트브레이너들이 관심있고 익숙하게 느낄 작품 위주로 소개해볼께요.
1) TECHNOLOGICAL DREAMS SERIES: NO.1, ROBOTS by Dunne and Raby (2007)
첫 번째 작품은 던과 라비의 2007년작 입니다. 로봇이 일상에 깊게 침투하여 인간을 대신하여 많은 일을 할 미래, 우리 누구나 로봇이 점점 일상화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동안 소개된 로봇들은 어쩐지 번쩍거리는 소재에 사람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로봇은 다 위와 같은 모습이어야 할까요? 그리고 인간은 로봇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던과 라비는 인테리어 소품같은 소재와 형상을 지니면서도 각자 한 성격 하는 로봇들을 소개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로봇이 우리의 일상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어떤 관계를 맺게 될 수 있을지에 대해 토론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2022년 현재보다 무려 15년전에 제작한 프로젝트지만 아직도 로봇의 형태나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진전이 이만큼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지면관계상 일부만 소개하니 자세한 프로젝트는 던과 라비의 사이트에서 더 확인해보세요.
더 많은 개인 데이터가 누적되는 중, 이 로봇3은 망막 스캐닝 기술을 사용하여 누가 우리 데이터에 액세스하는지 결정합니다. 보통 홍채 스캐닝은 빠르게 가능하지만, 이 로봇은 인간에게 눈을 오랫동안 응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로봇 4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실제로는 매우 영리하지만 미흡한 형태의 신체에 갇혀 주인에게 의지해야지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 로봇의 제조사는 로봇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로봇 스스로 자체 언어를 발전시킵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목소리에서 인간 언어의 흔적을 들을 수 있습니다.
2) MICROBIAL HOME by Philips Design (2011)
필립스 디자인에서는 미생물의 집(Microbial Home)이라는 컨셉디자인을 2011년 선보였습니다. 기후변화에 직면하고 환경문제를 더 이상 눈감을 수 없는 시대에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고, 오염을 만들지 않는 집의 모습을 가전과 가구디자인, 그리고 시스템 맵을 통해 보여줍니다. 이 프로젝트 역시 일부 가구만 소개하니 프로젝트 전체는 하단의 링크를 참고하세요.
이 아일랜드 키친은 도마와 음식물처리기와 가스레인지와 개수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마에서 자르고 남은 채소 쓰레기가 아래로 내려가면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합니다. 분해과정에서 생성된 바이오가스로 요리를 하거나 다른 가전으로 이동합니다.
이 테이블은 전기를 쓰지 않고도 채소를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냉풍기 식탁입니다. 가운데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보관함에 채소를 각각 최적의 보관 온도로 보관하고, 그 바깥은 바이오가스로 데운 온수가 지나갑니다. 일부 잎채소나 버섯은 가정에서 직접 길러서 먹습니다.
이것은 발광생물을 이용한 조명으로, 메탄이나 바이오가스, 형광단백질로 빛을 냅니다. 가정 뿐만 아니라 도시나 도로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필립스디자인은 시스템 다이어그램을 통해 가정 내에서 직접 에너지원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사용하며 각 가전이나 가구를 어떻게 작동시키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시스템 다이어그램으로 미생물로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고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미래의 집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3) FIFTEEN MILLION MERITS (2011)
영국 공상과학 선집 시리즈 블랙 미러(Black Mirror)의 첫번째 시즌 두번째 에피소드에 소개된 이 작품은 어느 미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곳의 사람들은 답답한 큐브같은 곳에 갇혀서 사이클을 돌리고, 그 만큼 메리트를 벌어갑니다. 그것으로 음료수도 사먹고 보고싶은 영상을 구매해서 보기도 합니다. 1500만 메리트를 모으면 핫 샷 이라는 오디션에 참가하여 이 곳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이 곳의 생활을 답답해하는 주인공 빙(Bing)이 여주인공 아비(Abi)를 만나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런 암울한 환경은 지금의 우리의 일상과는 달라 생소하지만 현재 사회와 비슷한 점을 보여주어 충분히 가능한 미래의 시나리오를 필름이라는 형식을 통해 보여줍니다.
4) TRICKING BIOMETRICS by Alix Gallet (2014)
카메라에 비춰진 얼굴의 생김새를 인지하여 사람을 구분하는 기술이 이미 여러 곳에 적용되고 있는데요, 이런 생체 인증이 보편화된 시대에는 어떤 제품이 나오게 될까요? 이 작품의 작가 알릭스 갈렛(Alix Gallet)은 생체인증을 속일 수 있는 주얼리를 선보입니다. 귀, 코, 손가락 모양의 이 주얼리를 착용하면 본인이 아닌 다른 이로 착각하게 할 수 있어 생채인증을 피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디지털 정체성과 물리적 정체성이 서로 혼합되고 있습니다.
(Our digital and physical identity are merging.)
디자인은 아주 전체주의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물이 어떻게 디자인되고 어떤 아이디어를 담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합니다.
(I think design can be very totalitarian. I’m trying to create awareness about how things are designed and what ideas they convey.) - Alix Gallet
이 외에도 정말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은데요, 월간디자인 2020년 3월호 와 2020년 6월호에서도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과 작품들을 소개한 적이 있으니 더 관심있는 분들께 일독 추천합니다.
위 작품들을 보면 어떻게 보셨나요?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은 모호하고 은유적입니다. “그래서 어떻하라고?” 같은 질문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이 큰 주목을 받고 성장하고 있을까요?
첫째,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디자인은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디자이너들은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합니다. 하지만 해결 이후에 문제가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편리함을 위해 일회용품이 개발되었지만 전 세계가 쓰레기로 뒤덮였습니다. 사용 중이 아닌 개인차량 활용을 위해 우버가 태어났지만 택시기사들과의 마찰로 여러 도시가 떠들썩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문제를 발견하고 니즈를 해결하기 위해 솔루션을 내놓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을 책임질 수 있을까요? 책임지고 다시 해결했다 한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은 디자이너들이 만들어낸 ‘해결책’의 영향력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섣불리 세상에 내놓는 기술로 인해 어두운 미래를 보게 된다면, 기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고, 설계 과정에서 안전장치를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 현재의 사용자중심디자인(User-centered Design)은 작은 문제/개인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용자 중심 디자인이 디자인업계에서 중심적인 가치로 자리잡은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는 공급자 중심의 디자인에서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겨났고, 인간에게 집중하자는 의미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았지요. 최근 AI와 데이터 기술의 발달이 촉매가 되어 초개인화된 경험의 보편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개인의 만족을 위해 디자인의 범위가 점점 좁혀지는 동안 우리는 사회의 흐름을 놓치곤 합니다. 한 인간에게 집중하기 위해 만들어진 디자인은 인권, 에너지, 환경, 불균형 등의 여러 사회문제를 상대적으로 소외시켰습니다.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은 그 범위를 확장합니다.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생각하고, 시스템을 이해하게 도와주며, 상상력을 확장하고 미래에 대한 경계를 늘리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Where typical design takes a look at small issues, speculative design broadens the scope and tries to tackle the biggest issues in society.”
- Simon Kulkov
셋째, 현대의 기술은 너무나 빨리 발전하고, 세상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은 현재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기술이 펼쳐질 미래의 모습에 대해 보다 폭넓고 적극적인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기술의 일차적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인 영향은 무엇일지, 그렇게 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순차적으로 상상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더 앞선 미래를 준비하는데 기업이나 국가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I believe in a preferable future containing a 100-percent-sustainable and automatic transport system.” - Elon Musk, Founder of Tesla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수장 일론 머스크도 우리가 선호하는 미래의 모습에는 완전히 지속가능하고 자동화된 운반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그 믿음을 가지고 일찍부터 전기자동차 연구와 인프라 구축을 차근히 다지며 테슬라를 이끌고 있습니다.
앞에서 본 작품 중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SF영화나 드라마도 있는데요, 미래를 생각하는 기업들은 공상과학을 오락물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Visa, Pepsi, Ford 같은 대형 기업과 심지어 NATO까지 이미 기술과 전략을 한 발자국 앞서 나가기 위해 혁신적인 전략과 제품을 만드는데 SF작가를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Organizations like Visa, Pepsi, Ford, and even NATO have begun hiring science fiction writers to help them create more innovative products and strategies. They all recognize the importance of being ahead of the game in terms of technology and services.” - Invision App
지금까지 어떻게 보셨나요? 미래 시나리오와 전략을 구상하고 세상에 영향있는 디자인을 하는 라이트브레인에서 꼭 알아두면 좋을 디자인 분야가 아닌가 싶습니다.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시리즈의 1편은 여기서 마칠까 합니다. 2편부터는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을 하기 위한 방법론, 각종 관련 기관과 커뮤니티, 그리고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과 시스템디자인을 활용한 저의 석사논문 프로젝트를 소개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 라이트브레인 CX컨설팅그룹 김성미
1-1부 바로보기
https://brunch.co.kr/@rightbrain/132
[참고]
TECHNOLOGICAL DREAMS SERIES: NO.1, ROBOTS Project http://dunneandraby.co.uk/content/projects/10/0
MICROBIAL HOME Project https://www.dezeen.com/2011/10/29/microbial-home-by-philips-design/
TRICKING BIOMETRICS Project https://alixgalletblog.wordpress.com/2016/08/22/tricking-biometrics/
월간디자인 2020 3월호 http://mdesign.designhouse.co.kr/article/article_view/102/81203
월간디자인 2020 6월호 http://mdesign.designhouse.co.kr/article/article_view/102/80951
Invision App https://www.invisionapp.com/inside-design/speculative-design/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