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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Nov 06. 2023

아내를 존경합니다.

뭔 소리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루하루 잡아먹지 못해 다투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존경한다니...


말 그대로다. 34살에 아내와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아내에게는 늘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한다. 미국 유학을 다녀와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며 그럴듯한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가던 아내와 국내 굴지의 어느 회사에서 교육 업무를 맡고 있던 내가 만나 결혼을 하고 15년이 지났건만, 이 두 마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어들지 않는 마음이다.


아내는 첫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이 가까워졌을 때쯤 회사를 그만두었다. 유학까지 다녀온 것이 아까웠고, 굳이 그만두지 않았어도 됐고, 한편으론 수입이 절반으로 줄기 때문에 넌지시 그만두지 말라는 의견을 내고는 했다.


우리가 낳은 아이니까 다른 사람에 맡기고 싶지 않아


아내의 말 한마디에 더 이상 붙잡을 이유도 없었다. 또 나 역시 그 말에 설득됐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참 육아를 열심히(?)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었다. 체력이 약하기 그지없음에도 아내는 하루 종일 아이를 안고 어르며 누가 봐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길러냈다. 아이에게 윽박지르거나 손을 대는 일도 없이 수십수백 번을 참고 견디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리고 3년 뒤 둘째를 낳고서 더 힘들 법도 한데 여전히 그 기조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사람인데 왜 힘들지 않았을까. 체력적으로 힘드니 나에게 왜 더 잘해주지 않는지, 왜 알아서 더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지,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건데 왜 도와줄 게 없냐고 물어보는지 등등 남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언어로 쏟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맞는 말임을 이제는 안다.


함께 행복하자 결혼했고, 더 행복하자 해서 두 아이를 낳았건만 오롯이 아내에게만 맡기고 집에 와 피곤하다며 널브러져 있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꼴불견이리라.


신혼 초에는 주도권 갖기 싸움도 여러 번 했었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 없는 시간이었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닌 이상 어렵게 내 기준에 맞춰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이 소통의 기준이고 출발이다.


그렇게 아내를 인정하고 보니 문득 아내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언제나 사랑하고 사랑받길 원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중학생과 초등학교 고학년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모습에서 이제는 본인의 정체성과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을 본다. 


아이들이 크면 누구누구의 엄마보다는 나로 불려지면 좋겠어.
그리고 그렇게 되려고... 내 일을 다시 찾을 거야. 괜찮지?


난 주저하지 않고 꼭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했다. 1,000% 동의하며 아내가 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랐던 내 마음이기도 하다. 


아내는 대학시절부터 배워보고 싶었던 불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이 아니라 아예 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가지고 있는 영어실력을 활용하기 위해 한국어 교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리고 지금은 유명 성우님이 운영하시는 내레이터(Narrowtor) 교육을 이수하고 내레이터와 관련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어떤 것을 해도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난 아내를 적극 지지했을 것이다. 직장을 다니며 무수히 많은 스트레스와 고난을 참아내며, 밤잠 설치기 일쑤인 남편보다 자기가 즐거운 일을 찾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좋다. 


어쩌면 나는 아내와 같은 시도를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스스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생각과 의지, 그리고 무수한 노력 그 자체만으로도 난 아내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금전적으로 더 지원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래서 아내에게 필요한 시간과 응원을 언제나 100% 인정하고 도와주려 애쓴다. 나뿐만 아니라 두 아이들도 엄마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하고 기꺼이 응원한다. 언젠가 어버이날 카드에 큰 아들은 이렇게 썼다.


우리랑 잘 놀아주고 대화해 주는 아빠가 고맙고,
책 읽고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이 멋있어요

잘 놀아줘서 고맙다니... 잠깐 당황했지만, 사춘기 시절을 맞이하는 아들이 아빠게게 고맙다고 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에 감사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 사춘기 자녀와 부모의 갈등은 느껴지지 않는다. 언제나 함께 상의하고 마음을 서로 헤아려주는 것들이 습관화 되었기에 그런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오롯이 아내의 덕택이다. 그리고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이 멋있다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밤 9시에 시작하는 아내의 강의 시간도, 주말에 하는 강의도 우리 세 남자들은 엄마의 시간으로 인정한다. 돈 얼마 버는 시간이 아니라 아내와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 그 자체로서의 정체성을 세우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가끔 나에게 질문을 한다.


이 강의 어때?, 이렇게 수업을 하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수강생이 두 명 밖에 없는데 한 사람 밖에 없더라도 하는 게 맞지?


난 하던 일을 멈추고서라도 아내와 상의한다. 아내의 진정성과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알기에 소홀하게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의 이런 모습이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 역시 남편으로서 함께 더 행복해지기 위한 많은 노력들을 해 나아갈 거라 다짐한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부모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새겨지기를 바란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밑바탕에 있어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마음과 노력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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