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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Sep 23. 2021

15분 안에 모든 게 가능한 도시를 만들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머물고 싶은 도시’는 근거리에서 일, 주거, 놀이가 가능한 생활권 도시다. 코로나는 우리의 활동공간과 범위를 크게 바꿔 놨다. 어딘가로 떠나기 힘들어지면서 사람들은 온라인, 집, 동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 언론에서 주목하며 자주 언급하는 ‘온택트’는 물론, 재택근무 등으로 집에 머무르며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홈택트’도 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로컬택트’다.


방역이 지역단위를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주민들과 지방정부 사이의 접촉이 늘었고, 매일매일 재난문자를 보며 지방정부에 대해 인식하고 그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 주민들도 늘었다. 앞서 살펴봤듯 이동이 제한되니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소비하고 남는 시간을 보냈는데 2020년 3〜4월 동안의 카드 결제 건수를 보면 집에서 500m 이내에서 결제한 건수가 8% 증가한 반면, 1km에서 3km 이내에서는 9.1%, 3km보다 먼 곳에서는 12.6%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인터넷 쇼핑, 홈쇼핑 등 온택트 업종의 매출도 늘었지만 정육점, 주류전문점, 슈퍼마켓 같은 동네 업종들도 상위 10개 업종 중 반을 차지했다.



‘동네 경제’의 가능성을 알아본 기업들이 동네 기반 서비스 개발에 뛰어드는 양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동네 주민 간 중고 직거래를 중개하는 ‘당근마켓’은 방문자가 급증해 이제 국내 제 1의 중고거래 마켓으로 성장했다. 일찍이 ‘우리 동네’ 페이지를 개설해 로컬 서비스 수요에 대응한 네이버는 2020년 12월 주변 지역에서 활동하는 네이버 카페 소식을 모아 보여주는 ‘이웃 서비스’를 오픈했다. 네이버 이용자는 ‘이웃 서비스’를 통해 지역의 핫플레이스와 중고거래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고, 지역의 인기 카페를 만날 수 있다. 네이버는 이 서비스를 출시하기 한 달 전인 11월, 카페와 게시판의 지역단위를 시군구에서 읍면동으로 낮춰 동네 중심 서비스 체제를 구축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한 편의점 상품을 1.5km 이내 주민이 배달하는 GS리테일의 ‘우리동네 딜리버리’, 동네 재래시장과 대형 마트 주문 시 당일 배송해주는 ‘네이버 장보기’ 등 유통 대기업도 동네 경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동네가 삶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현상은 계속해서 감지되어 왔었다. 비단 감염병 때문이 아닌 것이다. 제주도 전역이 아닌 특정 지역에 머물며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가 늘어나고, 집과 회사가 같은 자치구에 있는 서울 지역 회사원의 비율이 2018년 이미 절반을 넘어선 것도 이런 현상의 지표다.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출퇴근에 많은 시간을 쏟는 걸 꺼려하고 일터와 가까운 곳에 살길 선호하는 경향은 강화되는 추세다. ‘생활권 도시’의 특징인 ‘직주일치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도시 모델

생활권 도시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가 골목길 도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을 시작으로 많은 도시 학자들이 사람 중심 도시, 보행자 중심 도시, 걷고 싶은 도시의 개념으로 생활권 도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글로벌 대도시도 생활권 활성화를 통해 주민 삶의 질을 높이려 한다. 자전거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안에 생활과 관련된 모든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획을 발표한 파리가 대표적 사례다. 미국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포틀랜드는 도시를 95개의 상업지역으로 나누어 동네 단위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 보건데 살기 좋은 동네, 머물고 싶은 동네를 만들면 저절로 젊은 인재들이 모이고, 좋은 기업의 창업도 이루어진다. 국가가 전략적으로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R&D를 지원하는 방식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시점에 이제는 주거와 소비뿐 아니라 생산도 도시 안, 로컬 안, 동네로 옮겨와 동네 중심의 새로운 탈산업화 경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들어가며’에서 살펴봤듯 2010년 무렵부터 시작됐던 우리나라의 로컬 지향 현상은 귀농귀촌, 제주이민, 골목상권 부상, 장소 지향, 고향 지향 등 5개의 형태로 진행된다. 로컬이 부상한 배경에는 결국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환경, 공동체, 정체성 등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로컬 지향 현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물질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에 탈물질주의를 수용한 밀레니얼 세대가 2010년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면서 탈물질주의 경향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생활권 도시는 새롭게 요구되는, 강요된 도시가 아니라 삶의 질을 중시하는 선진국형 도시, 밀레니얼 세대가 추구하는 도시인 것이다. 뉴노멀 시대에 환경과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도시 모델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도시를 생활권 도시로 재구성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활권 도시로 가기 위한 5대 과제

가장 큰 과제는 도시 분산과 통합이다. 대도시는 30만〜50만 명 단위 생활권 도시로 분산해야 하고, 중소도시는 20만〜30만 명 규모의 생활권 도시로 통합해야 한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2020년지하철 이용자가 전년도 대비 27%가 줄어 회복되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국민들이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지하철과 버스를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대중교통에 의존해야 하는 대도시는 코로나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 대도시를 분산하고 생활권 도시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자치구 독립이 필수적이다. 자치구에 산업정책 기능을 부여해 일자리를 유치하고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효과적인 방역을 어렵게 만드는 고립된 저밀도 지역도 위험하다. 작은 도시를 모아 방역, 복지, 기업 생태계 시설이 집중된 생활권 도시로 통합하는 것이 소멸 위험 지역의 과제다.


둘째로 생활권 도시의 자생력을 확보해야 한다. 주거, 교육, 상업시설과 더불어 산업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다행히 재택근무, 원격의료, 온라인 교육과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대도시나 대도시 중심부에 살아야 할 필요성이 약해지고 있다. 국내 여행, 로컬푸드, 집 가꾸기, 자전거, 아웃도어, 골목산업 등이 생활권 도시가 활용할 수 있는 지역산업으로 부상했다. 코로나로 나라 전체가 위기를 맞고 있지만, 새롭게 재편된 일상은 지역을 무대로 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2018년 기준 해외여행에 우리 국민이 쓴 금액이 30조 원에 달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국내 여행산업에 투자해 해외여행 지출의 절반 정도를 끌어올 수 있다면 어떨까.


셋째, 오프라인 상권의 재편도 시급한 과제다. 우리나라 소상공인은 700만 명으로 국내 고용의 3분 1을 담당한다. 문화창조산업도 오프라인 상권을 기반으로 고용을 창출한다. 오프라인 상권을 포기하고 디지털 전환만을 코로나 시대의 답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결과는 물류센터와 주택 사이에 아무런 유통시설이 없는 ‘택배 도시’일 뿐이다.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상권은 자연 친화적이고 주거지역과 가까운 상권이다. 걷기 좋은 도시를 조성하고 소상공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먹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골목이 형성된다. 상권의 개별 공간도 자연환기 중심의 안전한 공간이 돼야 한다. 테라스, 옥상, 야외 좌석을 활성화하고, 실내 매장도 일정 수준의 환기 기준을 만족하는 공간으로 개조해야 한다.


넷째, 친환경, 보행자, 소상공인, 지역혁신 기술 등 생활권 도시에 적합한 스마트 도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생활권 도시의 경쟁력이 자연환경, 보행 이동, 소상공인 산업, 주민의 지역혁신 참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상공인이 창의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영업 자동화 기술은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도시 운영의 자동화, 디지털 시장과 상점 등의 스마트 도시 기술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에 생긴 새로운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지역문화와 산업을 개척할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2016년부터 지역성과 결합된 자신만의 콘텐츠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로컬 크리에이터를 정부도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해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역경제의 자생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성과 결합된 자신만의 콘텐츠로 메이커, 공방, 로컬숍, 수제 맥주, 스페셜티 커피 등 다양한 로컬 브랜드와 산업을 창출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많은 전문가가 지적한 대로, 코로나 사태는 환경과 공동체를 위해 우리가 어차피 해야 할, 그리고 이미 시작한 일을 더 빠르게 하도록 만들고 있다. 다시 말해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 언급했듯 “변화의 방향이 아니라 속도가 바뀐 것이다.” 지역재생도 마찬가지다. 집과 동네 중심으로 재편되는 일상은 지역에게 새로운 모멘텀을 제공하고, 지역재생 커뮤니티는 이를 활용해 보다 탈물질주의 시대정신에 맞는 혁신적인 지역재생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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