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명상일지를 주고 받은 언니가 있다.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었고, 우리는 합의 하에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 1년간 매일 주고받았던 카톡을 보니 정말 1년에서 딱 4일 모자란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내면적으로 성장했을까.
매일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을 했다. 기쁘고 슬프고 분노하고 반성하면서 우리는 돌아보고 지켜보는 일을 했다. 부지런히. 가볍게 시작한 우리의 약속이 어느덧 1년이란 기간 동안 계속됐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올라온다. 어느덧 내 삶에 스멀스멀 들어온 영향력을 실감한다. 이런 작별 또한 큰 틀에서 보면 명상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날숨은 꼭 들숨이 있어야만 올 수 있다. 가는 파도가 있어야 오는 파도를 맞이할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마지막 수업 날, 담임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신다는 걸 알았다. 어린 학생은 선생님과의 작별이 너무 아쉬웠었나 보다.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와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왜 사람은 헤어져야 하는 거야..."
진한 핑크빛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시던 엄마는 식탁에 엎드려 우는 아이에게 주저 없이 말씀하셨다.
"사람은 헤어져야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앞으로도 그럴 거야."
나는 그때 고작 열 살이었다. 엄마가 하신 말씀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걸 보면, 그 말이 참 충격으로 꽂혔던 거 같다. "앞으로도 그럴 거야." 삼십여 년이 넘게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지혜로운 답변이었다. 그 말은, 진짜였다.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에 너무 연연하지 않은 수용성이 필요하다. 수용성은 관대함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되, 거기에 더해 오고 감에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관대한 포용성까지 구비한다면 금상첨화다. 그런 자세를 장착할 때, 오히려 지금 내게 와있는 것에 더 집중하고 즐길 수 있다.
매 순간 호흡이 오고 가는 걸 지켜보는 건, 삶에서 오고 가는 수많은 것들을 초연히 지켜보기 위한 연습이라는 걸,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