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밥을 먹기 위해 밥을 먹는다

텃밭에서 단순함을 보다

by Riley

동네 지하철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아주 조그만 텃밭이 있다. 아파트 동네 금싸라기땅을 팔지 않고 소작을 하는 주인은 누굴까 늘 궁금할 정도로 특이한 밭이다. 덕분에 사계절 내내 농사 현황을 자연스레 관찰하게 된다. 파, 배추 등 채소가 자라고 경작되어 사라짐을 반복한다. 이제 봄이라 푸릇푸릇 싹이 트고 잎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년에 무럭 자랐던 파, 배추는 진작에 사라졌다.


채소 하나하나 귀하지 않은 게 없어 보인다. 딱딱하고 차가운 땅에 뿌리를 내리고 그 흙을 뚫고 하늘을 향해 싹을 피우고 잎을 키워야 한다. 24시간 쉬는 순간이 없다. 그 생명 하나하나가 마치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힘없는 아기로 태어나 성인이 되고 결국 죽음으로 향하는 패턴을 피할 수 없다. 개개인의 삶을 봤을 때 그 과정에는 수많은 일이 생기지만, 크게 보면 엄청 단순하다. 순리일 뿐이다. 너무 집착하거나 슬퍼하거나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지나 주름이 생기고 흰머리를 발견하면 속상하다. 이 모든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에 그 과정으로 가는 하루하루의 징검다리가 더 소중하다.


어제밤 회사일로 이메일을 기다리며 십 분마다 메일함을 확인하던 밤도, 오늘 아침 엑셀을 들여다보며 고민했던 일상도, 오후 회의도, 저녁 운동도, 집에 와서 주말에 먹던 두부찌개를 먹는 것도, 모두 거를 것이 하나 없는 징검다리다.


지금 이 순간에 병원에서 내일 수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테고, 장례식장에서 기족의 발인을 앞둔 사람도 있을 테고, 새벽 출산을 앞두고 진통을 겪는 임산부도 있을 것이다.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방법은 그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것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이 기준으로 생각하면, 누군가 거창하고 원대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떠벌리는 게 우습게 보인다.


"나는 밥을 먹기 위해 밥을 먹는다"는 누군가의 위트 있는 말이 떠오른다. 그저 지금 하는 것, 즉 내가 만들고 있는 무언가는 생성되기 위해 생성되고, 이후 없어질 뿐이다. 다만 그러할 뿐. 세상의 많은 현상이 잘 이해되지 않고 또한 이해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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