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연두가 수 가르기를 어려워합니다.

by 훈민정음

2007년에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이 된 이후 2022학년도에 처음으로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왜 하필 남자 교사인 제가 1학년을 맡게 되었을까요? 초등학교에서 학년 담임이 정해지는 과정도 언제 한 번 날 잡고 써내려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튼 우여곡절 끝에 1학년 담임을 하게 되었고, 1학년 입학 후 가장 큰 과업인 한글 지도와 숫자 지도에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때 한글을 익히고 입학하는 게 좋을까요? 한글을 익히지 않고 입학시키는 게 좋을까요? 그동안 학생들과 자녀를 가르치며 나름대로 정리한 제 생각을 언제 한 번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1학년 1학기는 한글 지도와 숫자 1부터 10까지, 그리고 0을 가르칩니다. 숫자를 익히고 나면 수의 덧셈과 뺄셈도 배웁니다. 이 때 덧셈과 뺄셈은 수를 쪼개어 5 또는 10을 만들어 계산하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가르칩니다. 이후 수학 교과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5와 10을 만드는 방법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5 + 8 을 계산할 때 8을 5와 3으로 쪼개어 5 + 5 = 10을 계산하고, 이후에 10과 3을 더해주는 방법으로 연산 공부를 시킵니다.


연두(가명)라는 아이가 수 쪼개기를 유독 어려워하였습니다. 연두가 수 쪼개기를 자신 있어 할 때까지 수업 중에, 정규 수업 종료 후에 틈 날 때마다 열심히 가르쳤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해하는 듯 이해하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깊은 바닷 속에 빠졌다가 다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집에서 복습을 해야 수 쪼개기를 이해하고 2학년에 올라갈 것 같아 2학기 후반에 연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연두가 수학 시간에 배우는 수 쪼개기 개념을 어려워하니 가정에서 시간이 되신다면 복습 지도를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1학년 2학기 10월이 가고, 11월이 가고, 12월도 가고 학년 말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건너건너 이런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1학년 1반 담임선생님이 연두를 싫어해서 연두 부모님이 걱정이 많다고 하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처음 듣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두 번, 세 번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분의 보충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우리 연두한테 계속 수학을 못한다고 뭐라고 하시는데 우리 연두가 선생님한테 뭘 잘못했나봐. 선생님이 연두를 싫어하셔.'


저는 분명 수학 교과 개념 중 수를 쪼개어 더하거나 빼는 것을 연두가 어려워하니 가정에서 복습을 꼭 해달라고 말씀드린 것 뿐인데 연두네 부모님은 제가 연두를 싫어해서 그런 전화를 한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마치 이런 공식이 성립하는 것 같았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우리 아이가 수학을 못한다고 전화를 했다

==> 우리 아이가 선생님에게 뭔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싫어한다


말문이 막혔습니다.


땅에서 콩이 자라면 콩이라고 하고, 팥이 자라면 팥이라고 합니다. 사실을 전달한 것 뿐인데, 제가 연두를 싫어하다뇨...?


그리고 대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학부모에게 전화하지 말아야겠다.'


바야흐로 교직 수난 시대입니다. 뭘해도 욕 먹는 직업이 교직입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선생님 손바닥이 학생들 뺨 위로 전광석화처럼 날아오던 시대였습니다. 선생님이 들고 있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적도 있습니다. 장난 삼아 맞은 거긴 한데 기분이 굉장히 나빴습니다. 그리고 정말 아팠습니다. 저는 지금도 손바닥과 망치로 저를 때렸던 선생님들을 기억합니다. 얼굴과 이름까지 아주 상세히....


지금 교직은 그분들이 학교에 싸질러 놓고 간 똥을 그 분들에게 맞고 자란 학생들이 교사가 되어 온 몸으로 맞고 있는 형국입니다. 매 맞는 학생은 더 이상 뉴스에 나오지 않습니다. 매 맞는 교사가 뉴스에 나오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교사의 말 한 마디가 갖는 무게감이 전과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학부모들 역시 교사를 감정적으로 대하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잘 가르쳐도 월급은 똑같습니다. 1년 내내 아이들에게 만화를 보여줘도 월급은 똑같습니다. 똑같은 월급을 받는데 학부모에게 굳이 시간을 내어 전화를 하는 교사는 요즘 세태와 맞지 않는 교사임이 분명합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담임 교사로부터 전해들은 소식이 자기 자식이 잘한다는 칭찬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리고 교사 입장에서는 학부모에게 아이의 현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전화를 했건만 학부모로부터 고맙다는 말 한 마디는 커녕 자기 아이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런 전화를 받으면 더없이 감사하며, 가정 교육에 충실하시는 학부모도 있습니다. 그런 학부모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문제인 거죠.


결심했습니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2023.2.11.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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